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농담, 그 찬란한 노래
친정집 엄마의 방, 오후의 햇살은 늘 그렇듯 나른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엄마의 주름이 선명해 보였다. 70대 중반의 얼굴 위에 시간이 고스란히 얹혀 있었다. 아픈 아버지를 돌보시랴, 자녀 셋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키워내시랴 당신의 몸을 기꺼이 거름으로 내어주신 세월의 흔적. 나는 그 주름 사이사이에 맺힌 고생이 못내 마음 아파왔다.
엄마는 소녀처럼 곱게 입술 색을 물들이고는, 문득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셨다.
"너도 이제 늙어가는구먼. 기미 좀 빼야겠다."
엄마의 웃음기 섞인 말에 나는 따라 웃었지만, 그 시선이 오래 남았다.
생각을 곱씹고 있는 사이, 엄마는 특유의 무심한 말투로 툭, 농담 한 마디를 더 던지셨다.
"노인네들이 눈치도 없이 안 죽고 이렇게 오래 살아서 큰일이여."
그건 분명 농담이었다. 하지만 그 문장을 곧장 넘기지 못했다.
내 입은 차마 속내를 다 담지 못한 채 "그게 무슨 소리냐"며 뻔한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은 알 수 없는 사무침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엄마의 주름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대어 살아온 시간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농담은 서툴게 표현된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말로는 다 닿지 못한 이 먹먹함을 글로 옮기기로,
그리고 그것을 조용히 붙들어 두기로 했다.
<시간의 자리>
주름진 얼굴이 거울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 얼굴 패인 골마다 내 웃음 심겨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 엄마는 내 뺨에 돋아난 기미를 보며
불쑥, 모진 농담을 던지십니다
"노인네들이 눈치도 없이 안 죽고 오래 살아서
큰일이여"
그 말은 분명 농담이었는데
내 주름을 가만히 훑어내리는
엄마의 눈동자엔 물기 어린 고백이
어느새 내 얼굴 위로도 내려앉은 것을 보고
차라리 당신의 시간이 먼저 멈추지 않았음을 탓하는
지독하고도 미련한 사랑
내 기미는 당신의 훈장이고
내 주름은 당신의 사랑을 받아먹고 자란 흔적인데
세상 어느 꽃이 제 뿌리를 원망하겠습니까
늙어가는 자식 앞에 죄인이 된 노모의 미소 위로
노을보다 붉은 사랑이 번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