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디어 동향을 보며 떠오른 단상
포털을 통해 뉴스의 일상화를 이끌어낸 한국 사회에서는 언론사와 포털의 책무성에 기반한 ‘자구적 노력’과 더불어 수용자와의 긍정적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포털과 언론사의 투명성과 답책성에 기반한 콘텐츠 제공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공유하는 수용자의 미디어 리터러시가 미확보되면 포털 저널리즘은 미디어 수용자들의 뉴스 이용 시간의 총량을 확대하여 뉴스의 일상화를 이루어냈지만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한 속보 경쟁과 수용자들의 혐오 표현과 악성 댓글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다.
포털의 일부 자구적 노력은 ‘다음’이 기사의 댓글 창을 없애고 ‘타임톡’이라는 실시간 채팅방을 만든 것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기사가 유통된 이후 수용자들은 24시간 동안 ‘타임톡’에 ‘참여’하면 메신저나 채팅방의 모습처럼 타인과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카카오는 의견을 남길 공간은 유지하되 기존 뉴스 댓글의 문제점 즉 혐오 표현과 악성 댓글의 만연을 막겠다는 취지라고 언급하였다. 댓글을 남기는 것이 가능할 때에는 타인의 의견을 참고하여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최근 앞서 살펴본 정치/사회 분야에서의 개인 또는 집단 간 갈등이 극화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의 도전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침을 뱉는 것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한국일보의 최문선 기자가 “ ‘기레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면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언급한 문장이다. 언론사와 포털이 정파성에 기반한 뉴스를 생산하여 정부를 견제하는 것을 지양하고 수용자 역시 자신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객관성에 기반하여 뉴스를 소비하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객관성에 기반한 뉴스가 언론사에 의해 생산되고 포털에 유통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수용자가 ‘어떻게’ 내재화하는지 역시 중요하다. 뉴욕대학교 교수 미첼 스티븐스는 저서 <뉴스의 역사>에서 뉴스가 오락거리가 되는 것이 현대의 고유한 현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뉴미디어가 선정성을 부추긴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본성에 선정성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다. 즉 ‘포털’은 전통 저널리즘의 특징에 인터넷 기술이 접목된 것이며 이는 단순히 수단일 뿐 창작하고 수용하는 것은 현대인의 몫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이 속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고민하여야 하는 것이다.
조셉 퓰리처는 ‘나라와 언론은 함께 일어서고, 함께 무너진다’라고 하였다. 나라를 구성하는 것은 서로 다른 취향과 생각을 가진 개인들이 집합이며 이들과 언론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뜻한다. 언론의 형태가 레거시 미디어에서 ‘포털’을 기반으로 한 형태로 재가공되어 수용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하더라도 이 속에서 언론과 대중의 상생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여야 할 때이다. 상생이 선행될 때 한국의 포털 저널리즘이 특정 정파성에 흔들리지 않고 ‘품위’ 있는 형식으로 기우는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