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세 여자를 위해 '치즈 한 통'을 바친 남자

남편의 까르보나라

by 더 나아가

요리라고는 라면 끓이기 밖에 할 줄 모르는 남편이 어느 날 비장하게 선언했다. 올해는 우리 집 여인들을 위한 생일 선물로 자신이 이탈리아 요리사가 되어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대접하겠노라고. 나와 두 딸들의 생일이 공교롭게도 모두 2월 말 즈음에 겹친다라는 사실이 남편에겐 매년 고민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냥 케이크 한 번으로 끝났던 적도 있었지만 점점 그게 통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아빠의 이런 선언은 우리에게 반전의 감동을 선사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레시피를 보는 매섭게 노려보는 눈이 뒷모습에도 보이는 것 같았다. 묘한 긴장감마저 흘렀다. ​주방에서는 한참 동안 면 삶는 냄새와 소스 젓는 소리가 분주하게 들려왔다. 마침내 완성된 요리가 식탁 위에 올랐을 때, 겉모양은 제법 근사했다. 노란 소스와 베이컨의 조화가 완벽해 보였다. 그런데 한 포크 크게 말아 올리려던 우리는 동시에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면이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남편은 "파마산 치즈 가루를 듬뿍 넣으라"는 레시피의 마지막 문장에서 그만 평정을 잃고 말았다. '듬뿍'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가늠하다가 '우리 집 여자들이 모두 치즈를 좋아하지' 하며 손에 들고 있던 치즈 가루 한 통을 아낌없이 털어 넣은 것이다. 덕분에 까르보나라는 소스가 흐르는 스파게티가 아니라, 치즈가 면을 꽉 붙들고 있는 뻑뻑한 '치즈 비빔면'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뻑뻑한 면발을 한 입 가득 물고 서로의 눈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입안 가득 끈적하게 달라붙는 치즈의 풍미는 지나치게 강렬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맛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소했다.

함께 만든 디저트요리, 생딸기 라테는 성공적이었다. 이상했지만 맛있는 아빠의 요리가, 이 부드럽고 달큼한 라테 한잔이 모두 사랑으로 덮었다.

​ 그것은 아마도 세 여자를 위해 난생처음 칼을 쥐었던 투박한 손마디의 긴장이 맛으로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치즈 한 통을 다 비워낼 만큼의 무식하리만큼 정직한 사랑. 그 뻑뻑한 파스타를 먹으며 우리 가족은 그날 밤 가장 배부른 저녁 식사를 했다. 이제 남편은 다시 '주방의 이방인'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가끔 마트 진열대의 파마산 치즈 통을 볼 때마다 그날의 고소한 웃음을 떠올린다. 완벽한 레시피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가장 아낌없는 투하임을, 그 뻑뻑한 파스타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