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인간, 잔혹한 기계: AGI가 만들 미래
AI를 쓰기 시작한 후로 5kg이 쪘다.
메일 답장도, 보고서도, 생일 축하 메시지까지 AI에게 맡기기 시작한 지 3년.
어느새 허리둘레는 조금씩 늘어났고, 체중계는 냉정하게 숫자의 증가를 알렸다.
처음엔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나이 탓이거나, 운동 부족 탓이거나, 회식이 잦아진 탓이라고.
정말로 AI와 체중 증가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걸까?
겉보기엔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현상 사이에,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숨은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늘어나면 범죄율도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다.
둘 다 '더운 날씨'라는 공통 변수의 영향을 받을 뿐, 인과관계는 없다.
생각해보면 AI는 우리의 인지 부하를 극적으로 낮춰준다.
복잡한 정보를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반복적인 문장 작업을 대신해준다.
덕분에 우리는 '생각하는 수고'로부터 해방됐다.
뇌가 덜 일하면, 우리 몸은 어떻게 반응할까?
신경과학자들은 뇌가 우리 몸 전체 에너지의 20%를 소비하는 기관임을 밝혀왔다.
특히 집중적인 사고 작업을 할 때, 뇌의 에너지 소비량은 급격히 증가한다.
복잡한 문제를 풀거나, 긴 글을 쓰거나, 전략적 판단을 내릴 때
우리 뇌는 마라톤을 뛰는 것처럼 칼로리를 태운다.
그런데 AI가 이런 일들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뇌의 에너지 소비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소비되지 않은 에너지는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 몸 어딘가에 저장되었을지 모른다.
더 직접적인 연결고리도 있다.
AI를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를 더 오래 앉아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예전엔 자료를 찾으려면 서가를 뒤지고, 회의를 준비하려면
회의장소로 이동하고 화이트보드 앞에서 동료들과 서성이며 논의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노트북 앞에 앉아 프롬프트 몇 줄만 입력하면, AI가 순식간에 결과물을 내놓는다.
업무 효율은 올라갔지만, 우리 몸이 움직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좌식 시간의 증가는 대사율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체중 증가의 원인이 된다.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팀은 인지 활동과 신체 활동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그들은 복잡한 사고를 수행할 때 신체가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자세를 바꾸고, 걸어 다니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AI에게 사고를 외주화하면, 이런 부수적인 신체 활동마저 사라진다.
우리는 그저 화면을 응시하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심리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AI가 일을 대신해주면서 우리는 '보상 심리'에 빠지기 쉽다.
"오늘은 AI 덕분에 일을 빨리 끝냈으니, 디저트 하나쯤은 괜찮겠지."
AI가 만들어준 완벽한 결과물은 우리에게 성취감을 주지만,
정작 우리가 흘린 땀은 없다.
이 공허한 성취감은 음식을 통한 보상으로 채워지곤 한다.
더 나아가, AI 사용은 우리의 일상 리듬 자체를 바꿔놓았다.
예전에는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집중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식사를 거르기도 하고, 긴장 상태에서 에너지를 소진했다.
하지만 이제 AI는 몇 분 만에 초안을 만들어준다. 우리는 시간이 남아돌고,
그 여유 시간은 종종 간식을 먹거나 쇼파에 누워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쓰인다.
업무 강도는 낮아졌지만, 역설적으로 건강한 긴장감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물론 AI 자체가 체중 증가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AI가 가져온 생활 방식의 변화 -
인지 부하 감소, 좌식 시간 증가, 신체 활동 감소, 보상 심리, 일상 리듬 변화 -
이 모든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 몸에 조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러니한 건, AI를 사용하는 이유가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는 점이다.
시간을 절약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위해 우리는 AI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 몸은 예상치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마치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우리가 걷는 시간이 줄어든 것처럼,
AI의 등장은 우리가 '생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시간'을 줄여버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AI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온 이 기술을,
생산성의 필수 도구가 된 이 존재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 우리는 균형을 찾아야 한다.
AI에게 일을 맡기되, 그만큼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
사고를 외주화한 대신, 신체 활동을 내재화해야 한다.
30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AI가 답을 내놓는 동안 짧게라도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스마트폰 대신 운동화 끈을 묶는 것.
이것이 아마도 AI 시대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