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없는 바다 May 02. 2024

오돌토돌 기억을 밟다

운동화에 잔뜩 들어간 모래를 털지 않는 이유

여느날과 다름없이 부랴부랴 운동화에 발을 대충 꾸겨넣고서 현관문부터 닫았다.

우선은 엘리베이터 내림 버튼을 빠르게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걸 확인한 후에야 깽깽이 자세로 운동화에 뒷꿈치를 제대로 밀어넣었다. 어느새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발을 한발짝 내딛자마자

오돌토돌 발바닥에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오돌토돌


발가락과 발바닥을 꼼지락 거리니까 수백개의 미세한

모래 알갱이들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신발을 한바탕 털어야할 것 같은데 엘리베이터에서 털 수는 없으니 우선은 그대로 서있었다. 운동화에 언제 이렇게 모래가 들어간거지? 운동장을 뛴 적도 없는데? 하루에 겨우 2천보 밖에 걷지 않을 뿐더라 허구한날 다니는 길은 콘크리트 바닥밖에는 없다.


아맞다, 나 주말에 바다 다녀왔구나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갑자기 그 사이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래로 흠뻑 젖은 운동화는 어느새 모래사장이 되었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여행을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새삼 바다를 처음 본 사람처럼 그 파랑색에 감탄을 내질렀다. 그 주에 서울의 미세먼지와 황사가 유독 심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유달리 바다를 보면서 숨통이 틔었던 것은 그간 내 하루하루가 숨막혔던 탓이겠지. 내 앞에서 끊임없이 부서지기를 반복하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간 답답했던 것들이 바다로 씻겨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다 앞에 서면 내 사소한 권태들이 부서지고 쓸려간다


오후 2시의 바다는 뜨거웠고, 그 아래에 꽤 오랜시간을 앉아있자니 살짝 현기증도 왔다. 여러 사건과 인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생각났다가, 슬픔이여 안녕의 세실이 생각났다. 권태 속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내가 그들과 겹쳐보았다. 어쩌면 길 잃은 자들은 바다 앞으로 모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바다로 통하는 길은 어떤 길이든 바다에 도착하면 막다른 길이 된다.


회사에 도착할때 까지 여행을 곱씹어보았고, 내가 그 바다를 떠나 다시 서울에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좌절했다. 신발의 모래를 털어버릴 수 없었다. 책상에 앉아서 한참을 일을 할 때는 모래의 존재를 전혀 까먹고 있다가, 커피를 마시러 일어나 걸어 나갈때 다시금 모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잊고 있다가 퇴근길에 꽤 길게 모래를 느꼈고 바다에 대해서 생각했다.


 며칠이 지난 지금, 내가 모래를 부러 털지 않았음에도 거의 다 사라졌다. 지금은 발가락을 크게 움직여야만

아주 미세한 모래 알갱이들을 느낄 수 있다. 아쉽거나 속상하지는 않다. 다만, 조만간 다시 운동화속에 모래를 잔뜩 넣어오고 싶다. 회색의 서울에서도 새파란 바다와 그 짠내를 잊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작가의 이전글 로컬스티치 통영 - 1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