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by 김혜원

심한 무기력으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공부도, 아이의 치료실도 다 귀찮았다. 하루 종일 누워 있고 싶었다. 신경을 조금만 쓰면 아토피처럼 벌겋게 눈두덩이가 부어올라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었다. 알레르기 약을 먹으면 계속 졸렸고 정신이 없었다. 한 일주일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다. 가까운 미용실에서 염색이라도 하면 나을 것 같아 억지로 기어 나왔다.

인터넷으로도 찾기 어려운 작은 미용실은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었다. 눈을 감고 염색약을 바르고 있는데 할머니들이 티브이 앞에서 온갖 참견을 시작한다.


"아이고, 저이는 젊은 사람이 암에 걸려가지고. 그런데 애는 왜 또 임신했대."

" 부인 힘들라고 지는 암 걸려 놓고 애도 잘 만드네."

" 근데 젊은 사람이 암 걸리면 오래 못살대, 내 여기 이사 올 때 아랫집 살던 애가 무슨 암인가 걸렸는데 글쎄 다리를 잘라뿌면 산다 그랬다. 그런데 그 집 부모가 그냥 두데. 그래서 죽어버렸지 뭐."

" 하이고야.. 무세라. 그래도 사는게 안낫나. 다리 고까 짓거."

" 말도 말지. 장애인인데 어떻게 사나. 부모가 잘했지. 살아서 뭐 해."

" 하긴 우리 미용실 손님 중에도 손자가 장애가 있어가지고 죽을라 하데. 친정 엄만데 딸 고생 그만 시키라고 손주를 아주 죽이고 싶다고. 장애인이 집에 있으면 얼마나 힘든지 몰라. 그 집이 다 박살이 나는 거지. 우리 집에도 머리 자르러 오는 머시마 있는데 아빠보다 더 큰 게 말도 못 하면서 목을 잡아당기고, 하유.. 고집은 또 왜 이렇게 세."

" 그런 애들이 정신만 그렇지 또 신체는 멀쩡해서 성욕은 왕성해. 여기 *@@원 애들 무서워 죽겠어, 아주. 덩치가 산만한 게 막 소리 지르면서 그 짓하려고 산에 간다데. 그래서 선생님들이 안 팰 수가 없다데."


할머니들과 미용실 원장의 대화는 인간 극장 속 주인공에서 동네 발달 장애인들 이야기로 꼬리를 물고 나아간다. 눈을 감고 조용히 듣는데 가슴 한편에서 울컥하고 올라왔다. 그런데 입이 안 떨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한마디도 못했다.


네, 제가 바로 그 발달장애 아들 엄마입니다만.. 이라고 하면 염색하는 내내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배려하는 차원에서? 아니면 그들의 무지가 설명해 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걸 알고 포기? 그들의 폭력적인 언어들이 사회의 편견의 벽임을 알고 체념한 걸까.


누군가는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마주한 견고한 무지와 혐오는 내가 꿈꾸던 변화가 얼마나 아득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했다. 내가 아무리 글을 쓰고 벽을 두드려도 아이가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할 현실은 여전히 저토록 날이 서 있다.


아무리 좋은 세상을 물려주려 애써도, 아이는 그 세상의 경계에서 서성여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힘이 빠졌다. 세상이 바뀌기는 하는 걸까. 아니, 설령 바뀐다 한들 그 속에 너의 자리가 있기는 할까.


사람들은 장애인의 삶을 '비참'이라는 틀에 가두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하는 듯 보였다. 타인의 불행을 전제로 자신의 평범함이 얼마나 다행인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그 비겁한 안도감. 그들은 동정이라는 이름의 시선으로 우리를 재단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들의 일상이 우리의 삶과 비교해서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아침마다 내 보물 대단이가 "안아드릴까요?" 하며 내 이불 속을 파고드는 그 온기를, 그 행복을 감히 알고 하는 소리냐 말이다.


그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우리만의 찬란한 세계에서, 우리는 오늘도 소소한 행복을 나눴지.


그래, 무기력 안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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