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 식물원, 하지레인, 버드 파라다이스, 나이트 사파리
• 두 번째 아침을 맞았는데, 오늘 점심은 비싼 요리가 아닌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푸드코트를 가볼까 싶었다. 버스를 타려고 보니 오늘 아침도 역시 녹음이 푸르렀다. 아침엔 25도 안팎이라 푹 찌는 날씨는 아니건만, 그래도 이 더운 날씨에 사이클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좀 마주쳤다.
• 버스를 타고 ‘뉴튼 푸드 센터’라는 곳으로 향했는데,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음식을 만 원 이하로 먹을 수가 있다. 싱가포르 1인당 GDP가 한국의 2~3배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싸다고 느꼈다. 요즘은 국밥도 만 원이 넘는 시대인데…
• 사전에 ‘이걸 꼭 먹어야겠다’ 하고 간 것은 아닌지라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는 곳에 나도 날름 줄을 섰다. 간판을 보니 minced meat noodle이라고 쓰여있었다. 고기완자도 국수도 잘 먹으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제일 비싸고 양 많은 scallap minced meat noodle을 시켰는데 8달러 (약 8500 원) 밖에 하지 않았다. 셀프로 음식을 받은 다음에, 앞에 아무 테이블이나 앉았다. 면은 매콤한 소스와 함께 따로 나오고, 육수가 고기, 피쉬볼, 조개와 함께 탕처럼 나왔다. 소스는 약간 라멘에 넣어먹는 라유처럼 매운데, 살짝 달달한 맛이 나서 꽤 감칠맛이 돌았다. 매운 소스로 버무려진 면을 육수에 담가서 먹으니 줄 서서 먹는 게 납득이 될 만큼 맛있었다. 맑은 해산물 국물에 매콤한 면이 조화를 이뤄서 술 마신 다음 날에 먹으면 속이 확 풀릴 것 같았다.
• 뉴튼 푸드센터를 나와서 orchard road라는 곳으로 향했다. 고급 백화점과 쇼핑몰이 즐비한 곳이었는데, 한국으로 따지면 음… 신세계와 롯데가 동시에 있는 명동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보다는 큰 백화점과 쇼핑몰이 족히 10개는 넘을 것 같아서 한국에서는 정확히 비유할만한 곳은 없는 것 같다. 수많은 쇼핑몰 중에서 ‘오차드 센트럴’이라는 곳에 가니, 아주 고급 상품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유니클로와 슈퍼마켓, 해외 공산품들을 파는 샵들도 많았다. 한국 음식만 파는 샵이 따로 있을 정도라 신기하기도 하였다. 오차드 로드는 생각보다 층계가 높은 건물인데, 올라가 보면 한국 음반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샵도 있었고, 한중일 등 각 국가 음식점들도 많이 보였다. 다문화 국가인 싱가포르를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 무언가를 구매할 생각은 아닌지라, 짧게 오차드 로드를 보고, 하지레인으로 넘어왔다. 이곳은 아랍 스트리트로, 거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케밥과 이슬람 음식으로 가득 차있었다. 아랍스트리트긴 하다만, 형형색색의 2층짜리 건물들이 거리에 즐비해있었고, 의외로 발마사지샵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레인을 걷다 보면 랜드마크가 되는 술탄 모스크에 다다르게 된다. 전날에도 모스크에 가긴 했다만, 규모나 화려함 면에서는 이 쪽이 조금 더 위였다. 실제로 들어가 보니 어느 정도 장식이 되어있었고, 더 넓기도 하였다. 그래도 모스크인지라 기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고, 실내는 상당히 조용했다.
• 술탄 모스크를 나와서 모스크 옆의 ‘캄퐁 글램’을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샵들이 많이 있었다. 작은 소품이나 선물 가게들이 많았으며, 특이하게도 한국의 ‘인생 네 컷’ 같은 셀프 사진관도 보였다. 사진관 간판은 심지어 한국어로 쓰여있었고, 안에 배치도 한국의 것과 굉장히 유사했다. 이런 한국의 문화가 싱가포르까지 전파가 된다는 게 신기하였다.
• 이번에는 버드 파라다이스와 나이트 사파리를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30분 이상 타고 꽤나 북쪽으로 올라갔다. 버드 파라다이스를 가기 위한 셔틀을 타기 위해 카티브 (Khatib) 역에서 내렸는데, 외곽이라 그런지 도시는 한적하고 아파트들만 제법 보였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베드타운인 듯했다.
