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박자, 발연주
지난주까지는 틀리지 않고 매끄럽게 넘어가던 오르간 발건반 스텝이 이번 주엔 이상하게 자꾸만 꼬였다.
한 번 스텝이 어긋나자 마음이 급해졌고, 박자는 좀처럼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평소보다 연습량을 훨씬 늘리며 준비했기에 당혹감은 더 컸다.
'연습한 만큼만이라도 잘 드려질 수 있기를' 기도했던 것이 무색하게 실수가 반복되자,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에라, 모르겠다."
그 곡에서는 과감히 발 연주를 생략하고 양손 반주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다행히 성도님들 중에는 절대음감이 많지 않으신지,
나의 이 '소심한 작전'을 눈치채는 분은 없는 듯했다.
아무도 모르게 숨죽여 이어간 반주였지만,
그 시간 내 마음을 채운 것은 '쓰임 받는 기쁨'이었다.
전에도 말했듯이 부족하지만 그 자리에 서 있으려는 마음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큰 위로로 다가왔다.
그 위로로 마음을 채우고 나니 비로소 평안이 찾아왔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내려온 "고백"
대예배의 긴장을 뒤로하고 이어진 어린이 예배.
오늘 설교 주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었다.
아이들에게 "고백이 무슨 뜻인지 아나요?"라고 묻자, 다들 알 듯 말 듯 알쏭달쏭한 표정들이다.
"나의 소중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려준 뒤, 나는 질문을 던졌다.
"진심 어린 고백을 해본 친구 있나요?"
그때 3학년 한 친구가 아주 씩씩하게 손을 들었다.
"저요! 우리 반에서 제일 예쁜 여자애한테 편지 써서 고백했어요!"
예배당은 순식간에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이어진 아이의 한마디에 모두의 탄성이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 편지가 쓰레기통에 있더라고요."
에구, 저런.
철부지 어린아이의 서글픈 짝사랑 서사에 모두가 마음을 졸이며 '고백'이라는 단어를 체감했다.
거절의 아픔까지도 감수하며 내미는 그 날 것 그대로의 진심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고백
아이의 용기 있는 고백 덕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베드로의 고백으로 향했다.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담아 외쳤던 그 한마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마태복음 16장 16절)
자신의 소중한 마음을 전부 쏟아낸 베드로의 고백을 받으시고 예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비록 우리 아이의 편지는 쓰레기통으로 향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고백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음을 믿는다.
사실 지난 한 주간 참 어려운 일이 있었다. 그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시린 통증으로 남아 있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무거운 숙제처럼 매일의 시간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발 스텝이 꼬여버린 오르간처럼 내 삶의 박자도 잠시 어긋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손 반주만으로도 예배가 이어졌듯, 그리고 쓰레기통에 버려질지언정 편지를 썼던 아이의 마음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듯, 나의 서툰 섬김과 여전한 삶의 숙제들도 결국 주님의 방법으로 채워지리라 믿는다.
우리는 작지만 전부였던 *'오병이어'*의 마음을 드렸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미는 그 순수한 진심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다리시는 선물이 아닐까.
작지만 내가 가진 전부를 드렸던 주일이었다.
* 예배실 앞 문패입니다. 글리터 펠트지로 예쁘게 꾸며 보았습니다. 그 진심 어린 고백을 했던 아이가 내준 아이디어로 오병이어 바구니도 함께 만들어서 걸어놓았습니다.
서툴고 여리지만 믿음으로 오병이어를 드리며 나아가는 주니어부 어린이들과의 예배
그 작은 예배당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어린이들이
더 많아지길 기도하며...
***<함께할 동역자를 찾습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로 가득 채운 하루하루를 사역 노트에 끄적이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어린이를 섬기시는 사역자분들
#자녀를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양육하고 계시는 부모님들
#그 누구라도 함께 이 공간을 채워나가며 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