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명호 Feb 17. 2023

덴마크 이야기 2

행복한 덴마크인과 Flexicurity

행복한 덴마크인에 대한 이야기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안나 까레리나에서 불행한 사람은 제각기 자기만의 사연이 있다고 했는데 덴마크를 보면 행복한 사람 역시 제각기 자기만의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똑같은 현상에 대한 설명은 각자 보는 방식에 따라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분은 덴마크인의 행복이 경제적 여유에서 나온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필히 덴마크 특유의 유연한 노동시장과 복지를 결합한 유연안전 모델(Flexicurity)을 논할 것입니다. 사회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분은 덴마크인의 행복은 사회적 신뢰 덕분이라 할 것입니다. 덴마크인은 사람과 사람, 시민과 정부 간 높은 신뢰 수준을 근간으로 이웃과 함께 사는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분은 덴마크인 특유의 휘게(hygge)에서 덴마크인의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는 휘게는 루터교와 무관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법학자라면 덴마크인의 뿌리 깊은 준법정신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높은 준법정신은 길거리에서도 흔히 목격됩니다. 아무리 차가 없어도 빨간 불에는 멈춰 있는 보행자가 바로 덴마크인입니다.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이라면 덴마크인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투명하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높은 투명성과 신뢰 덕분에 덴마크는 애덤 스미스가 생각했던 공정한 시장경제를 영위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분이라면 일찍이 개신교를 채택한 덴마크인의 실용성과 합리성을 떠올릴 것입니다. 이 밖에도 지정학적인 관점을 강조하는 분이라면 기다란 해안선과 더불어 국토 어디서든지 바다를 접하고 있는 지리적 특징에 따른 개방성 속에서 행복한 덴마크인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이런 모습은 오늘날 한국 사회와 비교할 때 상당한 거리감을 느낍니다. 한국인의 소득 수준은 덴마크보다 낮다는 점에서 경제적 조건에 조금 더 민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경제적 조건은 덴마크에 비해 취약합니다. 한마디로 한국은 덴마크와 달리 노동시장은 경직적인 반면, 사회안전망은 덜 촘촘합니다. 한국인은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 심하게 노출되면서 협동을 경험할 기회가 훨씬 적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인은 자신 및 이웃에 대한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한국 사회는 문화적으로 공동체보다는 자신 또는 가족 단위의 삶을 지향합니다. 한국인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삶의 조건에 대한 낮은 만족도로 인해 물질적 보상에 좀 더 연연하게 됩니다. 그 결과 많은 시간을 일하다 보니 일과 여가 간에 조화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한국인은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키는 일이 손해 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이득을 취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더욱이 한국에서 다수를 이루는 중소기업, 시민단체 등은 아직도 투명성 측면에서는 국제 기준에서 볼 때 미흡하기 그지없습니다. 조합원 수가 백만 명이 넘는 거대 노동조합이 회계 관련 낮은 투명성을 지녔다는 점이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지정학적으로는 바다에 둘러 쌓여 있었지만 바다를 기회로 삼기 시작한 것은 불과 반세기 역사에 불과합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바다는 기회가 아닌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지역에 불과했습니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각국에 대한 코로나 대응책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 관련 한국과 덴마크는 모두 우수한 모범 사례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2022년 2월 방역 지침을 갑작스럽게 변경하였고 그 이후 엄청난 수의 확진자를 양산하면서 모범국가 명단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덴마크는 IMF를 포함한 국제기구가 인정하는 방역 모범 국가입니다. 최근 발표된 IMF 보고서에서는 덴마크의 성공적인 방역은 전적으로 국민의 보건 당국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고 지적합니다. 덴마크 시민은 정부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 정책을 수립할 것이라 믿고 정부의 지침을 전적으로 따른 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정부는 원하는 정책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덴마크 Aarhus 대학의 Petersen 교수는 최근 실시한 서베이 결과에서 덴마크 국민의 90%가 보건당국을 신뢰한다고 응답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같은 대학의 Bjørnskov 교수는 덴마크 국민의 정부 및 동료 시민에 대한 신뢰가 덴마크 국민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 강조합니다.   

