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받고 귀여움 받고 교육을 받는다면 이 아이가 무엇인들 되지 못하랴, 들판에 야생 장미 한송이가 피어나면 정원사들은 감탄해 마지 않는다. 그 장미를 따로 옮겨 심고 가꾸고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인간을 위한 정원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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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괴롭히는 것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이 노동자들의 모습도 아니고 그들의 누추함도 아니다. 사람들안에 있는 모차르트가 암살당한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힌다. 정신의 숨결을 진흙 속에 불어 넣어야 비로소 인간이 창조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나도 아이 안에 있는 모차르트를 암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써 세상 그 누구보다 아이가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길 바라는데 말이다.
바라기만 하고 행동은 그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쌍둥이 독박육아 직장맘이라는 외줄타기를 과감히 그만하겠다 선언했다.
낯설지만 처음으로 돌아가 아이와 즐겁고 건강한 오늘을 새롭게 디자인하기를 시작했다.
디자인 1.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냥 '나'가 되는 것을 허락하기
아이 곁에 있으면서 어느 정도의 정서적 안정은 있었지만 짧은 학교생활과 긴 집콕생활에서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났다. 엄마도 아이도 처음 겪는 코로나 상황에서 여행도 쉽지 않아 스트레스를 더 가중시켰다. 쌍둥이지만 성도 다르고 성향도 다른 두 아이는 무얼 해도 한 명은 불만이 생겼다.
떨어져 있어 그리워하는 것에서 함께 있지만 서로 불만이 가득한 것으로 문제상황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괴로웠다.
우리나라 속담에 호랑이한테 잡혔어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다. 엄마부터 정신을 차리자 하며 이리 궁리 저리 궁리이다. 가족 규칙도 만들어 보고 용돈으로 구슬려 보기도 한다. 정신 차리자 하며 하는 엄마의 행동은 늘 궁리하는 것이다. 10대부터 해온 것이 그것이라 엄마가 되어서도 하는 것이 궁리이다.
그런데, 그런 엄마한테 아들이 말한다.
'엄마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아.'
딸도 엄마한테 말한다.
'엄마, 화 안 내고 싶은데 잘 조절이 안돼. 미안해'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랍시고 이런저런 궁리만 해대다 아이들의 따뜻한 말에 힘이 쭉 빠져 버렸다. 아이들 행복을 위해 뭐든 하겠다 해놓고선 나의 궁리가 오히려 아이들을 괴롭힌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을 자석에 비유한다면 각자가 내는 자기장이 있고 두 사람이 만나면 한사람의 자기장이 다른 사람의 자기장을 침범할 수 있다. 침범 당할 때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겁이 나 물러서기도 한다. 함께 살기는 어른도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더하다. 더구나 이렇게 어려운 함께 살기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동물들이 타고나면서 가진 본능적 행동 시스템마저 없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배워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결국 사람과 사람은 실수와 실패를 통해 조화와 균형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회 속에서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 2명으로는 사회가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명이 더 있으면 3명이다. 적어도 3점은 있어야 삼각형이라는 도형을 만드는 것처럼 사회도 3명은 되어야 한다 싶었다. 방법은 하나 내가 엄마라는 꼬리표를 떼고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사실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것은 나에게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늘 내 속에는 아이의 마음이 있었고, 아이처럼 노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 나의 유년에 이루지 못했던 꿈이었던 싶다. 친구와 마음껏 노는 것. 아들도 학교 숙제로 나온 꿈 비행기에 이렇게 적었다. '친구 ooo, ooo, ooo와 신나게 노는 것' 세월의 간격을 두고는 있지만 엄마와 아이가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놀이터에서는 주로 뛰어다니고, 집에서는 주로 역할극을 한다. 엄마라는 꼬리표를 떼고 나면 아이들과 놀며 그냥 '나'가 된다. 아무 부담도 없고 그냥 즐거운 '나'가 된다.
사실 과거에 언제 그냥 '나'로서 살았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유년에도 늘 아프셨던 부모님이 걱정이었고, 10대부터 시작된 고학 생활 동안에는 늘 돈 걱정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항상 해야 될 일과 그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그냥 '나'로서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은 많지 않다. 그래도 기억나는 것은 늘 곁을 지켜주던 자연과 친구와의 우정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는 소설을 좋아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대학교 때 친구랑도 햇살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햇볕을 쬐었었다. 아들이랑 햇볕 쬐기를 하다 보면 그때 그 친구가 많이 생각난다. 몇몇의 장면 외에는 그냥 '나'이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일, 또는 역할에 충실한 노예였던 듯 싶다. 그래서 가슴이 막힌 듯한 느낌이 늘 한구석에 있었던 듯 싶다.
아이들이 걱정근심, 불평불만으로 가득찬 이제까지 내가 아니라 그냥 '나'로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엄마가 된 걸 참 잘했다 싶었다.
함께 놀다가 어느 순간 편안히 아이의 눈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 눈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가슴이 따뜻해지며 편안해졌다. 내가 언제 이렇게 사람의 눈을 편안히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있었다해도 아주 오래전이었던 듯 싶다.
머리로 이런 저런 궁리만 하다가 가슴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슴이 작동하기 시작하니 이제까지 힘들어했던 순간들이 그냥 별 것이 아닌 걸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 함께 한다는 그 자체가 고맙고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까지 사는 것이 참 괴로웠던 엄마가 살아가는 것이 참 좋구나 로 바뀌기 시작했다.
엄마랍시고 이런저런 궁리만 해대다 아이들의 따뜻한 말에 힘이 쭉 빠져 버렸다. 아이들 행복을 위해 뭐든 하겠다 해놓고선 나의 궁리가 오히려 아이들을 괴롭힌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을 자석에 비유한다면 각자가 내는 자기장이 있고 두 사람이 만나면 한사람의 자기장이 다른 사람의 자기장을 침범할 수 있다. 침범 당할 때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겁이 나 물러서기도 한다. 함께 살기는 어른도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더하다. 더구나 이렇게 어려운 함께 살기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동물들이 타고나면서 가진 본능적 행동 시스템마저 없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배워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결국 사람과 사람은 실수와 실패를 통해 조화와 균형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회 속에서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 2명으로는 사회가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명이 더 있으면 3명이다. 적어도 3점은 있어야 삼각형이라는 도형을 만드는 것처럼 사회도 3명은 되어야 한다 싶었다. 방법은 하나 내가 엄마라는 꼬리표를 떼고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사실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것은 나에게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늘 내 속에는 아이의 마음이 있었고, 아이처럼 노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 나의 유년에 이루지 못했던 꿈이었던 싶다. 친구와 마음껏 노는 것. 아들도 학교 숙제로 나온 꿈 비행기에 이렇게 적었다. '친구 ooo, ooo, ooo와 신나게 노는 것' 세월의 간격을 두고는 있지만 엄마와 아이가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놀이터에서는 주로 뛰어다니고, 집에서는 주로 역할극을 한다. 엄마라는 꼬리표를 떼고 나면 아이들과 놀며 그냥 '나'가 된다. 아무 부담도 없고 그냥 즐거운 '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