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퇴직'이라는 나비가 불러 온 나비효과1
K의 아들의 초 2 담임 선생님은 늘 K의 아들을 걱정했다.
'착한 아이인데...
아이들과 잘 못 어울린다, 아이들과 잦은 다툼이 있고, 화가 나면 연필을 부러뜨리거나 고성을 지르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이 커지니 어머니가 자주 곁에서 돌봐 주면 좋겠다'고 자주 연락을 했다.
아이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오랜 시간을 자세히 이야기 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니 K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소중히 들었다.
이렇게 집안 일이 평안하지도 않은데...
K의 회사는 다른 회사에 합병이 되어 K가 근무하는 환경은 점점 안 좋아졌다. 새벽에 나가야 하는 일과 밤 늦은 야근이 늘어나며 K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이 무렵 K의 남편은 이러저러한 사업을 다 접고 동네 근처에 문구점을 인수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벌어 둔 돈을 다 잃고 나니 수시로 K에게 돈을 융통해 달라고 하였다. K는 자신이 대기업에 다님에도 마이너스 통장 잔고가 더 돈을 뺄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다니던 중 어느 날이었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라는 울림이 K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남편 J는 '그래, 잘 결정했어, 미련하게.. 그러고 사냐.. 우리 안 그래도 돼!' 라며 퇴직을 하는 K에게 미안함을 대신한 동의의 말을 그렇게 전했다.
K가 회사에 퇴직원을 내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고별 회식이 몇 차례 있었고, 회식 자리에서 아쉬워 하는 동료들의 술 한잔을 연거푸 받아 마신 K의 고별사는 눈물로 범벅 되었다. 함께 부둥껴 안고 석별의 정을 나누고 집으로 어떻게 돌아 왔는지.. 근처에 사는 동료가 함께 택시를 타고 데려다 주었고, 집에 와서는 속을 다 게워 내고 눈물을 훔치며 잠이 들었다.
K의 남편은 안스러워 하며 토한 K의 얼굴과 손을 물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퇴직일 아침. K는 여느 때보다 더 정성스럽게 차려 입고 길을 나섰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순간순간 울컥하는 뜨거운 눈물이 올라 오는 것을 참으며 회사에 도착했다. 이어서 회사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나오니 추운 1월의 칼바람이 더욱 더 K의 빰을 스친다. K는 20년 넘게 다닌 직장 빌딩 주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본다. '뽀드득.. 뽀드득' 눈이 내려 얼어 붙은 길을 소리와 냄새, 바람, 햇빛 등을 가슴에 새기며 걸어 가자 속으로 또 한번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집으로 돌아 오자 남편과 아이들이 반가운 얼굴로 K를 반긴다.
K와 K의 가족은 늘 속상한 날에는 맛있는 음식으로 위로를 받는 것 같다. K의 남편은 중식 요리를 한껏 시키고 아이들과 더 부산하게 떠들며 K를 달랜다.
다음 날 아침, 바쁘게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K는 낯설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K의 아이들도 학교에서 돌아 와 보니 "집에 엄마가 있으니까 이상하다." 하며 빙그레 웃었다.
"그동안 못 해준 것들을 다 해 줄께!" 하며 K는 저녁을 차렸다.
틈나는 대로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살펴 주고, 학원 가는 길도 함께 걸어 가 주며 종알종알 수다를 떤다...
늘 꿈만 같았던 전업주부의 삶이 달콤하게 K에게 다가왔다. 아이들도 점점 밝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자 K의 남편은 K를 자주 자신의 일터인 문구점으로 불러냈다. 잠깐 가 볼 때가 있다는 남편을 대신해 시간이 여유로워진 K는 문구점 일을 대신 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 갔다. 문구점 일이 식상해지자, 남편은 '문구점 장사는 돈이 안된다. 요즘 세계과자가게가 유행이니 그걸 해 보자' 하며 문구점을 정리하고 '세계과자가계'를 열었다. 물론 자금은 K의 퇴직금으로 충당 되었다.
K는 두려웠다. 자신의 퇴직금이 다 떨어지고 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엄습하였고, 더 늦기 전에 집이라도 마련해야겠다 싶었다. 다행히 동네 부동산에서 좋은 매물이 있어 계약을 하게 되었는데, K의 남편은 당연히 자신의 명의로 집을 살 것이라 하였다. K도 별 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K의 친정 어머니는 K의 명의로 하겠다고 강하게 말하라고 하였다. 늘 곁에서 걱정만 해 주시던 엄마의 강한 의견을 들으니 K도 정신이 번뜩 들었다.
K의 이름으로 등기가 날 때까지 몇 차례 폭풍이 지나갔지만, 결국 매입한 아파트 명의는 K의 이름으로 하게 되었다. K의 남편은 가장으로서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넘어 가 주었다.
"처음으로 갖아 보는 우리 집이다!"
K와 K의 남편은 인테리어를 위해 타일 하나 하나, 수도꼭지 하나 하나를 신바람 내 가며 구해 인테리어 업자와 의논하였다.
잘 꾸며진 새 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여태껏 전세살이를 해 온 K의 가족에게 너무나 행복하고 꿈 같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이 방, 저 방을 뛰어 다니며 '누나, 여기 좀 봐! ', '어디, 어디? ' 하며 소리를 지르고, 이 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K와 J도 서로 마주 보고 한껏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아파트 광고에서 나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