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니 옥토푸시니' 카드가 가르쳐준 워킹맘의 우선순위
매년 3월은 저에게 '나'를 지우고 타인의 세계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특수교사라는 직업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지요. 새로 만난 아이들의 낯선 몸짓을 해석하고, 그들이 내뱉는 무정형의 언어 속에서 간절한 요구를 찾아내야만 합니다. 아이들의 깨진 생체 리듬을 맞추고 새로운 교실의 규칙에 적응시키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퇴근길 즈음엔 영혼의 배터리가 어느덧 '한 자릿수'를 가리키곤 합니다.
그뿐인가요. 강사로서 무대 위에 서기 위해 또 다른 자아를 꺼내어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누군가의 삶에 작은 변화의 씨앗이라도 심고 싶다는 열망, 대중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싶다는 목표를 향해 달리다 보면 하루 24시간은 늘 부족한 조각보처럼 느껴지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2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폭풍 같던 새 학기 적응 기간이 끝나갈 무렵, 문득 집 안의 적막함이 생경하게 다가왔습니다.
"엄마, 나 이제 형님 반이야!"
2주 전, 등원길에 씩씩하게 손을 흔들며 멀어지던 아들의 뒷모습이 비로소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아이도 저만큼이나 긴장된 마음으로 낯선 교실의 문턱을 넘었겠지요.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나름의 고군분투를 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설렘과 두려움의 깊이를 얼마나 들여다봐 주었을까요. 학교에서는 남의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소한 변화에도 기록의 펜을 들면서, 정작 내 아이의 '성장통'은 당연히 겪어야 할 통과의례로 치부해 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타인의 성장을 돕는 전문가라고 자부하면서, 내 곁의 가장 소중한 성장은 방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해일처럼 밀려왔습니다.
오늘 밤, 저는 산더미 같은 일감과 강연 원고를 덮었습니다. 대신 아들이 아끼는 보드게임 '이탈리안 브레인롯'을 거실 식탁에 펼쳤습니다.
"아들, 오늘 엄마랑 이거 원 없이 하자! 엄마가 다 져줄게."
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엎어놓은 메모리 카드를 하나씩 뒤집으며 아이의 눈을 맞추었습니다. 형님 반에서 보낸 일주일은 어땠는지, 점심은 맛있었는지, 혹시 힘들지는 않았는지... 뒤늦은 질문들을 조심스레 건네던 그때였습니다. 아들이 카드 한 장을 집어 제 코앞으로 내밀며 배시시 웃었습니다.
"엄마, 여기 블루베리니 옥토푸시니 있어. 얼른 찾아봐! 엄마가 귀엽다고 좋아하잖아."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며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저는 아이의 새로운 환경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정작 아이는 저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소한 것에 미소 짓는지를 기억하며, 자신의 적응기보다 엄마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있었던 것이지요.
올해 안에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저의 큰 목표입니다. 하지만 오늘 밤, 내 아이가 내민 '블루베리니 옥토푸시니' 카드 한 장에 담긴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집필이 아닐까 싶습니다. 텍스트로 된 지식보다 아이의 눈동자에 담긴 사랑이 훨씬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으니까요.
아이의 다정함 덕분에,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저의 3월이 비로소 부드럽게 녹아내립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이제 엄마가 네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갈게. 내일은 우리, 블루베리니 옥토푸시니 보다 더 귀여운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가요.
여러분의 3월은 어떤가요? 혹시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느라 내 곁의 소중한 '블루베리니 옥토푸시니'를 놓치고 계시진 않나요? 오늘 밤만큼은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가만히 맞춰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