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026
요 며칠 유례없이 포근한 날씨 탓에 봄이 문턱까지 온 듯한 착각에 빠졌었다. 하늘이 회색 구름으로 낮게 내려앉았던 어제까지만 해도, 한겨울이라 부르기 무색할 만큼 온화한 공기에 옷차림은 한결 가벼웠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 세상은 온통 눈 속에 파묻혀 버렸다. 밤새 쌓인 눈의 무게 때문인지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소식과 함께 웅웅 거리며 예열을 시작하던 엔진을 껐다. 비로소 세상의 소음도 일제히 숨을 죽였다. 나는 사회로 향하려던 옷을 허물처럼 벗어던지고,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존재가 되어 따스한 이불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갔다.
낮게 깔리는 묵직한 첼로 연주곡을 배경 삼아 커피잔을 채우고는, 눈 내리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밖을 보니 밤새 내린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고개를 푹 숙인 나뭇가지들이 가득하다. 그 모습이 꼭 삶을 짊어지고 위태롭게 서 있던 나를 닮은 듯하여 한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눈은 가지를 꺾으려 내린 시련이 아니었다. 어쩌면 더 이상 애쓰지 말고 잠시 쉬어가라며, 세상이 보내준 포근하고 하얀 이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틀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찬 바람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울어대지만, 그럴수록 내 두 손은 묵직한 머그잔의 온기를 더 깊게 빨아들인다. 손끝에서 시작된 기분 좋은 열기는 어느덧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마음의 결까지 유연하게 녹여낸다.
겨울이 건네는 이 역설적인 위로와 안식은, 오늘 창조주가 내게 허락하신 고결한 축복이자 은혜다. 그동안 시간에 등 떠밀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바라는 지도 잊은 채 하루하루를 소비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이제야 나는 시간에 등을 기대고 앉아 본다. 어지러운 머릿속을 비워내고 공허했던 마음을 온전한 평온으로 채우는 이 순간은, 내 삶을 정비하는 고요한 회복의 시간이다.
겨울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눈이 내리기 때문이 아니다. 쏟아지는 눈으로 세상을 잠시 멈춰 세우고, 그 혹독한 추위의 한복판에서 따뜻하게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어느 날'이 우리에게 허락되기 때문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색 바랜 나와 마주하고, 냉랭해진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는 순간, 시간에 쫓기는 삶이 아니라 시간에 기대어 숨을 고르는 이 고귀한 멈춤이 있기에 겨울은 축복이다. 눈은 여전히 소리 없이 쌓여가고, 내 마음의 평온은 더욱 깊어진다. 나에게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