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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ug 02. 2024

코다리 냉면 한 그릇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90

내 귀에 매미는 하루 종일 쉬는 시간도 없이 울어댄다. 잠깐 쉬는 타임을 가져도 좋으련만. 새벽에도, 한밤중에도 같은 톤으로 운다. 한 달이라는 정해진 시간 동안 생의 목적을 다하기 위해 그렇게나 우는 건지 시끄럽다가도 대견하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매미에게는 한 철인 이 불볕더위에, 나는 자주 쉬고 싶다. 집안에 에어컨이 있으니 땀 흘리지 않고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데도 안팎의 더운 공기에 지친다. 특히 돌밥돌밥이라는 신조어처럼, 먹고 나면 금세 다가오는 밥때가 버겁다. 방학에, 남편 휴가까지 모두가 모여있는 식사시간이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매 끼마다 정성이 가득한 다양한 음식을 차려내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된다. 각자 방에서 게임하고 공부하고 배고플 때만 식당을 찾는 손님처럼 방에서 나오는 패턴이 반복되니 나도 모르게 슬슬 짜증지수가 높아져갔다. 이런 때일수록 바깥 밥의 유혹이 강렬하다. 최소 1주일에 한 번은 나가야 한다.


여름의 맛, 코다리 냉면을 찾아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부엌을 떠났다. 30년 전통의 속초 코다리 냉면집은 남편이 다니기 시작한 때부터 따지면 한 20여 년은 우리 집 단골음식점이 되었다. 여름이면, 꼭 먹어야 할 보양식 같은 별식이다. 11시, 이른 점심시간이라 우리 가족과 잘 차려입은 노인부부만 조용히 식사를 즐겼다. 한가한 식당에서 코다리 냉면과 왕만두를 주문했다.


식당 입구에 적힌 명태 설명
비비고 난 뒤의 코다리 냉면



여느 비빔냉면과 같은 비주얼이다. 그런데, 쫄깃하고 부드러운 코다리가 들어간 매콤 새콤달콤한 비빔냉면은 더위에 지쳐 멍해진 내 정신을 돌아오게 할 만큼 자극적이며 매력적이다. 오이와 무채가 잘 어우러져 상큼하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탓에 입은 맵다고, 머릿속과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지만 그만큼 개운해진다. 과장해서 부풀려 말한다면, 인삼을 먹지 않았어도 힘이 불끈 솟아나는 느낌이랄까. 마음속에 쌓인 스트레스마저도 땀으로 배출되는 듯하다. 이래서 캅사이신 성분이 들어간 매운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웬만해서는 한 그릇 다 비우는 법이 없는 나인데 딸과 나눠먹은 양 많이 코다리 냉면이 담긴 그릇을 싹싹 비웠다. 밥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밥으로 풀어야 제맛인가. 냉면 한 그릇으로 휴식을 맛봤다. 이 맛에 여름에는, 특히 밋밋하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꼭 먹어야 할 음식 중의 음식이다.


올해 처음으로 집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말 그대로 방콕을 했다. 아이들이 크니 이제는 따라나서지 않는다. 울산에 사는 동안 부산, 경주, 포항, 여수를 구경했으니 더 이상 갈 만한 곳이 없다고들 했다. 무엇보다 사춘기 아들은 학원수업은 핑계고 그저 집이 좋아 집밖으로 나가기 싫다고 했다. 남편도, 아들도 시원한 집에서 하고 싶은 거 하며 쉬는 게 최고의 휴가라고 하니 그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맘껏 쉬라고 하면서도, 내 휴가는 어디에?라는 생각이 부쩍 들면서 그냥 보내자니 내심 아쉬웠다. 휴가철, 바가지요금에 유난히 더운 여름, 딱히 갈 곳 없을 때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허전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가장 손쉽게 먹는 것으로 채웠다. 


저녁밥은 무얼 하나?를 생각하며 냉장고 문을 또 열었다.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반짝 기운을 회복했으니 다시 부엌에 서서 요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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