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로 배달된 4.5차원의 섬

매트리스가 도대체 왜 여기에

by 더 나아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선 아침, 나는 그만 헛웃음을 삼켰다.

우리 집의 공용 도로이자 거실 한복판에 거대한 섬 하나가 당당히 정박해 있는 게 아닌가.

제 방에 멀쩡히 붙어 있어야 할 침대 매트리스가 통째로 탈출해 우리 집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풍경 위로 문득 오래전 시트콤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형수와 시동생 사이의 육탄전 끝에 지하철역 한가운데 통째로 옮겨지게 된 매트리스였다. 하지만 그 정체는 시트콤보다 더 엉뚱했다. 매트리스 위에는 어젯밤의 비밀스러운 항해를 마친 막내딸이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무려 열여섯 살, 중학교 3학년. 사춘기의 정점을 지나며 방문을 걸어 잠그기 바쁠 나이이건만, 아이는 무슨 마음으로 이 무거운 자신만의 영토를 거실까지 끌고 나온 것일까.

나중에 들은 아이의 대답은 허무할 만큼 단순했지만, 그 속내만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아침에 거실로 나온 엄마 아빠가 '빵 터질' 모습이 궁금해서, 그 반응이 보고 싶어 새벽에 몰래 이 거사를 치렀다는 것이다.

겨우 그 한 번의 웃음을 선물하기 위해 아이는 덩치 큰 매트리스와 씨름하며 새벽의 고요를 건너왔다. 아이의 이 무해한 장난은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눈을 뜰 때까지 곁에 앉아 하염없이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 정지된 시간을 만끽했다. 밀려 있던 생각들이 잠시 멈추었다. 누군가를 웃게 하려는 마음이 이렇게 단순하고 또 힘이 셀 줄은 몰랐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사람을 살리는 건 거창한 말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히 건네는 마음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매트리스는 곧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아침, 내 안에서는 다른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 조급함 대신 여유가, 잔소리 대신 미소가.

거실 한복판에 놓여 있던 것은 침대가 아니라, 나를 먼저 돌아보게 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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