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앞으로 외식 두 번 하면 안 되겠어요!"
"엄마, 치킨을 몇 번 먹었을 돈이에요!"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분 만에 20만 원을 써야 했던 내게,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20만 원이 크다면 큰돈이다. 사용 가치와 쓸모를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일단 먹거리가 생각났을 테고, 부모 입장에서는 학원비, 생활비, 용돈... 단위를 작게 나눌수록 무수히 나뉘는 유한소수라도 될 듯싶다. 쓸 데야 많지. 어떻게 쓰느냐는 무궁무진하다. 하루 종일 혼자 해결해 보겠다고 이리저리 애쓴 내 수고는 어디에도 없고 주머니에서 나간 돈 20만 원만 달랑 보이는 듯했다.
그 돈. 변기 뚫는데 썼다. 쓸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막힐 이유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오물과 이물질이 하루이틀 차곡차곡 시간과 같이 쌓여 어느새 임계치를 넘겨 변기가 막힌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막힌 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아슬아슬 넘쳤다!
이런 일도 있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고, 시트콤의 한 장면이거나 꿈이기를 바랐다.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덩그러니 혼자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당장 슈퍼맨이라도 등장해서 없던 일처럼 치워줬으면! 가끔 막힌 변기를 뚫었듯이 혼자 이것저것 해봤으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켜 손쓸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더구나 깊은 구정물 바닥을 알 수 없듯,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전문가만이 나를 이 상황에서 구출해 줄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도움의 손길을 뻗기에도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래도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검색창을 통해 업체를 찾아 얼굴이 화끈거리는 상황설명을 했다. 늘 하는 일이니 괜찮다는 사장님의 무심한 반응도 진심으로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매번 하는 일이라도, 변기작업인데... 진정되지 않았다. 화장실 환풍기를 틀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다. 누구를 오매불망 기다린 게 언제였나 싶었다. 전화통화 후 한 시간쯤 지나 도착한 사장님은 문제의 화장실로 들어가셨다.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드리며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기계음이 들리고 한숨소리도 새어 나왔다. 엄청 혼날 것을 예상하며 기다리는 아이처럼, 소파에 대충 걸터앉아 있었다.
30분쯤 지나서 드디어 사장님이 나오셨고, 나를 불러 내시경을 통해 깨끗해진 변기 속을 보여주셨다. 재난상황에서 벗어난 화장실은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저 놀랍고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얼마 드리면 될까요?"
"20만 원이요."
"네?...... 네."
그렇게 순순히 20만 원을 계좌이체했다. 가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난이도와 기술자의 노하우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분야일뿐더러 빨리 달려와서 나를 구해줬으니 부르는 대로 서비스비용을 군말 없이 지불했다. 두세 업체와 가격을 비교할 여유란 건 애초부터 없었고 사장님을 믿었다. 어리숙해 보이는 내가 호구로 보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변기며 싱크대며 막히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하시며 명함 한 장 주고 떠나셨다.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허리를 펴기가 힘들 정도로 기진맥진했다. 변기 사건으로 별의별 생각 쓰나마가 몰려왔다. 변기 트라우마라도 생긴 것처럼 더욱 조심히 사용해야겠다는 생각 하나, 살면서 이것저것 예상치 못한 일들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발생한다는 생각 둘,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 셋, 내가 처리하기 힘든 문제를 타인이 단숨에 해결해 주니 좋다는 단순한 생각 넷,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 다섯, 험한 일을 하는 분들 덕분에 일상이 큰 불편 없이 흘러간다는 생각 여섯. 여기저기 흩어진 파편 같은 생각이 나를 감쌌다.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나는 처음인데... 내 일상에 커다란 여파를 남긴 사건이었다. 며칠이 지났어도 화장실 갈 때마다 생각난다. 그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