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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드부루 Feb 02. 2024

인생의 삼사분면

배움과 성찰, 나눔이 있는 삶을 꿈꾸며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젊은 날 한동안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글을 읽고 한 번 써 보라고 말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뭐 이 정도로..'라는 생각이었고, 무엇보다 글을 쓰는 동안 내 깊은 심연에 들어가 한동안 허우적거릴 걸 생각하니 작가라는 직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처음 시작은 그때였다.

아이들 둘을 낳아 기르며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많은 동화책.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을 읽으면 꼭 나의 삶 같고,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으면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이런 좋은 이야기들을 동화로 만들어 세상에 널리 알리면 이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작가가 되기 위한 정보도 얻고, 실제 작가로 활동하는 분께 메일도 보내어 작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문해 보기도 하였었지..


첫 번째 직장을 '작가가 되고 싶어요. '라고 하며 퇴직을 하였는데 막상 글을 쓰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나는 내 앞에 놓인 현실과 싸워야 했다.


솔직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좋은 핑계였고, 학교, 학원 등에서 내내 문제아로 소문난 초등2학년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20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퇴직을 하며 받은 퇴직금은 그동안 모은 정기예금, 부동산들과 함께 남편의 사업자금으로 모두 충당되며 우리 집은 산산조각이 났다.


불과 2,3년 사이에 남편은 가게를 8개를 바꿔가며 엎었다, 열었다를 반복하며 가진 재산을 모두 탕진했다.


나는 둘째를 잘 돌보려고 퇴직했지만, 대부분은 남편이 차린 가계에서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며 동전과 지폐를 세고, 셔터를 내리는 일을 하며 내 삶은 나락에 빠져만 갔다.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지?' 지독한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고, 나와 남편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갈등이 심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집안이 시끄러웠다.


그리고 나는 집을 나왔다.

둘째가 뭘 잘못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남편을 홧김에 아이에게 날계란을 던졌고, 나는 더 이상 시궁창 같은 이 집구석을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곧바로 집을 나와 혼자 살 집을 마련했다.


나는 직장에서 IT 개발자로 오래 일했어서 재취업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취업을 하고 다시 일을 잘 굴러가게 만들기까지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꼈고, 다시 나는 내 삶의 안정을 빠르게 회복해 갈 수 있었다.

내 삶이 안정이 되고 첫 번째로 아이들을 모두 나의 안식처로 데려왔다.

남편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갔고, 그 곁에 고통받는 아이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40대가 흘러갔다.


당장 이혼하라는 친정의 성화에도 나는 아이들 때문에 그런 결정을 쉽게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남편의 큰아버지가 소천하셨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고, 거의 4~5년 만에 남편을 처음 만나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 바라본 남편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과,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 초췌하게 빠진 살집에 남루한 옷차림,

순간 심장에서 뜨거운 울컥거림이 올라왔지만, 티 내지 않고 모든 과정을 끝내고 헤어졌다.


그리고 일주일을 나는 울면서, 괴로워하면서 지냈다.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거지?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끊임없는 자책으로 눈물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남편의 과거를 모두 용서한다거나, 잘못이 나에게도 있다거나 하는 표면적인 것을 떠나 나와 남편의 소중한 인연으로 가족이 되었는데, 이렇게 변해버린 초로의 남편을 보니 너무 괴롭고 미안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나 보다.


강남에 살고, 비싼 집이 있고, 가방끈이 길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가는 것..


한국사회에 일반적이 잣대가 이제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는 것 같다.


어려서는 나보다 잘 사는 사람, 나보다 더 잘 난 사람 앞에만 서면 위축이 되어 식은땀이 나는 왕소심쟁이였는데..


이렇게 나이가 들고 보니 그러한 것들이 그리 중요하지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러면서 나와 함께 하는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노력, 물질적인 것을 떠나 소박하여도 마냥 좋은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는 중년의 나이가 되고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온 과거만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형인 자녀들과의 관계, 노년의 부모님을 모시는 애타는 마음, 안쓰러운 마음, 또 여전히 직장인으로서 애쓰고 성장하는 고군분투기.


배움과 성장은 여전히 내 삶의 소중한 부분이다.


더불어서 사랑과 소망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또한 좋겠다.


꿈꾸는 작가.. 나의 꿈, 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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