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타카마쓰성터, 리쓰린 공원, 야시마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타카마쓰항으로 왔다. 여긴 어딜 가더라도 이상하게 이곳은 자주 지나치게 되는 것 같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숙소를 무조건 타카마쓰항 주변으로 잡을걸… 후회했다. 그런데 여행이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혹여 이 글을 보고 여행을 하게 되면 숙소는 타카마쓰항 근처로 잡을 것을 권하고 싶다.
잠깐 타카마쓰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곳은 원래 이코마 가문의 영지였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손인 마쓰다이라 가문의 영지가 된 곳이다. 이 사누키 지방의 중심이 되는 타카마쓰 항 근처에 타카마쓰 성이 있었는데, 성의 건물들은 많이 해체되고 터만 남은 부분이 많다. 지금은 타마모 공원이라고도 부르는 이 성터는 아침에 산책하기에 딱 좋은데, 해자에 물이 채워져 있어서 뱃놀이도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뱃사공이 혼자 유유자적하게 나룻배를 끌고 있었다.
성터이기는 하나 건물들도 일부 남아있고, 나무도 제법 울창하고, 규모도 아주 작은 성은 아니었어서 보는 맛이 그리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성 안에 마쓰다이라 가문의 '히운가쿠' (피운각)이라는 별장이 있어서 오래된 일본식 저택과 정원을 볼 기회가 있었다. 지금은 연회장으로 많이 쓰인다는 이곳은 방이 수십 개는 딸려 있어서 이전 일본 다이묘의 위세가 어떤지 대충이나마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타카마쓰 성터 바로 옆에 있는 타카마쓰칫코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30분 남짓 내려가면 '리쓰린 공원' (율림공원)이 있다. '율림'. 말 그대로 밤나무 숲인데, 이전에 밤을 재배하여 에도에 헌상하기 위한 곳이었다만 지금 밤나무는 많이 베어서 그 이름만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곳은 이코마 가문의 영지일 때 이코마 타카토시가 조성한 정원 및 별장으로 타카마쓰가 마쓰다이라 가문의 영지가 된 이후로도 계속 확장되어 지금은 거대한 정원이 되었다. 천천히 구석구석 보려면 정말 2시간도 부족한 이곳은 정원 뒤쪽의 시운산과 어우러져 거대한 한 폭의 풍경화 같은 곳이었다.
처음에 정원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 코스, 오른쪽 코스가 있는데, 왼쪽 코스가 좀 더 오래 걸리니 천천히 왼쪽 코스부터 구경했다. 그런데 정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일본 저택들도 있어서 박물관으로 쓰이는 곳도 이곳저곳 구경했다. 정원에는 자그마한 폭포와 연못, 그리고 일본식 별장이 어우러져 어딜 가든 자못 장관이었다. 이곳 리쓰린 공원은 '일보일경' (한 걸음에 풍경 하나)라더니 연못과 별장 건물도 다채롭고 나무와 꽃들도 다채로워 그 말에 공감이 되었다.
꽃과 나무들을 보는 것도 좋지만, 나도 이전 다이묘처럼 이곳에서 여유를 좀 더 즐기고 싶어서 정원 안의 찻집에 들어가서 녹차를 한잔 했다. 600엔에 화과자와 말차 한잔이 나왔는데, 30분 정도 별장 거실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여유롭게 정원을 구경하며 멍을 때렸다.
2시간을 넘게 정원을 구경하고 나니 1시가 넘어있어서 배가 몹시도 고팠다. 구글에서 맛집을 찾아보니 '우에하라야'라는 우동 맛집이 있었다. 온수에 부운 우동과 야채튀김을 하나 주문했는데, 역시나 맛있었다. 우동에 관한 이야기는 질리도록 했으니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정원을 구경하고 야시마 산 위쪽에 전망대와 유명한 절이 있다기에 지하철을 타고 야시마역에 갔다. 그런데… 1시간마다 1대씩 있다는 야시마역 전망대행 버스가 막 지나갔다. 별 수 없이 1시간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산에 올라가니 산 위에 '야시마지'라는 절이 있었다. 절에 가는 길에 겐페이 합전 (일본의 유력한 무가인 미나모토 가문과 타이라 가문의 전쟁으로, 승리한 미나모토 가문은 이후 가마쿠라 막부를 통해 수백 년간 일본을 통치한다.)에 참여한 장수들의 포스터들이 붙어있어서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이곳에서 두 가문 사이에 '야시마 전투'가 일어난 곳이라고 한다.
야시마지에 가보니 여느 일본 신사나 사찰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는데, 특이하게도 너구리 석상이 크게 두 마리가 세워져 있었다. 알아보니 이곳은 홍법대사에게 길을 알려준 너구리대장을 모시는 사찰이라고 한다.
야시마에 올라오니 산위라 그런지 전망이 매우 좋았다. 세토내해를 낀 타카마쓰시 전경이 다 보였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좋았다. 전망이 좋아서 그런지 호텔도 여럿 보였는데, 망해서 폐허가 된 곳도 여럿 있었다. 뭔가 폐허투어를 하는 기분이 들면서도, 다소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야시마 정상에서 내려와 간단하게 돈까스로 허기를 지웠다. 그리고 마지막 밤이 아쉬워서 다시 타카마쓰항에서 배가 다니는 것을 정처 없이 봤다. '다음에 못 가본 섬들도 다시 와서 봐야지'하는 마음을 먹으면서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을 하고 다시 오전에 타카마쓰 공항으로 가서 귀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