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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Feb 12. 2023

30대 인생 첫 명품 구입기(feat.보테가베네타)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 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내 남자친구의 생일과 커플로서 첫 기념일인 100일이 겹쳐 줄 선물을 고민하던 중, 교제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남자친구가 쓰던 지갑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최근엔 남자친구가 내게 사준 첫 선물인 목도리(알고보니 고가였던..)를 내가 잃어버리기도 했고..(주절주절)


이래저래 선물을 찾다가 내 눈에 이 아이가 눈에 들어와버리고 만다.


보테가베네타 공식홈페이지 / 다크모스 컬러


사용후기를 알고싶어 블로그를 뒤지고 다닌 게 2주 정도 되었는데 해마다 가격이 올라 지금은 정가 490,000원에 도달해있었다.


지갑이 49만원..? 카드슬롯이 고작 3개밖에 없는데? 한 면은 아예 쓰지도 못하고? 이 쪼꼬만한 게 49만원이라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갑이 남자의 자존심 같은 거라는데.. 오래 쓰는 물건이기도 하니까.. 합리화를 힘써해댔다.


아는 남자 지인들에게도 이 디자인을 뿌려가며 답정너짓을 하기도 했다.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인 듯 했다. 그리고 초반부터 너무 풀악셀 밟지말라는 회사동기의 조언도 있었다. 첫 선물로 50만원은 좀 세긴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또한 내 귀를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당분간 돈 나갈 일이 계속 있어서 여유가 많지도 않은데 왜 이런 사치품에 눈이 멀어서는.


2주의 고민 끝에 일단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상품을 예약해둔다. 내가 있는 지역에는 해당 브랜드가 입점해있지 않아서 근처 대도시로 나가야만 했다. 한 군데 예약했다가 ‘이게 아닌가..’하며 취소하고 결국은 다른 지역의 백화점에 다시 예약했다.


그리고 오늘, 기차를 타고 모셔가는 길이다.


딱 이 아이만 모시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왕복 3시간의 거리다. 내심 이 정성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생색내고싶어서 안달이 날 것 같다. 그치만 꾸욱 참을 것이다.


손바닥만한 지갑에 종이가방은 왜 이리도 큰지. 이 브랜드의 특성이라고 하나, 이 선물을 건넬 때의 상황을 상상하면 괜한 기대감만 부풀게 만들 것 같다는 부담이 든다. 나같으면 그럴 것 같다. ‘호에에에에? 이게 뭐야!?!? 뭐길래!?!??’하며 정색한 얼굴로 속에서는 호들갑을 떨었겠지. 못났어, 정말.


어쨌든 샤넬, 셀린느 등 다른 곳에는 행렬이 길기도 하던데 다행히도 내가 가고자 하는 해당 매장에는 대기가 한 명도 없었다. 바로 쑤욱 들어갔다.


“예약하고 왔는데요.”

“네. 성함이?”


이름을 알려드리자, 곧장 주문해둔 상품을 찾아 가지고 나오신다. 그 때부터 ‘침착해. 침착해.’ 속에서는 난리가 난다. 그리고 물품 확인을 시켜준다. ‘이게 바로 그 아이인가! 내가 2주동안 고민하게 만든 그 장본인!!!’ 허탈하면서도 부들부들한 가죽의 결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앞, 뒷면, 마감처리.. 이리저리 돌려보고는 문제없음을 알려드렸다. 결제를 하고 인보이스를 준비해주신다고 한다. 인보이스 발행에 1-2분 정도 걸렸다. 내가 그 매장을 들어갔다 나오기까지는 5분이 걸렸다.


결제를 하는 중에는 내가 제법 멋있어보였다. 명품 매장이라는 곳에서 쿨거래를 하는 내 자신이 낯설어보였다. 겉으로는 티내지 않으려 애썼다. 나를 명품매장 처음 가본 사람으로 보지는 않았겠지? 침착했던 나를 아주 칭찬한다.


포장된 가방을 받아들고 나오는데 묘한 감정이 들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싶은 걸 해줄 수 있다는 보람이 마법가루를 뿌린 것처럼 뾰로롱 - 하고 내 온몸을 휘감았다.


그리고는 바로 비현실감이 나를 뒤덮었다. 내가 감정을 정리할 때 가곤 하는 동전노래방을 찾았다. 2천원을 넣고 노래를 부르는데, 순간 50만원을 쓰고 온 내가 2천원으로 노래를 부르고 앉아 있는 그 모습에 괴리가 느껴졌다.


무슨 정신으로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물건을 샀을 뿐인데, 그동안의 부담과 걱정이 녹아버린 느낌이었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그 금액이 나에게 중압감을 주는 걸까.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이런 상황에 나를 더 노출시켜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선물을 빨리 그에게 전하고싶다. 참 보고싶은 낮이다.


- 혼란스러운 구입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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