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잘 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달랐을까?

그럼, 언택트이면서 정보화가 가속되는 요즘은 어떤 능력이 있어야 할까?

by 함께행복하기

원시인들은 수렵 채취 생활을 했다. 동물을 사냥하거나 과일 등의 열매를 따서 먹고 살았다. 이때는 사냥을 잘 하고 먹을 열매를 잘 찾는 사람이 신나게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고대문명이 나타나면서 농경사회가 시작이 되었다. 3000년 정도 지속된 농경사회는 그야말로 농사를 잘 짓고 농사 지을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잘 살았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 대량 소비의 산업화가 급속도로 이어졌다. 농경사회 다음으로 300년 정도의 산업사회에서는 노동, 자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잘 살았다. 교통의 발달이 생산물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여 재화의 효용가치를 높였다. 그리고 통신이 크게 발달하여 생산과 소비를 조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최근 30년 정도에서 IT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함에 따라 기술과 정보가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단순노동이나 자본에 비해 매우 커졌다. 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기술과 정보를 가진 사람이 신나게 잘 사는 시대이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잘 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달랐다.




코로나19로 인터넷을 활용한 생활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언택트 시대이다. 인터넷으로 사람을 만나고 인터넷으로 필요한 것을 산다. 놀이도 인터넷을 통해 많이 이루어진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도 얻고 있다. 인터넷으로 사람의 생활이 많이 이루어질수록 관련 기술은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다.


만약 정보화 사회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과거의 기술은 어떻게 될까?


과거 수공업을 할 때는 장인마다 내는 손맛이 달랐다. 새로운 장인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퍼지는 속도가 느리고 익숙함과 선호도가 있기에 과거의 장인이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는 퍼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클릭 한번의 시간 1초만에 전세계로 퍼질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 가진 힘을 대부분 원하기에 과거의 기술은 사라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기에 기술과 정보의 세계에서는 오로지 1등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게 될 것이다.


마치 그 모습은 원시인들의 수렵사회와 비슷할 것이라고 말한다.



정보의 세계는 논, 밭이나 공장, 사무실 등 이미 갖추어져 있어 그 구조가 다 파악이 되는 익숙한 곳이 아니다. 원시인들이 전혀 가보지 않은 밀림을 탐험하듯이 정보의 밀림을 탐험하여 쓸모있는 기술을 찾고 만들어야 한다.


탐험의 위험은 원시인들보다 더 클 수 있다. 그 이유는 원시인들은 직접 발로 움직이기에 탐험 공간의 범위가 정해질 수 있었고 제한된 영역에서 이미 가본 사람의 경험이 위험을 피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보는 시공간의 범위가 무제한이며 하루하루 시시각각 새롭다. 말하자면 매번 새로운 미지의 탐험을 해야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도 언택트 상태에서 말이다.


이를 언택트 상태에서 정보화가 가속되는 '언택트 정보화 사회'라 말해 보겠다.




'언택트 정보화 사회'라 했을 때 '언택트'가 주는 '불확실성', '정보화'가 주는 '정보의 방대함'과 '변화의 빠르기'가 들어있다.


불확실성이 높고 방대한 정보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뜻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보면 참 혼돈스럽게 느껴진다.


이 혼돈스러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또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불확실하면서도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에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면 어떨까? 마치 화살이 과녁의 정 중앙을 꿰뚫는 것과 같지 않을까? 부수적인 사항을 자연스럽게 정리하여 꼭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여 곧장 상황에 맞는 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 눈에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멀리서 크게 전체를 보는 눈과 가까이에서 작게 자세히 보는 눈이 함께 필요하다.




정보를 한눈에 알아차린다는 것은 무얼까? 인생의 절반 이상을 흙 연구자로 흙을 관찰하며 보냈기에 흙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다.


+ 또는 - 전하가 있어 전기를 띠는 점토와 유기물은 흙이 엉길 수 있게 한다. 곰팡이 균사도 실같아 흙을 엮는 역할을 한다. 잘 엉기고 엮어진 흙의 작은 덩어리에는 비어있는 구멍이 있는데 이 속은 물을 품기 좋다. 작은 덩어리가 모여 더 큰 덩어리를 이룬다. 큰 덩어리 흙의 구조에 비어 있는 구멍은 작은 덩어리에 있는 것보다 크다. 물도 품고 공기도 품는다. 큰 덩어리 사이의 구멍은 대기 중 산소가 드나들고 비오는 날 물이 지하 깊숙이 내려가는 데 도움을 준다. 덩어리라는 구조와 구조안의 성분, 비어있는 공간 이 세 가지가 크게도 작게도 모두 있다. 놀랍게도 작은 덩어리과 큰 덩어리는 그 모양이 닮아 있다. 이렇게 전체와 부분이 닮은 것을 프랙탈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양뿐 아니라 구조의 성분, 빈 공간도 닮아 있다. 특히 작은 덩어리, 큰 덩어리 모두에서 비어있는 공간 크기의 다양성이 중요하다. 자유로운 소통과 안전을 위한 저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큰 구멍도 작은 구멍도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 듯 닮았지만 흙 덩어리는 크기에 따라 그 역할이 다양하다. 그리고 그 다양성이 생명을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흙에서 정보가 자유롭게 흘러가는 흐름을 타기 위해서는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덩어리 전체를 보면서 작은 것을 자세히 보며 큰 것으로, 큰 것을 크게 보며 작은 것으로 규모와 관찰의 방향을 달리하며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더라도 전체를 관찰하다 보면 구조가 보이고, 구조를 이루는 성분, 비어있는 공간이 드러난다. 드러난 만큼 자유롭게 소통하고 안전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정보는 자연, 기술, 그리고 사람(사회)이다.

또 실제로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는 자연, 기술,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살고 있다. 이 셋 모두가 우리의 삶 그 자체인 셈이다. 나는 쌍둥이를 키우며 잘 엮어진 흙의 구조인 떼알처럼 이 셋을 다 엮어 펼쳐 보이는 책과 교육을 원했었다.


다행히 자연, 기술, 사람을 잘 짜여진 떼알과 같은 구조로 펼쳐 보이는 프로기(froggee) 책을 만 났다. 예전 내가 어릴적보다 자연과 직접 접하는 시간이 매우 적지만 책으로 생활과 연결하여 살피니 더욱 실감나기도 한다. 그렇게 도시에 있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요즘 아이와 함께 프로기(froggee, http://www.kids-froggee.com/kor/) 책으로 오감으로 관찰하는 자연, 자연의 원리로 만든 지금 기술과 미래 기술, 그리고 기술이 사람과 자연에 주는 영향까지 전체를 관찰하는 새로움을 누리고 있다.


관찰하다 보면 구조가 보이고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게 된다.

관찰하는 대상이 달라져도 구조를 알고 흐름을 타게 되는 과정은 비슷한 경우가 많다.

아마도 자연과 사회에서 관찰하는 대상은 서로 닮은 구조, 프랙탈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 기술, 사람 모두를 담고 있는 지식정보를 탐험하고 한눈에 알아차리는 것을 연습함으로써,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가게 될 아이를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자연, 기술, 사람을 엮어진 구조 속에서 이해를 이어간다면 어른이 되어 자연과 사람이 더 푸르게 공존하는 길을 열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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