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세인트 존스 대학교는 'the most contrarian college'로 소개되었다. 형용사 'contrarian'은 '반하는', '반대의'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단어 contrarius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반대 의견을 가진'으로 해석된다. 세인트 존스는 다른 많은 고등교육기관과는 다른, 어쩌면 관습적인 교수법에 '반대되는' 배움을 실천한다.
누군가 나에게 세인트 존스는 어떤 학교야?라고 물을 때, 나는 항상 "교수, 시험, 성적이 없는 곳이다"라고 대답해서 상대를 놀라게 한다. 그런 천국 같은 학교가 어디 있냐며 시험이 없다는 사실에 꽂혀 부러움을 표현하는 게 다반사고, 많은 경우에 시험 없이 학생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교수님 없이 어떻게 배우는 지와 같은 질문이 뒤따른다. 시험이 없는 것이 매우 달콤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험이 없다는 말 뒤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압박감과 무게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모든 수업은 토의 기반이다. 교수자가 강의를 하는 일방적 전달 형식의 수업은 없다. 따라서 교실의 모습도 독특하다. 단상이 놓이고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강의실과 달리, 세인트 존스 교실 한가운데에는 원탁 하나가 놓여 있어 모두가 서로 마주 본다. 그리고 소규모 수업의 취지에 맞게 약 15명 남짓한 학생들이 한두 시간 동안 책을 중심으로 질문하고 탐구하며 대화한다. 그것이 곧 우리가 하는 공부이다.
세인트 존스 공부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대로 하려면 끝없이 공부할 수 있고, 대충 하려면 한없이 대충 할 수 있는 양극단으로 열려있는 무한한 공부. 4학년 1학기, 내가 지금 각 수업에서 읽고 공부하는 책을 나열하며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수학 시간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랩에선 맥스웰의 열 이론을, 프랑스어 수업에선 보들레르의 악의 꽃 시집을, 그리고 세미나(고전 토의)에서는 마르크스의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를 읽는다.
그렇다 나는 하루 종일 읽는다. 읽는 게 수업 준비고 읽는 게 숙제다. 수학 수업 준비로는 문제 풀이를 하고, 랩 수업을 위해서는 실험 발표를 하는 식으로 수업 준비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다. 과목에 관계없이 다 읽어서 공부하고 준비한다. 그리고 내가 읽고 생각한 것을 바탕으로 수업에서 생각을 나누고 질문하기 때문에 결국 읽는 것이 우리 학교에서는 시험의 역할도 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도 대한민국 공교육을 받으며 수년간 셀 수없이 많은 시험을 친 학생으로서 시험의 무게를 깎아내리거나 간과하고 싶지는 않다. 시험 준비도 시험을 보는 것도 버거울 때가 많았다. 그래도 시험은 보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기출문제를 집중 공략하고, 수많은 공식을 암기하고, 문제를 풀고 풀고 또 풀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시험 준비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시험 준비에는 끝이 있다. 필요한 공식을 다 외우고 연습 문제를 다 풀면, 그리고 내 문제집에 동그라미가 많아지면 준비가 마무리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을 보고 나면 이제 미련 없이 놓아줄 수 있다.
책을 읽는 건 다르다. 수업 직전에 밥 먹으면서 빠르게 흘깃 훑고 수업에 들어온 학생도, 전날 밤을 새우며 정독하고 노트테이킹을 하고 수업 전에 친구들과 생각을 나눠보기까지 한 학생도, 둘 다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토의 중 발언의 깊이에서 독서의 밀도가 드러나기 쉽다. 하지만 항상 명확한 건 아니다. 학생의 성향에 따라서 즉석에서 책을 훑고도 꽤 괜찮은 발언을 할 수도, 두세 시간을 들여 숙독했음에도 발언을 아예 하지 못하기도 한다. 게다가 책을 더 깊게 읽으면 읽을수록 더 난해함이 두드러질 수 있다. 그래서 대충 읽은 학생보다 더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음먹고 수업 준비를 하면 진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같은 책 한 권이 한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을 때 얼마나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는가는 정말 기가 막힐 정도이다. 반복해서 읽을 때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또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른, 심지어는 반대되는, 관점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튜터(세인트 존스의 교수님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가 입을 모아 수업 전에 책을 두 번씩 읽어오라 조언한다.
세인트 존스에 오고 나서, 숙제를 다 했을 때의 뿌듯함을 잃었다. '끝!'이 없다. 게다가 요즘은 아인슈타인, 헤겔, 맥스웰 같은 난해한 책을 읽다 보니 읽어도 읽어도 이해를 못 한 것만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벌써 3년째 이렇게 끝이 없는, 무한한 혼란의 굴레에서 걷고 있다. 아포리아(aporia)를 매일 마주한다. 이제 몇 달 뒤에 졸업하면 그때는 드디어 끝이라는 후련함이 느껴질 것 같긴 하다. 아포리아를 탈출한다기보다는, 더 이상 매일 마주할 일 없이 외면할 수 있는 그런 열등한 후련함. 본질적인 후련함은 영원히 느낄 수 없을 테다. 아포리아에서의 자유를 바라는 건 무지한 일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