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마을 이장선거

통쾌한 결말과 시원한 뒷풀이

by 김별

간밤에 진눈깨비가 내린 아침이다.


어제는 내가 귀촌한 마을에 이장선거가 있었다. 이미 두 달 전부터 앞집 이웃이 이장 출마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나도 이번 선거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결의가 있었다. 겨울철이라 지리산 집에 뜸하게 오니 선거날짜를 단단히 일정에 박아두라는 당부말씀도 있었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시골에서 이장의 역할과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우리 마을은 지난 몇 년간 환경이슈로 한바탕 난리를 겪은 터라 더 했다. 시골유지 기업이 주민들에게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환경을 침해할 수 있는 공장 확장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맑은 공기와 물을 위해 귀촌한 터라 강력하게 아랫마을과 합세하여 반발했고 짧지 않은 시간동안 환경운동을 했다.


하지만 그 기업주는 가장 인근한 우리 마을 이장을 허수아비로 앉히고 공무원들까지 자기 뜻대로 하려 했기에 반대하던 우리는 투쟁 끝에 나중에는 적당한 타협점에서 주저앉았다.


이장 임기는 3년이나 그런 식으로 허수아비 이장이 두 번이나 연임을 한 셈이다. 나는 마을회의에 나가서 ‘당신 물러나라’식으로까지 직격탄을 던진 적도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걸 이제라도 바로잡고 더 이상 시골유지에게 휘둘리지 않고 마을과 주민을 일할 사람을 뽑아야했다.


앞집 이웃은 면장도 하셨기에 행정업무를 잘 알고 우리가 5도2촌 생활을 하며 설렁설렁 여행도 다니는 동안도 마을에 정자도 지으시고 등 야무지게 일을 하신 분이다. 전임 이장이 카톡 사용도 안 되는데다 발음도 부정확하여 ‘주민 여러분’ 방송이 나와도 뭔 말이래? 하며 잘 알아듣지도 못하던 거에 비하면 능력으로도 비교불가다.




어찌 되었든 오직 앞으로의 마을을 위해 간구하는 마음으로 투표 날 서둘러 갔다. 겨울 아침 10시 마을 총회인데 어디서들 그리 많이 왔는지 마을회관에는 차댈 데가 없을 정도다. 남편은 입구 데크 쪽에 간신히 주차를 했다.


평소에는 잘 안 보이던 귀촌한 젊은층들도 보이니 얼마나 이번 선거가 2파전으로 박빙 선거운동도 치열했는지 보여준다. 우리 마을이장은 흩어진 다섯 개 작은 마을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즉 말해서 작은 마을 5개가 한 행정단위 ‘00마을’로 묶여있는 셈이다. 각 마을에는 마을 반장과 개발위원이 있다.


내가 귀촌하여 집을 지은 지도 벌써 9년째고 마을 환경 이슈로 각 마을을 돌며 만난 어르신들이랑 주민들 얼굴도 낯익으니 반갑게 인사를 했다. 천 평 밭 농사를 짓는 남편은 사실 실거주자로 나 보다 더 이곳에 많이 머물지만 주소이전이 안 되어 투표권이 없다.

나는 행여나 과한 신경전으로 서로 긁히기 없도록 상대편 후보사람들이 오해할까봐 ‘아 남편은 운전기사로 오늘 같이 왔어요’라며 필요하지도 않는 말도 덧붙였다.


간략한 이장 인사말과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등장하는 얼굴 마담들, 군, 도의원, 지방공무원 등등의 인사가 끝났다. 이어서 선관위원장님의 세세한 선거규정 설명과 그간의 선거운동에 있었던 충돌 사안 등의 보고가 있었다. 그러면서 혹시나 불미스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현 선거조항의 보완을 위한 즉석 거수 표결등 시간이 거의 한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끝까지 인내심으로 버티는 노인분들이 존경스럽다고 생각하는 동안 일부 사람들은 투표하러 온 바쁜 사람 붙잡아놓고 뭐하냐? 며 고성도 나오기 시작한다. 승질 급한 나도 조급해지는 건 마찬가지다. 중요한 사항이긴 하지만 왜 이렇게 사람 다 모아놓고 투표 날 하냐? 싶으면서도 그간의 마을 상황 돌아가던 거 익히 아는 바라 참는다.


