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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드부루 Oct 12. 2024

K의 하루

10. '퇴직'이라는 나비가 불러 온 나비효과1

K의 아들의 초 2 담임 선생님은 늘 K의 아들을 걱정했다. 


'착한 아이인데... 

 아이들과 잘 못 어울린다, 아이들과 잦은 다툼이 있고, 화가 나면 연필을 부러뜨리거나 고성을 지르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이 커지니 어머니가 자주 곁에서 돌봐 주면 좋겠다'고 자주 연락을 했다. 


아이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오랜 시간을 자세히 이야기 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니 K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소중히 들었다. 


이렇게 집안 일이 평안하지도 않은데... 

K의 회사는 다른 회사에 합병이 되어 K가 근무하는 환경은 점점 좋아졌다.  새벽에 나가야 하는 일과 늦은 야근이 늘어나며 K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이 무렵 K의 남편은 이러저러한 사업을 접고 동네 근처에 문구점을 인수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벌어 돈을 잃고 나니 수시로 K에게 돈을 융통해 달라고 하였다.  K는 자신이 대기업에 다님에도 마이너스 통장 잔고가 돈을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다니던 중 어느 날이었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라는 울림이 K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남편 J는 '그래, 잘 결정했어, 미련하게.. 그러고 사냐.. 우리 안 그래도 돼!' 라며 퇴직을 하는 K에게 미안함을 대신한 동의의 말을 그렇게 전했다. 


K가 회사에 퇴직원을 내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고별 회식이 몇 차례 있었고, 회식 자리에서 아쉬워 하는 동료들의 술 한잔을 연거푸 받아 마신 K의 고별사는 눈물로 범벅 되었다.  함께 부둥껴 안고 석별의 정을 나누고 집으로 어떻게 돌아 왔는지..  근처에 사는 동료가 함께 택시를 타고 데려다 주었고,  집에 와서는 속을 다 게워 내고 눈물을 훔치며 잠이 들었다. 

K의 남편은 안스러워 하며 토한 K의 얼굴과 손을 물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퇴직일 아침.  K는 여느 때보다 더 정성스럽게 차려 입고 길을 나섰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순간순간 울컥하는 뜨거운 눈물이 올라 오는 것을 참으며 회사에 도착했다.  이어서 회사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나오니 추운 1월의 칼바람이 더욱 더 K의 빰을 스친다.  K는 20년 넘게 다닌 직장 빌딩 주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본다.  '뽀드득.. 뽀드득' 눈이 내려 얼어 붙은 길을 소리와 냄새, 바람, 햇빛 등을 가슴에 새기며 걸어 가자 속으로 또 한번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집으로 돌아 오자 남편과 아이들이 반가운 얼굴로 K를 반긴다.

 

K와 K의 가족은 늘 속상한 날에는 맛있는 음식으로 위로를 받는 것 같다.  K의 남편은 중식 요리를 한껏 시키고 아이들과 더 부산하게 떠들며 K를 달랜다. 


다음 날 아침, 바쁘게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K는 낯설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K의 아이들도 학교에서 돌아 와 보니 "집에 엄마가 있으니까 이상하다." 하며 빙그레 웃었다. 


"그동안 못 해준 것들을 다 해 줄께!" 하며 K는 저녁을 차렸다. 


틈나는 대로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살펴 주고, 학원 가는 길도 함께 걸어 가 주며 종알종알 수다를 떤다...  

늘 꿈만 같았던 전업주부의 삶이 달콤하게 K에게 다가왔다.  아이들도 점점 밝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자 K의 남편은 K를 자주 자신의 일터인 문구점으로 불러냈다.  잠깐 가 볼 때가 있다는 남편을 대신해 시간이 여유로워진 K는 문구점 일을 대신 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 갔다.  문구점 일이 식상해지자, 남편은 '문구점 장사는 돈이 안된다. 요즘 세계과자가게가 유행이니 그걸 해 보자'  하며 문구점을 정리하고 '세계과자가계'를 열었다.  물론 자금은 K의 퇴직금으로 충당 되었다. 


K는 두려웠다. 자신의 퇴직금이 다 떨어지고 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엄습하였고, 더 늦기 전에 집이라도 마련해야겠다 싶었다.  다행히 동네 부동산에서 좋은 매물이 있어 계약을 하게 되었는데, K의 남편은 당연히 자신의 명의로 집을 살 것이라 하였다. K도 별 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K의 친정 어머니는 K의 명의로 하겠다고 강하게 말하라고 하였다.  늘 곁에서 걱정만 해 주시던 엄마의 강한 의견을 들으니 K도 정신이 번뜩 들었다. 


K의 이름으로 등기가 날 때까지 몇 차례 폭풍이 지나갔지만, 결국 매입한 아파트 명의는 K의 이름으로 하게 되었다.  K의 남편은 가장으로서 억울하지만 어쩔 없다고 넘어 주었다. 


"처음으로 갖아 보는 우리 집이다!"

K와 K의 남편은 인테리어를 위해 타일 하나 하나, 수도꼭지 하나 하나를 신바람 내 가며 구해 인테리어 업자와 의논하였다.  


잘 꾸며진 새 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여태껏 전세살이를 해 온 K의 가족에게 너무나 행복하고 꿈 같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이 방, 저 방을 뛰어 다니며 '누나, 여기 좀 봐! ', '어디, 어디? ' 하며 소리를 지르고, 이 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K와 J도 서로 마주 보고 한껏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아파트 광고에서 나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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