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분수령이 되길
지난 12.3 내란사태 후 드뎌 대선을 치르고 새 정부가 출범했다. 나도 투표 마지막 개표결과까지 보느라 새벽까지 못 잤고 어제는 하루 쉬면서 생전 잘 안 보던 뉴스를 보며 새 정부의 첫날을 함께 했다.
대통령은 첫 공식일정으로 현충원을 방문하였고 방명록에 그의 첫 메시지를 남겼다.
“함께 사는 세상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
국민과 함께 만들어가겠다”
이 말속에 그의 포부와 의지를 다 담았다고 보고 나는 그의 삶의 행적으로 미루어 이것이 단순한 말 뿐은 아닐 거라 믿는다.
경북 안동의 외진 화전민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나왔고 성남시로 올라와서 소년공이 된 그의 삶은 한 마디로 입지적이다. 나는 그의 성남 시장시절 sns로 억강부약 대동세상을 꿈꾸고 실행해 가는 그를 유능한 행정가로 알게 되었다.
흔히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공허한 말 대신 그는 시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함으로 청탁을 배제하는 실행력을 보였고 나는 그때 우리나라 모든 공무원들이 이를 롤 모델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정고시로 대학을 갔고 23세 사시 합격 후, 25세에 성남시 노동인권을 담당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성남시립 공공병원 건립을 위한 투쟁을 하며 시민운동가가 되었고 갈수록 기득권의 벽에 부딪히면서 직접 시장이 되기로 결심한다. 이런 그의 삶의 궤적은 왜 그가 정치를 시작했는가를 보여준다.
억울한 사람을 변호하는 것 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으니 정치란 해법을 생각하게 된 것이라 본다.
대통령이 되어 국회에서 취임사를 하고 그가 처음 만난 사람은 국회의 청소노동자와 방호직원들이었다. 우리 사회의 소외되고 낮은 계층의 사회적 약자들을 먼저 생각하고 돌보겠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남동생은 청소미화원이고 성남 시장 시절 청탁으로 그를 괴롭혔던 그의 셋째 형만 대학을 졸업했고 나머지 7남매는 모두 저소득층이다. 인생의 출발점에서 그는 기득권도 중산층도 아닌 하층 빈민이었고 지금도 그의 형제들이 그러하다. 여동생은 대통령이 성남시장으로 재임하던 중 청소노동자로 일하다 뇌출혈로 사망했으니 취임날 무릅굽혀 함께 사진을 찍은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 지 짐작이 간다.
그런 그가 지난 대선 때 윤석렬과 30만 표 미만의 극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사실 그때 나는 왜 민주당은 눈에 띄는 몇 명 외에는 그에게 절대적 지지와 응원을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학벌도 특별한 연줄도 없는 그에게는 그때도 오직 시민들이 절대 지지층이었다 본다.
그 후 그는 당대표로서 당내 수박들을 쳐내고 내부정리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지난 3년 윤석렬 정권의 여러 가지 목불인견을 겪으면서 후회했을 것이다. 그러했기에 이번 대선 때에는 다시 정비된 민주당의 일사불란함으로 역대 최다 투표율과 득표율로 당선될 수 있었다.
국힘당의 용병으로 와서 근소차로 대선에 이긴 윤석렬은 불안했던 지 정적이었던 이재명 제거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검찰출신으로 오직 ‘수사와 제거’만 아는 그는 이재명을 그간 376회 압수수색을 하였고 검사소환도 7차례를 했다.
언론까지 가세하여 정치검찰의 피해자인 이재명을 계속적으로 범죄자 취급하며 사법 리스크란 말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게 했다. 그러다 급기야는 펜으로도 법으로도 죽일 수 없자 물리적 신체적 제거를 시도하고 칼로 찔렀다. 그러나 인명은 재천이고 시대적 사명과 국가적 위기에 쓰임이 필요해서인 지 1mm 차이로 그는 죽지 않았다.
그러던 차 부인 관련 특검과 명태균 게이트 등 더 이상 버틸 수 없이 궁지에 몰린 윤석렬은 군 통수권까지 이용해서 부정선거란 발상과 함께 국회를 해산시키고자 내란을 일으켰다.
그는 와이프에 대한 특검은 모두 거부하면서 야당대표였던 이재명을 3년 동안 9번의 요청에도 만나지 않았다.
겨우 지난 총선을 앞두고서야 형식적으로 한번 만나 대화가 아닌 자기 말만 했다고 한다.
그런 불통과 독재, 무속정권의 상왕 정치를 하려던 윤석렬이었건만 언론과 국힘당은 이재명이 이제 대통령이 되면 독재자가 될 거라고 미리 떠들기도 했다.
이재명은 대통령 취임사를 하고 첫 오찬을 국회 사랑채에서 야당 대표들과 하면서 소통과 협치를 열어가겠다고 했다. 3 년동안 야당대표를 만나지 않았던 전 대통령에서 겪었던 불통과 단절을 경험한 그였기에 그리했을 것이다.
대선 유세동안도 각지를 돌면서 그는 분열된 나라의 통합을 강조했다. 대통합을 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지역과 계층을 넘어서 모두를 아울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통합은 무조건 덮는 봉합과는 다르다. 내란 사태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른 후 대통령에 오른 그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내란 세력 척결로 내란사태를 종식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국민안전뿐 아니라 안보가 위협받고 민생은 물론이고 국제경쟁력 또한 나락에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란 관련 수사는 신속히 처리되어야 하고 그 바탕 위에 국민과 나라를 위한 그의 실용적 민생경제와 외교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와 새로 시작하는 정부가 그렇게 해 갈 수 있도록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보며 응원할 것이다.
이미 군사력 5위에다 경제력 10위인 우리나라가 정치만 안정되고 선진화된다면 그는 정말 역사의 분수령을 넘는 리더로 기억될 것이다.
소년공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그의 유별한 삶도 그가 늘 하는 말처럼 국민 머슴으로 쓰임 받기 위해 단련되기 위해 걸어온 그의 특별한 여정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노예해방하면 링컨을 떠올리고 인종차별하면 넬슨 만델라를 떠올린다.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다 자신만의 역할을 했듯 이재명 대통령도 부디 자신에게 주어진 5년을 잘 쓰임 받은 후 우리 역사의 전환점을 훌륭하게 넘은 좋은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자신이 하는 일로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 자기도 행복하다는 그를 보며
정호승의 '먼지의 꿈'이란 시가 떠올랐다.
먼지는 흙이 되는 것이 꿈이다
봄의 흙이 되어 보리밭이 되거나
구근이 잠든 화분의 흙이 되어
한 송이 수선화를 피워 올리는 것이 꿈이다
먼지는 비록 끝없이 지하철을 떠돈다 할지라도
내려앉아 더 낮은 데까지 내려앉아
지하철을 탄 사람들의 밥이 되는 것이 꿈이다
공복의 출근길에 승객들 틈에 끼여
먼지가 밥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