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노랫소리

공모전 탈락소식과 함께 시작된 보물찾기

by 더 나아가

나의 사역 일기


나는 동화 작가 지망생이다. 그리고 한 교회에서 주니어부(1~4학년) 전도사로 섬기고 있다. 이 노트는 나의 사역 일기이자, 동화 작가 지망생으로서 아이들에게서 찾아내는 '보물 지도'가 될 것 같다.


​지난 11월에 응모했던 동화 공모전 원고는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일주일 남짓, 라이킷해주신 선배님들의 글을 읽을수록 수려한 글솜씨에 내 모습은 한없이 작아졌다. 배워야 할 게 태산이라는 식상한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 밤이었다. '내가 과연 아이들에게 들려줄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 동화 속 주인공들은 아직 내 맘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지만, 많은 아이에게 이야기 친구가 되기에는 조금 부족했나 보다. 하지만 내 마음은 금세 덤덤해졌다. 오늘 주일, 담임 목사님을 통해 받은 말씀 한마디가 마음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뛰어난 사람을 쓰시는 게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마침 오늘, 장년 대예배에서 난생처음 오르간 반주자로 데뷔했다. 낯선 페달과 건반 앞에 서니 동화 작법서의 어려운 이론보다 더 큰 태산이 내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비전공자로서 피아노 반주만 20년 해왔지만, 대예배 오르간 반주의 기회는 흔치 않다. 이 또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다. 발이 꼬이고 박자가 어긋날까 봐 조마조마하며 건반을 눌렀지만, 다행히 서툰 연주가 방해가 되지 않았다는 후문에 안심이 되었다.

​대예배의 긴장감을 뒤로하고, 내가 맡은 주니어부 아이들과의 첫 예배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아이들의 맑은 찬양 소리가 예배당에 울려 퍼지는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대예배 오르간 건반 위에서 떨렸던 내 마음을 아이들의 목소리가 가만히 메우고 있었다.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셨듯, 아이들의 순수한 노랫소리가 공모전 탈락으로 다쳤던 나의 마음도 어루만져 주었다.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는 일)에 대해 말씀을 나누는 시간, 아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주보 퀴즈를 보며 정답을 척척 대답하는 '척척박사'부터, 아무 말 대잔치로 딴지를 거는 아이까지. 그런데 그 소란함이 싫지 않았다. 내 말을 놓치지 않으려 엉덩이를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아 눈을 반짝이는 아이를 볼 때면 내 마음도 함께 들썩였다. 아이들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전도사님, 저 여기 있어요. 저에게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 우리 부서의 특급 목표는 "예수님과 톡톡 신약성경 통독"이다. 일주일에 3~5장씩 읽으면 51주 만에 신약을 통독할 수 있는데, 아이들은 이걸 훌륭히 해내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동기부여를 위한 확실한 보상도 준비했다. 13주마다 돌아오는 특별 이벤트! 선물 쿠폰부터 전도사님과의 데이트 쿠폰, 그리고 완주 시 약속한 치킨 세트까지. 아이들은 이 보물 같은 약속을 붙잡고 매일 성경을 읽는다.

​아이들은 통독 노트에 그날 읽은 내용 중 자신만의 '보물 단어'를 찾고 이모지 그림을 그린다. 이 여정에는 숨은 조력자가 계신다. 바로 우리 부장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매주 다이소에 가신다. 아이들의 통독 노트를 확인하고 그 위에 짧은 메시지와 정성이 담긴 스티커를 붙여주기 위해서다. 다이소의 수많은 스티커 중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고르며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리셨을 선생님의 뒷모습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

​이면지 악보 위에 엄마의 얼굴을 찍어냈던 내 딸아이들처럼, 이 아이들도 투박하지만 자신들만의 사랑을 그려 넣는다. 세련된 기교나 화려한 문장은 없었다. 틀린 맞춤법과 무시된 띄어쓰기가 가득했지만, 그곳엔 세상 그 무엇보다 빛나는 '보물'이 있었다.

​배워야 할 게 태산이라 막막했던 아침이었다. 하지만 오늘 대예배의 오르간 데뷔와 주니어부 예배를 연이어 드리며 깨달았다. 내가 넘어야 할 것은 정복해야 할 높은 산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로 낮아져 함께 보물을 찾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오늘 내 앞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던 그 아이들을 웃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서툰 오르간 연주도 기쁘게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느끼며,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 나의 서툰 글도 누군가에게 작은 온기가 되어, 다시 피어나는 봄꽃처럼 따뜻한 글쟁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