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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난징 여행기

Day 1, 2: 중산릉, 명효릉, 난징대패당, 푸즈먀오, 라오먼동

by 공대생은유람중

• 2월 말. 한국은 아직도 서늘하여 다들 패딩을 입고 다닌다만, 날씨를 찾아보니 양쯔강 (장강) 이남은 15 ~ 20 정도가 되어 돌아다니기에 아주 적당하였다. 예로부터 양쯔강의 풍부한 물자와 온화한 기온 덕에 강남지방은 중국인들도 살고 싶어 하는 곳이었는데, 이곳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난징 (남경)이라는 도시가 있다. 삼국 시대에는 오나라의 수도로 (건업), 명나라에는 초기 수도로, 중화민국의 수도로도 역할을 한 곳이다만, 한편으로는 난징대학살로 아픔의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흔히들 한국인들이 잘 가는 곳은 아니지만, 강남지방의 정취와 역사를 느끼고 싶어서 이곳으로 발걸음을 향하였다.

난징으로 출발~

• 인천공항에서 약 2시간 정도의 항공편을 통하여, 난징 루커우 공항에 도착하였다. 도착해 보니 이미 밤이 되어있어서 공항 앞에 대기하는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호텔명을 못 알아듣는 척을 하고 일부러 조금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중국은 이게 3번째인데, 일전에 베이징에서도 그렇고, 중국 여행 중에 한 번 정도는 택시기사한테 당하는 것 같다. 여행 처음부터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조금 더 내지’ 하는 마음으로 싸우지 않고 내려서 호텔에서 쉬었다.

Day 2

• 아침에 일어나서 밖을 나가니, 수도 없이 많은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는 출근시간이니 그도 그럴 것이다만, 역시 중국에는 참 오토바이가 많은 것 같다.

출근시간의 난징 거리

• 우선 호텔 인근인 푸즈먀오 (부자묘) 역에서 중산릉 묘역으로 향했다. 중산릉은 중국이나 대만에서 국부로 모시고 있는 쑨원 (손문)의 묘인데, 황제의 무덤에만 쓰는 ‘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부터 중국인들이 쑨원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바로 옆에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무덤인 효릉이 있다만, 중산릉의 규모는 효릉의 것을 압도할 정도로 높고 거대하다.

한국과 크게 다르진 않아보이는 난징 지하철

• 중산‘릉’이라고 해서 꼭 무덤만 있는 것은 아니고, 주변이 잘 가꾸어진 공원처럼 되어있다. 능역도 잘 조성된 데다가 날도 따뜻하여 산책하기가 아주 좋았다. 능역인 산을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서점도 나오고, 예쁜 카페도 나오고, 뜬금없이 KFC도 나오기도 하였다.

중산릉 능역의 가게들과 우연히 만난 예쁜 서점

• 능역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랜드마크는 ‘음악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실제로 공연은 하고 있지 않았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가 야외 홀을 메우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도 있었고, 배경이 예쁜지라,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중산릉 음악당

• 음악당에서 10분 정도 더 걸어가면, ‘중산묘원’이라고 쓰여있는 중산릉의 입구가 보이는데, 물론 여기가 본 무덤은 절대 아니고, 1차 관문(?) 같은 곳이다. 표를 찍고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쑨원 기념관이 있어서 둘러보면 쑨원의 일생과 그의 유품, 업적들이 상세하게 기록 및 전시되어있었다. 중국어를 좀 잘했더라면 자세히 둘러보았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빠르게 훑고 밖을 나섰다. 그런데 뜬금없이 쑨원 기념관인데 출구에 시진핑의 사진과, 그가 한 말이 떡하니 적혀서 걸려있었다. 한 말인즉슨 ‘쑨원 선생의 애국심을 배우자, 진리 추구를 배우자’ 등등인데, 쑨원 기념관도 역시 중국공산당의 프로파간다로 쓰이는 것인가 싶었다.

쑨원 기념관 내부와 시진핑 어록 (시주석님 왜 여기 계시는지?)

• 기념관을 지나서 대문을 지나면 미친 듯이 많은 계단을 맞닥뜨리게 된다. ‘여기서부터 진짜 하체운동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 멀리서도 보이는 높이와 규모에 이미 압도될 정도였다. 쑨원에 대한 중국인들의 존경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될 법하였다.

