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 30만 원

열정페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

by SUN

내 첫 월급은 30만 원이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290,100원이었다. 3.3%의 세금을 떼고 보니 앞자리는 2가 되어있었다. 누군가는 그 60년대 이야기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아니다. 이 이야기는 정확히 2012년 2월에 시작되었다.


당시의 나는 (당연하게도) 진로를 고민하던 4학년 1학기를 마친 문과생이었다. 유독 눈이 많이 내리던 2012년의 초겨울, 한 달의 계절 학기를 마치고 남은 한 달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대외활동 경험은 많았지만, 일을 해 본 경험이 없어 인턴을 하면 좋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대단한 스펙이랄 게 없는 나에게는 일을 해 본 경험이 꼭 필요했다. 그렇게 학교의 취업지원팀 사이트에 들어갔고, 개강까지 남은 한 달을 채울 수 있는 한 달짜리 인턴 자리는 딱 한 군데뿐이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전자 회사와 소셜 커머스출신의 사람들이 막 세운 회사라고 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회사였기에, 회사를 소개하는 몇 장 짜리 PPT가 첨부되어 있었다. 처음 듣는 말들이 많았는데, 화장품을 매월 잡지처럼 보내주는 서비스라고 했다. 화장품이라니! 나는 화장품이라면 죽고 못 사는 대학생이었고, 늘 로레알이나 P&G 같은 글로벌 화장품 회사에 가고 싶었다. 이 자리라면 내가 가고 싶었던 화장품 회사 서류에 할 말이 하나라도 생기는 것이었다. 물론 단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월급이 30만 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상관없었다. 나는 한 달만 일할테니.

그렇게, 그 날밤 나는 자기소개서도 없이 한 장짜리 이력서를 냈다. 이력서를 보낸 것은 밤 10시쯤이었다. 30분 뒤에 전화가 왔다.


“면접을 볼 수 있을까요?”


젊은 남자의 목소리. 밤 10시 30분. 어지간히 급한가 보다 했다. 이상한 회사인가 했지만, 여전히 상관없었다. 한 달만 일하면 경력란을 채울 수 있었다.




눈이 아주 많이 온 다음 날, 높은 구두에 정장을 입고 면접에 갔다. 나를 반겨준 건, 후드 티에 운동화를 신은 두 남자였다. 심지어 면접을 보는 사무실이 자기들 사무실이 아니라고 했다. 잠시 신세를 지고 있단다. 30분 동안 예상 가능한 질문들이 주어졌다.


회사 소개서를 이해했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했다.

왜 마케팅 직무를 하고 싶냐고 해서 마케팅이 재미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화장품을 좋아하냐고 해서 좋아한다고 했다.

화장품을 소분해 파는 카페를 아느냐 해서 그렇다고 했다.


30분 만에 면접을 보고 돌아가는 길은 유독 추웠다. 나는 왜 구두를 신고 여기에 왔을까? 후드티를 입고도 면접을 볼 수도 있는 걸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회사가 굉장히 이상한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가 고민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면접이 끝나고 다음 날 전화가 왔다.


“같이 일하고 싶은데,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할까요?”

“그런데 저희가 이제 시작해서 노트북을 못 드려요. 개인 노트북을 가져오셔야 해요.”


이상한 회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개인 노트북을 업무에 사용해야 한다니.

그래도 괜찮았다. 한 달만 있을 테니.

그렇게 나의 첫 회사가 결정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 이 회사에서 8년을 보내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