선관위원장은 내가 환경이슈로 힘들 때 그래도 유일하게 나를 드러내놓고 응원해준 사람이다. 마을에서 제일 합리적 판단과 이해를 하시며 의사전달력과 언변 또한 뛰어나신 분이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2파전의 양쪽 사람들 모두 ‘대통령 선거보다 더 힘들다’ 한숨을 쉬며 투표를 시작했다. 나도 긴 줄을 서서 투표를 마치고 주차한 운동장에 나가 시원한 공기를 쉬다 개표결과를 보러 들어갔다.


앞집 언니에게 될 거 같냐? 물어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면서 만약 남편이 떨어지면 창피해서 딴 곳에 가서 살려한다니 내 심장도 발 아래로 뚝 떨어진다. 아까 총회 때 박수소리나 거수분위기로 봐선 될 거 같아요, 라며 나는 다독거린다.


언니는 상대 후보 스폰인 00사장이 평소 안 보이던 자기 쪽 사람을 열 명 이상을 데려온 거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마을에서도 실거주자가 아닌 사람들에 대해 꼼꼼히 주민등록증 다 확인하고 철저하게 검증하며 하니 사실 이런 투표는 이 골짜기에서도 처음이었다 한다.


어쨌든 바를 정(正)자를 써 가며 개표하는 동안 나도 초긴장을 했다. 총 94표 투표를 했다. 모인 사람들은 백 명이 훌쩍 넘었으나 투표자격을 깐깐히 함으로써 그리 되었다.


앞집 후보 아저씨는 50만 넘으면 된다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바로 옆에서 꼭 될 거라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한표 한표 개표를 카운트하던 남편이 ‘됐다’ 하니 앞집 아저씨는 ‘어데 어데 진짜가’ 하셨다. 그러고 나서 좀 있다 정말 바를 정자가 열 개를 넘어섰다.


나는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앞집 아저씨 손을 꼭 잡았다. 정말 나 또한 6년 동안 울화통이 터졌던 이장자리에 대한 체증이 다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소리는 지를 수 없었지만 너무나도 통쾌한 한 방의 해결이었다.


이어서 일사천리로 취임사를 하고 바로 그 스마트하신 선관위원장님의 추천과 즉석 거수표결로 새 임원이 선출되었다. 선관위원장님이 새마을 지도자가 되시고 새 이장님의 친구 분이 운영위원장이 되었으니 잘 굴러가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전임 이장이 태클을 걸고 감사가 되었다. 그 한 사람쯤이야 싶었다.


이렇게 속 시원한 선거와 일사천리 진행이 얼마나 오랜만인 가!




지난 이장 선거 때 나는 불참했는데 근소 차로 앞집 아저씨가 떨어지고 나서 3년의 와신상담 끝의 쾌거였다. 그후 나로서도 이래저래 마음의 빚도 있었는데 암튼 너무 기뻤다. 이제 마을일로 협력은 할지언정 억울한 스트레스는 안 받게 되었으니 더욱 다행인 거다.


아침에 고구마 몇 조각 먹고 나와서 혈당이 떨어지는데 고기집으로 회식이 예약되어 있다 해서 더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고추장에 버무린 육회가 달달한 나주배와 같이 썰어져 있어서 입에서 녹았다. 집에서 삼겹살만 구워먹다 오랜만에 식당 양념갈비도 푸지게 먹었다.

이제는 니편 내편도 없고 누가 누굴 찍었는지도 번연히 다 알아도 신임 이장을 축하하고 서로 웃으며 밥을 먹으니 그 또한 좋았다. 이장과 우린 앞뒷집 사이고 옆집 형님네 4식구는 사장 쪽인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왜냐면 옆집은 사장과 서로 친척이자 지금도 그 회사에서 월급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다 서로 이웃하며 잘 지내려한다.


우리가 집 비우는 동안 옆집 형님은 비가 오면 혹시나 창문이 닫혔는지 봐주시고 연못의 물고기 밥은 꼭 형수님이 챙겨 주신다. 같이 밥 먹으면서 또 김장김치 챙겨주시려고 본가는 언제 가느냐고 물으신다.


시원하게 끝난 이장 선출 후~~더욱 달달했던 육회와 푸짐하게 먹은 양념갈비


~오늘 점심은 그간 수고하신 앞집 신임이장님 부부를 초대하여 간단하게나마 우리집에서 같이 먹으려고 한다. 점심준비하러~~휘리릭~~!!!

매거진의 이전글떠남과 돌아옴, 그리고 땅과의 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