본격 하체운동을 알리는 중산릉 가는 길

• 15분에서 20분 정도를 계단만 올랐을까. 더운 날씨도 아닌데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수백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드디어 쑨원 선생이 묻혀있는 능의 건물에 다다르게 되는데, 안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안쪽을 한 바퀴 돌기만 하고 나왔다. 베이징에 있는 모택동의 앰버밍 된 시신 같은 게 있는 건 아닌지라, 막상 들어가 보면 특별할 것은 없었다. 올라올 때는 미친 듯이 힘들었는데, 이것이 인생무상인가? 그래도 높은 곳에 올라와서 보는 경치는 역시 괜찮았던 것 같다. 미세먼지만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계단의 규모에 비하면 다소 소박한(?) 중산릉. 비석 뒤로 가면 쑨원상이 있는 것이 다이다. 내부 촬영은 금지.


• 고생해서 올라간 수백 개의 계단을 다시 내려가서 30분쯤 걸으면, 명태조 주원장의 무덤인 효릉의 능역이 나온다. 여기도 조선왕실의 능에 비하면 꽤나 장대하긴 하다만, 이미 중산릉을 보고 온지라 압도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스럽게 많은 계단을 오를 필요도 없거니와, 주변 능역과 잘 어우러진 명효릉이 좀 더 구경하기 좋았던 것 같다.

중산릉 가는 길. 문을 하나 더 지나면 ‘치륭당송’ 비석이 있다.

• 명효릉의 입구에 다다르니 큰 비석에 “치륭당송”이라고 쓰여있었다. 명나라의 치적이 당나라와 송나라보다 융성했다는 뜻인데, 명나라가 멸망하고 들어온 청나라의 황제인 강희제가 쓴 글이었다. 명나라는 한족,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국가이니 서로 민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명태조에게 극찬의 평이 내려지고 또 비석으로 세워진 것이다. 명태조가 중국사에 남긴 업적이 적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초상화와 효릉 위에서.

• 효릉의 본 건물 안쪽으로 걸어가면 효릉 뒤편에 계단이 있었으며, 그리 높지는 않아서 가볍게 5분이면 충분히 효릉 본 건물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 효릉을 나와서 정문 쪽으로 걸어가니, 수많은 홍매화, 백매화가 멋들어지게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다. 한국은 아직 추운데, 여긴 벌써 봄기운이 만연한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로 아줌마들은 꽃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매화꽃이 멋들어지게 피기 시작한 난징

• 오전에 하루 종일 걸어서 배가 고픈 데다가 시간도 12시가 되어서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았다. 마침맞게 난징에서 유명한 식당인 남경대패당 (난징다파이탕)이 효릉 입구 주변에 있었다. 이곳은 본점은 아니지만, 어느 지점이든 꽤 인기가 있고 가성비가 좋은 터라 주저하지 않고 들어갔다. 이곳이 본격적인 난징의 첫 식사가 될 것이었다.

난징에서는 유명한 체인 음식점인 ‘난징대패당’

• 들어가 보니 천장에 은은한 조명과 함께, 앞에서는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지라, 종업원도 무수히 많고, 음식의 회전율도 꽤 빠른 듯 보였다.

난징대패당 내부 전경. 앞에 보면 악사들이 전통악기로 연주를 하고 있다.


• 우선은 한국돈으로 2000원도 하지 않는 양춘면이라는 것을 시켰는데, 중국음식답지 않게 육수가 심심하고 담백하였다.

양춘면과 남경오리 요리


• 다음으로는 남경식 오리요리가 나왔다. 북경오리는 구워서 바삭한 껍질을 전병에 싸 먹는 요리라면, 이 남경식 오리요리는 간장 베이스에 캐러멜 같은 달짝지근한 소스에 푹 쪄서 나온 요리였다. 소스가 고기 구석구석에 배어있고 부드러워서 남경식도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그리고 추가로 야채튀김과, 게살두부, 만두를 시켜서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 엄청나게 맛있다고는 말하지 못했지만, 한 사람당 2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가성비 좋게 잘 먹었다.

