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 Part B - 칠리크랩과 싱가포르의 밤
•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는 유럽풍으로 지어졌는데, 비슷한 느낌의 건물들이 주변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들어가 보니 거대한 홀이 있었고, 동남아 미술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왠지는 잘 모르겠다만, 운이 좋게도 입장료는 무료였다.
• 미술에 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다만, 전반적인 색채가 남미 느낌과도 굉장히 유사하다고 느껴졌다. 추상적이면서도 약간은 그로테스크한 느낌도 났다. 예쁘고 따뜻하고 사실적인 느낌보다는, 어쩐지 반항적이고, 때로는 강렬하고, 선이 굵고 힘이 있는 그림들이 많았던 것 같다. 멋대로 추정하자면 동남아의 많은 국가들 역시 어딘가의 식민지배를 받은 곳이 많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 갤러리를 보고 나서는 클락키 (Clarke Quay) 쪽으로 걸어갔다. Quay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원래 부두역할을 하던 곳이라 싱가포르강 사이드로 물류창고 (warehouse) 들이 있던 곳인데, 지금은 여러 펍들, 분위기 좋은 음식점들, 몇몇 쇼핑센터들이 들어와 분위기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 싱가포르에서 대표적인 음식으로 칠리크랩이 있는데, 아무래도 토스트와는 달리 혼자 먹기가 쉽지가 않아서, 네이버 카페에서 동행을 구했었다. 오늘 7시에 유명한 ‘점보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려고 클락키까지 온 것인데, 시간이 애매하게 뜬지라, 산책도 하고 쇼핑몰도 구경하기로 하였다.
• 먼저 클락키의 대표적인 쇼핑몰인 ‘클락키 센트럴’에 들어가서 돌아다녔다. 이곳은 아까 갔던 마리나 베이 쇼핑몰과는 다르게 좀 더 서민적인 느낌들의 가게가 강했다. 둘러보니 라인 프렌즈 굿즈 같은 것도 팔고 있었다.
• 아까 이미 쇼핑몰도 좀 구경했고, 마리나 베이 쇼핑몰만큼의 가망은 없는지라 대충 보고 뜨려고 했는데, ’미스터 코코넛‘이라는 가게에 사람이 꽤 서 있었다. 뭔지 궁금하여 나도 일단 섰는데, 생각보다 대기시간이 정말 길었다. 미스터 코코넛은 체인점이 여러 곳이 있는데, 이렇게나 줄 설 정도면 꽤나 맛있는 게 아닌가 기대를 했었다.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으니 30분 정도는 기다려야 하여 약속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았다. 계산을 취소하려고 카운터에 언제 나오냐고 얘기를 하니, 바로 하나 주면서 가져가라고 하신다. (어라 앞에 10팀은 있었는데…) 영문은 모르겠다만, 빨리 받으니 날름 감사하다고 하고 약속 장소까지 걸어가면서 코코넛 쉐이크를 마셨다. 당도 중간에 펄추가로 마셨는데, 달달하기도 적절하고 코코넛의 고소함도 느낄 수 있어서 줄을 서더라도 1일 1미스터코코넛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 왜 한국에는 이게 없는 걸까…
•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갔는데, 감사하게도 이미 한 분이 와서 대기를 하고 계셨다. 7시 10분쯤 되니 6명이 모두 모이고, 대기도 끝나서 마침맞게 가게에 들어갈 수 있었다.
• 들어가 보니 고급중식당처럼 가운데 판이 돌아가는 식탁이 있었고, 칠리크랩, 블랙 페퍼 크랩, 시리얼 새우, 볶음밥, 야채 (이름은 까먹었다)를 시켰다. 칠리크랩은 내가 기대를 너무 한 탓인지, 상상 이상의 맛은 아니었다. 칠리크랩이지만 그렇게까지 맵지는 않고, 오히려 약간 달짝지근한 맛이 많이 났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나지만, 꽤나 맛있게 먹었다. 블랙페퍼크랩은 칠리크랩과는 달리 소스의 맛보다는 후추의 향으로 간이 되어있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블랙페퍼크랩은 향이 화려하진 않아서 이쪽이 간장게장이라면 칠리크랩은 양념게장이랄까. 본인은 칠리크랩이 조금 더 맛있었다. 의외로 제일 맛있던 것은 시리얼 새우였다. 껍질을 벗겨서 바삭하게 튀긴 새우에 곡물을 끼얹은 요리인데, 이 시리얼이 달달하면서도 고소하고 바삭바삭하기도 하여 새우튀김의 맛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주었다.
• 밥도 맛있게 먹었으니, 싱가포르의 야경을 즐기기 위해서, 내셔널 갤러리로 다시 갔다. 오늘 ‘Light to night’라고, 내셔널 갤러리 야외 뜰에서 갤러리 쪽으로 음악과 빛을 이용한 쇼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들이 설계하여 갤러리 건물에 형형색색의 빛을 쏘았는데, 건물의 입체감이 좀 더 살아나는 것 같았다.
• 내셔널 갤러리 맨 위층에는 바가 하나 있는데, 싱가포르까지 왔으니 여기서 야경 보면서 분위기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는 꽤 인기가 많았는지 30분 정도 기다려서야 입장을 할 수 있었다. 칵테일을 한 잔 하면서 동행들과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 좋은 여행지를 갔는지 공유하면서 저 멀리 마리나 베이 쪽 야경을 감상했다. ‘이게 직장인의 삶인가’ 하면서 약간 도취되어있기도 했던 것 같다. 싱가포르는 낮에도 자연과 어우러져서 예쁘지만, 여러 랜드마크와, 증권사 건물들이 켜져 있는 밤이 더더욱 예뻤다. 너무 야경이 아름다워서 밤낮을 바꿔서 차라리 밤에 더 시간을 오래 보낼까 생각까지 했었다.
• 일행들과 12시 가까이 얘기하고 나니, 버스를 탈 시간이라 정말 아쉽게도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정말 새벽 2시까지 떠들었을지도 모른다. 먼저 자리를 뜨고 12시가 넘어서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