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덕분에 인간이 더욱 게을러진다라는 보도를 보았다.
영화 <매트릭스> 에서는 근미래의 인간이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영양분은 기계가 공급해주고, 정신은 가상에 접속해 살아간다.
내 눈에는 기술이 인간에게 선물한 게으름의 완성이자, 존재 이유를 묻는 장면이었다.
놀랍게도 워쇼스키 형제의 상상력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는 중이다.
진짜로 미래에 매트릭스가 현실이 될까? 언제 될까?
문득, 지난 100년 간의 기술사를 정리하고 싶어졌다.
인간은 12년마다 한 번씩 더 큰 게으름을 얻어온 걸로 보인다.
AI의 도움을 받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
1926년, 정보를 화면으로 받는 게으름
존 로지 베어드가 세계 최초로 움직이는 영상을 전송하는 텔레비전을 시연했다.
발품 팔아 소문을 좇을 필요가 없어졌다. 세상은 화면 속으로 들어왔다.
1938년, 계산을 기계에 맡기는 게으름
콘라드 추즈가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컴퓨터 Z1을 완성했다.
복잡한 계산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떠안기 시작했다.
1950년, 두뇌를 확장하는 게으름
트랜지스터가 상용화됐다.
진공관 시대를 끝내고, 작은 부품 하나가 거대한 연산 능력을 열어젖혔다.
인간의 머리는 더 이상 홀로 일할 필요가 없어졌다.
1962년, 연결의 게으름
MIT의 제이.C.R. 리클라이더가 ‘인터갤럭틱 네트워크’ 구상을 발표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지구 반대편과 연결될 수 있다는 발상이 처음 등장했다.
1974년, 네트워크의 언어, TCP/IP
빈튼 서프와 로버트 칸이 TCP/IP 프로토콜을 제안했다.
컴퓨터끼리 서로 대화하는 법이 정립되면서, 데이터가 자유롭게 흐르는 기반이 마련됐다.
1986년, 속도의 게으름
NSFNET이 업그레이드되며 인터넷 속도가 기존보다 수십 배 빨라졌다.
기다림은 줄고, 연결은 당연해졌다. “느리다”라는 말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1998년, 검색의 게으름
구글이 등장했다. 질문만 던지면 기계가 알아서 답을 찾아줬다.
‘찾아 헤매는 노동’은 검색창 하나로 사라졌다.
2010년, 생활 전체를 단축하는 게으름
갤럭시폰이 출시되며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됐다.
지도, 은행, 쇼핑, 오락이 한 손 안에 들어왔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조작할 수 있게 됐다.
2022년, 사고와 창작의 게으름
ChatGPT를 비롯한 생성형 AI가 공개됐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결정을 내리는 일까지 기계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머리조차 필요 없는 시대가 열렸다.
참고로 이것은 '최초' 기준이 아니라 '상업화, 대중화'의 개념도 포함한다.
나는 이 흐름을 내 나름대로 12년 주기설이라고 명명해 보기로 하고,
내친 김에 생성형 AI에게 학습시킨 다음 다음과 같이 물었다.
“매트릭스는 언제 현실이 될까?”
2034년 전문성의 게으름.
의사, 변호사, 교사. 로봇과 AI가 전문성까지 가져간다.
2046년 생각의 게으름.
배움이 주입으로 대체된다. 손을 쓰지 않고도 아는 시대.
2058년, 현실 체험의 게으름.
AR·VR, 오감이 시뮬레이션되어 굳이 현실을 경험할 필요가 없다.
2070년 물질 생산의 게으름.
음식, 옷, 집을 나노머신이 조립하며 생산과 소비의 구분이 사라진다.
2082년 의사결정의 게으름.
세계의 운영을 기계가 맡는다. 인간은 더 이상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2094년 존재의 게으름.
먹지도, 움직이지도, 배우지도 않는다.
몸은 기계가 유지하고, 정신은 합성된 현실에 산다.
이렇듯 인간은 꾸준히 노동을 기술에 넘겨주며 게으름을 확장했다.
그리고 2094년, 그 게으름은 완성된다. 매트릭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본질적인 질문이 남는다.
기술이 모든 것을 대신할 때, 인간은 끝내 무엇을 스스로 해야 하는가.
나는 기계가 세상을 완전히 대체 할 때 까지 살아남지 못할 듯하다.
하지만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매트릭스를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