민물새우가 올라간 야채튀김과 게살두부

• 배도 불렀으니 다시 부지런히 걸어서 중산릉, 명효릉 인근에는 미령궁으로 1km 이상을 걸어갔다. 이곳은 장개석 (장제스) 시절의 대만 국민당 정부가 사용하던 주석 (총리) 관저로 사실 원래 명칭은 ‘국민당 주석 관저’ 이다만, 장제스의 아내, 즉 퍼스트레이디인 송미령의 이름을 따서 흔히 미령궁이라고 불리고 있다. 당시 지식, 정치력, 그리고 미모까지 두루 갖춘 퍼스트레이디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해 볼 만했다.

국민당 주석 관저 (미령궁)

• 미령궁에 들어서니 ‘궁전’이라고 하기엔 크기가 작다만, 관저치고는 3~4 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아주 훌륭한 규모였다. 건물 밖에는 장제스와 송미령이 타던 자동차가 멋들어지게 전시되어 있었다.

장제스가 타던 자동차와, 쑨원 상이 있는 사무실

• 들어가 보니 단순히 저택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응접실, 집무실, 관사 역할을 하고 있어서 규모가 작지가 않았다. 물론 주방, 식당, 거실 등등 관저에 갖춰야 할 요소들도 동서양이 섞인 풍으로 멋들어지게 장식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가장 특이한 것은 맨 꼭대기층에 예배당이 있었던 것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송미령의 취향이 잘 반영되어 있었다.

응접실과 예배당

• 미령궁을 나와 20분쯤 택시를 타고 가면 당시 명나라의 수도인 난징을 방어하기 위한 난징 성벽이 나온다. 물론 말 그대로 ‘성벽’이라 수십 km는 되다만, 그중에서 실제 관광할 수 있는 곳은 현무호를 주변으로 하는 수 km 뿐이다. (본인도 끝에서 끝까지 다 가진 않았다)

난징 성벽 위에서. 우측에 보이는 호수가 현무호

• 위로 올라가 보니 꽤나 두터운 성벽이라 자동차 차도를 놓아서 자동차가 수십대가 지나가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해 보였다. 그런데 관광객으로서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현무호의 모습이 정말 일품이었다. 호수면적만 족히 광교호수의 5배는 되니 중국은 호수조차 광활하기 그지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성벽을 중심으로 현무호와 반대편에는 노란색으로 칠해진 절이 있는데, 이곳이 계명사 (지밍쓰)이다. 사실 계명사를 보고 성벽에 올라가면 더 루트가 효율적이었겠다만, 여행이란 게 늘 효율적으로만은 안 되는 것 같다. 성벽과 언덕을 내려가서 다시 계명사에 오르니 높은 탑과, 노란 벽의 사찰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나머지는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좌측은 주택들이 즐비하고, 성벽은 계명사 (지밍쓰)와 연결이 되어있지만, 관광객은 다닐 수 없다.
계명사 (지밍쓰) 전경


• 낮 일정을 다 소화하고 호텔이 있는 부자묘 (푸즈먀오)로 돌아왔다. 이곳 푸즈먀오는 난징의 번화가 중에 하나인데, 한국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거리가 화려하다. 사실 이 부자묘는 원래 공자의 사당인데, 사당 옆이 이렇게 핫플레이스가 된 것도 꽤나 신기하였다.

부자묘 입구와 가게들. 인산인해였다.
부자묘 내의 수로

• 부자묘 거리를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면 가게들도 화려하거니와, 조형물과 누각들은 형형색색 불이 켜지고, 번화가 중심에는 오사카 도톤보리처럼 수로가 나있다. 수로 역시 양 사이드에 용 같은 장식이 있고, 사람들은 수로에서 유람선을 탈 수도 있어서 ‘불야성 같다 ‘라고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먹을 것이 많은 부자묘이다만, 아직 배가 고프지도 않고, 숙소에 들어가기도 아쉬워서 15분 정도 더 걸어서 노문동 (라오먼동)이라는 거리로 들어섰다. 여기도 부자묘와 비슷하긴 한데, 좀 더 조용하고 오히려 좀 더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거리였다. 예쁜 인테리어 샵들도 많고, 공연이 있는 펍도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부자묘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곳이었다.

라오먼동. 연주를 하는 곳이 많았다.
아기자기한 물품을 파는 가게가 많았던 라오먼동. 오른쪽에 보이는 누각이 스타벅스이다.

• 이렇게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배가 고프질 않아서 간단히 숙소에서 KFC 치킨을 먹고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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