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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 Aug 30. 2024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참치뱃살도 나의 취향이겠지!


취향을 통해 사람과 문화, 그리고 관계를 이해하며
소음 가득한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방법!

우리의 아침을 잠시 생각해 보자. 내 마음에 드는 색과 재질로 구성된 침대에서 일어나 직접 고른 휴대폰의 알람을 끈다. 외출 준비를 하며 좋아하는 색상의 옷을 골라 입고, 근처 커피숍에 들러 선호하는 맛과 향의 커피를 주문한다. 이처럼 모든 일상에는 우리 개개인의 ‘취향’이 녹아있다. 취향이란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기호의 집합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을 아비투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한 사람이 사회에서 경험하고 학습한 것이 몸과 정신에 스며들어 개인의 고유한 성향으로 발현되는 일’을 뜻한다. 이 책의 저자는 취향이라는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키워드가 곧 현재 사회의 구조와 자신을 파악하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세계가 확연히 넓어질 수 있음을 직감했다. - 예스 24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책소개에서


신간도서를 뒤적이다 발견한 책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의 소개글이다

이 글을 읽고 나의 아침 주변에 시선을 보내본다

이 베개가 나의 취향이었나?

이 이부자리가 나의 취향이었나?

이 휴대폰이 나의 취향이었나?

출근을 준비하며 입은 옷을 거울에 비춰 본다. 이 옷이 나의 취향이었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 피식 거리는 웃음에 멋쩍은 아침이다.


'부자는 경험을 소비하고 소비는 취향을 결정한다'


얼마 전 자신을 청담동 부자라고 소개하며 청담동 부자들의 사고나 행동양식에 대하여 릴스 영상을 올리시는 분을 보았다

그분의 한마디가 가슴에 와닿았다

"부자는 돈이 아니라 경험을 소비한다"


명품은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물론 가질 능력은 충분하지만 필요치 않은 사람들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명품을 여우의 신포도 취급쯤(명품은 사치라는 자기 합리화)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명품 = 돈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부자는 명품의 경험을 소비하지만 일반인들은 명품의 돈을 소비하는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부자가 사는 명품이나 일반인이 사는 명품이나 화폐의 가치는 분명 같다

하지만 그 사고의 가치까지 같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듯 똑같은 화폐라도 소비하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유, 무형의 가치는 엄청난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

명품 소비를 경험해 본 사람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명품과 가품의 옥석을 가리는 안목과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명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반인보다 취향에 맞는 품질 좋은 상품을 선택할 확률이 높고 나아가 사업적으로도 부를 이룰 확률 또한 높은 게 사실이다


선택의 자유

다양한 경험 소비는 "선택의 자유"로 이어진다


선택의 자유란 물건이나 자동차, 집, 심지어 만나는 사람들까지도 내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으로 강요받지 않는 나만의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 폭이 넓어진다는 의미다

사회적, 대중적 기준의 사치가 더 이상 사치가 아닌 문화 및 물질의 가치로 쌓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성비를 따지느라 명품을 경험할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순리자에게 자본주의가 주는 선택의 자유는 결코 넓을 수 없을 것이다


책에서는 "우리의 취향과 계급은 끊임없이 우리의 시작점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확정취향은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가정환경에서 주입되는 취향이고 독립취향은 확정취향을 기반으로 스스로 형성해 나가는 개인의 취향"이라고 정의한다

스스로 형성해 가는 개인의 취향은 사회적, 문화적, 자본적 영향에 따른 선택적 경험치이자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아로새겨진 DNA와도 같다

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 비즈니스 파트너, 여가를 소비하는 라이프 스타일, 자유로운 금전적 소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의 또 다른 계급 즉, 취향 계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의 취향 계급은 어디쯤일까?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볼 때면 부러운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 들은 나와의 비교에서 종종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그 들과 똑같은 경험을 하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들의 취향이 부러워서 한 두 번 따라 한들 그 들과 똑같은 취향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일회성 소비가 취향이 되지 못하는 까닭이자 취향의 소외가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는 이분법적 인간관계에서의 소외는 분명 우리 사회가 가진 불평등과 아물지 못할 상처다

스스로의 취향을 인정하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 주는 품격을 갖춘 취향이라면 굳이 계급을 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취향이 인간 그 자체 - 톨스토이
온전한 한 사람의 개인적인 취향은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의 취향 그 자체를 존중하겠다는 말과 같다
단순히 각자가 경험한 가치로만 상대의 취향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중에서


맛난 음식과 그 음식에 맞춤인 술을 찾아가는 경험의 소비. 이 또한 나의 취향일것이다!

참치 (ft.우니, 연어알) & 조니워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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