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처럼.

가장 슬픈 곡은 장조로 쓰인다.

by 김혜원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글이 있다. 올해로 20년 차가 되신 특수교사 권용덕 선생님의 에세이, **『선생님하고 나는 친구니까』**가 그렇다. 고등학교 특수학급 아이들과의 일상을 유쾌하게 풀어낸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배를 잡고 웃다가도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곁에서 지켜보던 대단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와 물었다. “엄마, 웃긴데 슬퍼?”


책을 덮고 나면 마음이 한결 몽글몽글해진다. 대단이와 내가 겪어온 시간들, 그리고 앞으로 마주할 미래의 이야기가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과 맞물려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사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호기롭게 책을 써보겠다고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방향을 잃은 채 부끄러운 일기장이 되어버린 브런치를 불편한 마음으로 처박아 두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 갈피를 잡지 못해 자신감을 잃었던 탓이다.


하지만 권용덕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글이 된 내 원고. 그동안 내 글의 음색은 늘 ‘우울’과 ‘슬픔’의 단조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발달장애 아들을 둔 엄마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증명하려 애썼던 걸까, 아니면 같은 처지의 엄마들에게 동병상련의 위로를 구했던 걸까.


대단이와의 일상이 정말 매일 우울하고 슬프기만 한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타인이 우리를 가엽게 봐주길 바라는가? 그것 또한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늘진 이야기들만 기록하려 했을까. 같은 처지의 이들이 공감하기도 전에 “나도 그 괴로운 기분 잘 알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라며 책장을 덮어버리진 않을까.


우리에게 익숙한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은 사실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Ah! vous dirai-je, Maman)』이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다. 밝은 장조이지만 듣고 있다 보면 선율 사이로 외로움 같은 감정이 느껴지는 묘한 곡이다. 신기하기도 그때의 내 감정에 따라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학자들에 따라 작곡을 한 시기가 차이는 있지만 모차르트가 어머니를 잃은 시기에 썼거나 다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원래 프랑스 민요인 곡을 다듬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 유행했던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엄마, 제 고통의 원인을 말해드릴까요? 아빠는 제가 어른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하시지만, 저는 사탕이 이성보다 훨씬 좋거든요!"


슬픔 속에서도 모차르트가 '엄마, 아빠는 어른처럼 굴라지만 저는 사탕이 더 좋아요'라며 장난스럽게 노래한 것처럼 나도 대단이와의 일상을 기록을 쓰면 좋겠다. 유쾌함 속에서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즐겁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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