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의 2월 새벽, 스스로가 가장 궁금한 시간

by 지원

이것도 숏폼에서 본 영상이다. 거기서는 짬빠 있어 보이는 어떤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이십 대는 무언가에 흠뻑 빠지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입니다."

사실 이 영상의 어떤 요소도 사실로 존재하는지 모른다. AI 영상이 쏟아지는 요즘, 숏폼의 공급이 바다만큼 방대한 현대에서 너무 많은 정보를 짧게 얻고 있기에 금방 휘발되어, 어떤 것을 정확히 기억하는지, 이것이 정확한 정보인지 인지하기 어렵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는 저 문장에 매료되었다. 항상 무언가를 흠뻑 빠져 좋아해 본 경험이 없다고 스스로를 판단했다. 물론 사람은 있다. 어릴 때 좋아했던 우상도 있고,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큰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하는 고민과 행위, 오직 혼자서, 스스로를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 깊이 사랑한 적이 있었나?

없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조급해졌다. 하루빨리 무언가를 좋아해야 할 것만 같았다.


서울에서 혼자 지낸 지 2개월이 되어간다. 서울에서 지낼수록, 더 가까이서 느껴진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정말 넓은 지역이고, 정말 춥다. 이것들이 나를 외롭게 하고 있다. 일정이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오면 그 감각을 이기지 못해 온라인 세상에 급히 들어간다. 얼른 이 외로움과 공허함을 없애고 싶어서.

그런 스스로를 느끼고 3일 정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제한했다. 잘 해냈었다. 인스타그램에는 나를 기록할 때만 들어갔고, 유튜브는 사용하지 않았다. 3일 정도 그렇게 생활하니, 억눌렀던 외로움이 참지 못한 것인지, 그 뒤로는 더욱 그 세상에 집착하고 나오기 힘든 생활이 시작되었다.


작은 시간들도 고민하는데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최근 더욱 확실히 느낀다. 우리가 왜 샤워할 때, 그리고 자기 전에 많은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겠는가. 그때만이라도 스마트폰과 몸이 멀어져 내 머릿속 세상에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요즘 그 시간들도 참지 못해 욕실용 방수 스마트폰 거치대를 구입하고, 침대 옆에 충전기를 두고 잠이 오지 않을 때까지 짧은 영상을 시청한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난 최고의 장점을 전혀 활용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단점만을 부각하고 느끼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머릿속을 컨트롤하고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적 생명체이다. 내가 왜 자꾸 지구에서 유일한 지적생명체인 것을 언급하게 되는지 알기 힘들지만, 뭐 동물에게 생색내고 싶은 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지성이 있는 생명체로써, 감정을 느끼고 사회 안에서 정치하며 살아가면서, 온갖 괴로움을 느끼는 것에서 벗어나진 못하면서, 내가 나의 감정하나 컨트롤할 수 없는 생명체가 된다는 것은, 동물만도 못한 행복밖에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김에 그렇게 살면 너무 아깝지.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지능적이고 효율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어서 마음이 급한 것 같다. 사람들은 더 엄청난 기술을 만들어 내고 고차원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반면 생각하는 시간과 가치는 저평가된다. 물론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세상에서 고민하는 것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겠지만, 한 칸이라도 내려와서는 다 비슷한 것 같다. 나는 내 분야에 꼭대기에 서고 싶은 사람이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나의 감정을 알고 내가 나의 밖에서 나를 바라보며 통제할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욕심이 크다.


왜 처음에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냐면, 외로움과 고독에 대해 다뤄야 할 것 같다. 역시나 똑똑한 아빠는 내가 외롭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에게 외로움과 고독에 차이에 대해 ChatGPT와 대화한 내용을 캡처해서 보내왔다.

"정신이 풍요로운 사람은 고독 속에서 자신의 풍부한 내면을 즐기지만,

정신이 빈곤한 사람은 고독을 견디지 못해 타인이라는 소음 속으로 도망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타인을 만날 때 자신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자신의 주파수를 깎고, 그들의 얕은 생각에 동조하느라 자신의 내면을 소모한다고 했다.

처음 듣는 논리였지만 머리를 한 대 맞는 진리라고 느껴졌다. 내가 왜 2-3년 전과 다르게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조금씩 아깝고, 공허하고, 그 시간들을 피하고자 했는지, 오직 나의 개인작업을 위한 것이었는지 헷갈리는 순간들을 관통하는 명제였다.

나는 나를 위해서 혼자 있는 것이었다. 낯선 환경을 만나 혼자 있는 것이 잠시 괴로웠을 뿐이다. 나는 이전 학교에서 누군가 불러도 잘 얼굴을 비추지 않게 되었고, 새벽에 혼자 집에서 글을 쓰는 시간을 좋아했다. 비록 타이핑은 나의 생각의 속도를 따라오기 어렵다 하더라도, 내 머릿속에서 흘러가는 생각들을 가시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현재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단지 주어진 일이 없음에 대한 불안, 낯선 환경에 대한 어려움, 너무 높은 이상을 바라보느라 막막해진 마음들이 모여 만든 허상이었다. 조금은 오류가 있는 판단일지라도 이 마음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철학 영상을 귀로만 들으며 작업하기를 즐겼고, 그 논리를 들으며 일기 쓰기를 즐겼다. 인지하는 철학이 하나둘 늘어갈 때,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꼈고, 나의 세계와 시야가 넓어짐을 느낌에 행복했다. 나는 비로소 외로움과 고독을 인지하는 단계로서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읽고 나와 남을 판단하는 것을 멀리해야 한다. 지금 나는 그 상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솔루션에는 가깝다고 느낀다. 나는 외로움에 허덕이며 온라인 세상에 갇혀있기보다, '고독의 시간에서 나의 세상을 넓혀가는 존재' 역할을 하는 것이 더 이로울 것이라고 판단한다. 가끔은 역할놀이가 나의 삶에 몰입하는 것에 이로움을 더 크게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도 모르게 갖게 된 역할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스스로 부여한 역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또 꽂힌 문장이 하나 더 있다. 또 어떤 짬빠 있어 보이는 어르신이 한 말이다.

"내가 만약 이십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할 것 같습니다."

남들이 아쉬워하는 것은 나는 후에 아쉬워하지 않으련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나의 사고력은 높아지고 나의 세계는 넓어질 것이다. 나는 내가 너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