오늘은 행복한 덴마크인을 만든 요인 중 하나인 유연안전(Flexicurity) 모델을 간략히 다루고자 합니다.

덴마크의 Flexicurity는 노동시장에서의 고용과 해고는 유연(flexible)하게 운영해서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상당히 인정해 줍니다. 그렇지만 만일 노동자가 해고되는 경우 정부는 관대한 실업수당과 더불어 직업 훈련을 제공함으로써 재취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안전한 사회(security)를 만들고자 합니다. 덴마크는 근로자의 2/3가 노조에 가입할 정도로 높은 노조가입률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최저임금, 근로시간, 휴가 등 노사 간 주요 쟁점과 관련된 이슈는 법이 아닌 합의로만 이루어진 점이 '덴마크'스런 접근입니다.

참고로 덴마크인의 합의정신은 덴마크 사회를 지지하는 또 다른 축의 하나인 협동조합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덴마크에서는 주택의 37%가 협동조합을 통해 제공됩니다. 그렇지만 덴마크에서는 협동조합 관련 어떤 법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협동조합 정신에 부합하기만 하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현재 덴마크에는 16,500개의 조합이 활동 중입니다.    

한국의 경우 노사를 포함해 이해관계자 간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도 될 일을 정치권에서는 법으로 만들어 강제화 하려 합니다. 그렇게 해야 입법권을 지닌 정치권이 시민사회 및 시장에 대한 레버리지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결과 한국 사회는 덴마크와는 달리 높은 거래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법은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집행, 감독 등에서 비싼 대가를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의 Flexicurity 모델은 특히 2000년대 초중반 국제사회에서 많은 각광을 받았습니다. 유럽연합 내부에서도 덴마크의 Flexicurity 모델에 대한 연구 및 적용 가능성이 중요한 관심사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IMF를 포함한 국제기구 역시 덴마크 Flexicurity 모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이었던 힐러리 클린튼 여사는 미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덴마크를 본받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적지 않은 연구기관에서 덴마크 모델의 적용가능성을 검토하는 연구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의 논의는 대체로 두 가지가 쟁점입니다. 한편으로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서는 좀 더 큰 정부를 만들어 보다 큰 복지를 제공하자는 것이 주요 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료보험, 직업 훈련 등 미국의 낮은 사회안전망 수준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지지자에게 덴마크는 일종의 천국 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공화당 지지자 입장에서 덴마크는 경제적 활동의 자유, 높은 수준의 법치가 지배하는 사회, 안정적인 통화정책(덴마크는 유로를 쓰지 않고 자국 통화를 사용합니다), 시장 개방 관점에서 본받을 국가라고 합니다. 특히 덴마크는 경제 운영 측면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고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시장경제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같이 미국의 입장에서 덴마크로부터 배울 점은 유연한 시장보다는 사회적 안전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미국과는 입장이 조금 다릅니다. 미국은 이미 유연한 시장을 갖췄기 때문에 덴마크로부터 사회안전망 확보만 배우면 됩니다. 그런데 한국은 덴마크와 비교할 때 (노동) 시장의 유연성과 사회 안전 망이 모두 취약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유연한 시장과 더불어 안전망을 동시에 확충해야 합니다. 바로 여기서 선택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복지론자라면 덴마크로부터 사회안전망 확보를 우선 배우자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이는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복지도 결국에는 그 나라의 경제력 수준에 부합해야 지속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복지 선순위 유연성 후순위라는 식의 정책적 선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시장의 유연성과 안전망을 동시에 향상할 정책조합입니다.       

2023 현시점에서   덴마크의 Flexicurity 모형은 지난 10  전과는 다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주된 이유의 하나는 글로벌 경쟁의 심화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 협치, 합의정신은 국내 문제를 해소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국제사회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국제경쟁력을 키우는데 어렵습니다. 더욱이 덴마크 사회에서도 이민자의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높은 실업 수당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되었습니다.  결과 덴마크실업수당은 이전과 비교해 각박해졌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도 다소 후퇴했습니다. 그렇지만 덴마크는 아직도 유연성과 안전망 확충이라는  틀은 건재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덴마크 이야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