• 카티브에서 셔틀을 타고 30분쯤 더 타고 외진 곳으로 들어가니 산속에 있는 버드파라다이스가 나타났다. 전날 만났던 사람들과 얘기했을 때 여기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니와 이 나이에 혼자 왠 새 공원이냐 싶어서 사실 기대는 크게 되지 않았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갔던 동물원 중에서 가장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 버드 파라다이스에 들어가면 각 새들의 종류에 따라서 여러 구역이 나눠져 있었는데, 모든 구역들은 나무문으로 다 연결이 되어있다. 그러니까 새들은 자기 구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람들만이 구역으로 넘어 다닐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좋았다고 한 부분은 새들이 새장에 갇혀있지 않고 모두 풀어져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새들이 도망가지는 못하도록 굉장히 높이 그물을 설치를 해두었다. 그 높이와 넓이가 굉장히 넓어서 새들이 자유롭게 나는 데는 거의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새들이 밥 먹고 걸어 다니는 것도 정말 지척에서 볼 수 있으며, 그러면 안 되지만 손 뻗으면 다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굉장히 가까워서 그런지 어떤 녀석은 내 신발끈이 벌레인줄 알고, 신발끈을 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지만, 무엇보다도 새들이 갇혀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먹고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게 좋게 보였다. 내가 지금까지 가본 동물원 중에서 사람도 동물도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 새들을 보다 보면 중간에 공연을 하는 야외구역이 있었는데, 새들이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묘기라고 해도 그렇게 가혹한 것은 전혀 없었고 훌라후프 같은 곳을 통과하거나, 아니면 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공연의 마지막에는 수십 마리의 홍학들이 무대를 한 바퀴를 도는 하이라이트가 있는데, 끊임없이 들어오는 새들의 행렬이 장관이었다.
• 이번엔 아까 내렸던 셔틀을 타고 나이트 사파리를 보기 위해서 싱가포르 동물원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6시 남짓이었는데, 알고 보니 표만 예약할 것이 아니라, 시간도 미리 지정해둬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동물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시간을 지정했다. 그러고 보니 가장 빠른 시간이 7시 45분. 1시간 45분이나 되는 시간을 뭐 하면서 때우나 하다가 일단 밥을 먹어둬야 생각이 들어 동물원 안에 있는 식당가에 들어갔다. 원래 무난하게 KFC를 먹으려고 했으나 그나마도 품절인지라 로띠와 향신료에 버무려진 치킨을 시켜서 먹었다.
• 피곤했는지 식당가에서 밥을 먹고 엎드려 잠을 잤는데, 일어나서 보니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시간이 되어 드디어 나이트 사파리에 입장을 하니 날이 다 저물어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게 나이트 사파리라는 본질에 더 맞는 것일지도?
• 사파리는 크게 2가지 방법으로 구경할 수 있는데, 산책로를 걸으면서 구경하는 방법. 개방된 트램을 타고 구경하는 방법이다. 당연 후자 쪽이 더 편하니 사람들은 트램을 타려고 줄을 서는데, 기다리는 데만 20분이 넘게 걸려 보였다. 못 걸을 일도 아니다만, 걸으면서 천천히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길을 나섰다. 안타깝게도 이때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 직원분께 부탁을 해서 사진은 남길 수가 없었다.
• 걷다 보면 등산 산책로처럼 되어있는데, 중간중간 동물들 영역이 있고 아주 희미한 조명만 켜놓아서 동물들이 밤에 움직이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당연히 사자나, 코끼리 등의 영역이 각각 있는데, 울타리 같은 것을 높게 쳐놓은 것도 아니라서 동물들이 마음만 먹으면 밖으로 튀어나와서 사람 다니는 길에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당연하지만 그런 일은 없긴 했다. 그리고 저런 큰 동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뱀이나, 작은 포유류들도 있는데, 이 친구들은 안타깝게도 여타 동물원과 같이 좁은 우리에 갇혀있었다.
• 나이트 사파리를 한 바퀴 걷고 나니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아쉽기도 했고, 트램을 타는 사파리 풍경은 어떨까 궁금해서 충전된 휴대폰을 감사히 받은 뒤 트램을 탔다. 마침 시간이 그새 9시 반이 가까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빠져서 줄 설 필요도 없었다. 트램을 타고 보니 타고 구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후덥지근한 싱가포르 밤에 개방된 트램을 타고 맞는 바람이 정말 시원했다. 그리고 걸어서는 못 보고 트램을 타야만 볼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역으로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나이트 사파리를 샅샅이 다 봤다는 점에 뿌듯함을 느꼈다.
• 트램을 타고 내리면 식당하고 연결이 되어있는데, 이런 어둑어둑한 자연에서 은은한 조명과 함께 저녁을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아까 저녁은 먹어둔지라 음료수만 한 잔 하고 다시 셔틀로 길을 나섰다.
• 셔틀을 타고 카티브 역으로 다시 돌아가니 이미 11시가 되어있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니 이미 12시. 오늘 참 많은 일정을 소화했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