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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Dec 07. 2024

운전대는 자립대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57

여태 운전을 못했으면 어땠을까? 남편에게 부탁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했겠지?

사실, BMW족(Bus, Metro, Walk)이라서 일상생활에서 운전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걷기를 좋아해 웬만한 거리는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결혼 전 서울 살 때는 운전의 필요성이 1도 없었고 결혼 후 용인에 살면서도 큰 불편은 없었다. 


그런 내가 운전을 한다. 겁 많은 내가 도로 위를 달린다. 엄마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필요가 사람을 바꿨다. 엄마병원에 가기 위해서.


말이면 엄마를 보러 간다. 점심이 늦어지면 얼른 먹고 설거지는 남겨두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지만 차 안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익숙하지만 매번 다른 풍경을 지나치다 보면 어느새 20분 거리에 있는 요양병원에 도착한다. 호가 걸릴 때면 운전대를 앞에 두고 계절의 변화를 확인한다. 구름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비가 내리면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을 만난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 속에 머무는 순간을 즐긴다. 


집을 나설 때와 돌아올 때의 마음은 다르다. 내 속은 시끄러워진다. 설레던 마음은 사라지고 즐거보다는 답답하고 안쓰러운 마음, 원망과 불평의 소리 등 갖가지 감정들이 나를 옭아맨다. 큰 한숨이 나를 짓누르면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음치여도 눈치안보는 곳인 만큼 따라 부르다 보면 속이 스르르 약간 풀린다.


몸의 피로만큼 마음의 피로가 누적되지 않게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 운전을 못했으면 혼자 삭힐 시간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에 그랬다.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서울 병원에 2년 계실 때 주말마다 서울 시댁에 갔다. 남편과 갓난쟁이 아들은 두고, 나만 지하철을 타고 엄마를 보러 다녔다. 지금도 가끔 남편은 애들에게 얘기한다.


"토요일마다 서울 할머니집에 갔었. 엄마가 외할머니 보러 가서."


덕분에 아들이 2살 때까지 시부모님은 손자를 자주 볼 수 있었지만 그 말이 때로는 불평으로 들렸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 타고 한 시간씩 서울 곳곳을 누비며 엄마를 보러 다녔다. 간호사, 간병인 간식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정신없이 엄마를 보고 병원에서 나오면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싶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멍한 눈으로 입 다물고 한 시간 걸려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댁으로 되돌아왔다. 친정엄마를 보고 온 게 큰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지친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될까 봐 씩씩한 척 얘기를 나눴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오는 차에 앉자마자 뻗곤 했다. 

 

그게 싫었다. 더 이상 힘들다 싶어 장롱면허를 꺼내 급히 연수받고 엄마를 수원으로 모셨다. 엄마와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에게 부탁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가급적이면 부탁을 하지도 받지도 않고 살고 싶다. 그런 성격이라 남편친정일 앞에서는 남으로 느껴졌다. 투철한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해 먼저 나서는 성격이 아니기에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내 발로 혼자 야 편했고 지금도 그렇다.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니 불편하다. 병원에 갇혀 답답하게 살고 있는 엄마를 보고 오는 날이면 내 손으로 운전대를 잡을 수 있어 나에게 매번 고맙다. 운전마저 의존해야 했다면 더 힘들었을 텐데 스스로 할 수 있어 대견하다. 마음을 정리하고 차에서 내릴 수 있는 시간이 있어 두 배로 칭찬한다. 날갯짓하는 새가 된 양, 자유를 느낀다.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일 만큼 남다른 힘을 주는 능력이다. 주차장에서 나에게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마구마구 찍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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