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60
시험이 끝나면 영화 보러 갈 거예요!
얼마 만에 가는지 몰라요!
혼자 가요!
아들은 기말시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가겠다고 눈을 반짝이던 아들이었다. 그러나 시험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자 살짝 무거워 보이는 발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잘 보고 와!
그 무섭다던 중 2병이 아들을 건들지 않고 지나간 듯 어느새 2025년의 끝자락이 보이고 있다. 무탈하게, 가끔은 속사포처럼 투덜대고 냉정하게 반응하지만 아들은 속 깊게 인생 경험치를 켜켜이 쌓아가며 한 해를 보내고 있었다.
시험이 끝났다. 어서 끝났으면, 이것저것 생각만 해도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내성적인 나는 보통 영화를 봤다. 평소에 보고 싶었던 비디오를 3-4편 빌려 안방에서 배 깔고 엎드려 컴컴해질 때까지 다 보곤 했다. 단골 비디오 대여점에 미리 예약해 둔 영화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쌓인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지며, 참 행복했다. 종로나 명동에 가지 않고서는 집 근처에 극장이 없던 시절이라 혼자 비디오를 봤다. 대학생이 되어 극장을 찾게 되면서 혼자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보는 게 좋았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공유하는 맛에 빠져 들면서 어느새 영화 보고 밥 먹는 게 취미가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 혼자 가는 아들이 낯설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대학 4학년 때쯤 혼자 영화 보러 간 나와 달리 아들은 중학생 나이에 혼자 영화관에 갔다. 별 뜻 없이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는 아들은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건 아닐까?
아들은 시험을 앞두고 자신감을 보였다. 수학과 과학은 평소에 잘하는 편이라 크게 걱정이 없다면서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치였다. 영어는 쉽게 출제될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을 굳게 믿으며 어려움 없이 술술 읽고 문제를 풀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의 표정은 3일 내내 밝지 않았다.
휴!
저한테 실망했어요. 열심히 했는데.
나를 붙잡고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듯 아들은 시험문제와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보여 달라고 말하기 전에 시험지를 보여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했다. 지난 시험과는 다른 태도에 훅 커버린 느낌마저 들었다. 이미 값진 경험이라고 몸에 흡수한 듯 보였다. 부모의 경험을 아무리 말해준들 잔소리로 여기고 무시할 텐데 본인이 느끼고 깨달았으니 어찌 보면 이번 기말시험이 아이를 성장하게 만들 거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길 바란다. 국민학교 때부터 시험과 등수에 단련된 부모와는 다르게 중학교에 와서야 시험체제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필요한지 모른다.
개개인의 능력을 평가하고 점검하기 위해 시험은 필요하지만 누구에게나 긴장과 스트레스 같은 심적 부담을 준다. 얼마 전 기말 시험을 치른 엄마인 나조차도 여전히 시험이 주는 스트레스와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나이쯤 되면 시험에 너그러워져야 하는데 결과에 실망하며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벼락치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공부를 했으면서도 이만하면 충분히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착각에 빠져 결국 서술식 문제 하나에 꼬리가 잡혔다. 공부를 안 한 사람처럼, 넋 놓고 당했다. 시험을 망치고 슬퍼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엄마도 어쩔 수가 없구나!
그렇게 실망한 채로 하룻밤을 보내고서야 추슬렀다. 시험이 있기에 부족한 부분을 확인했고 보충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수없이 많은 시험을 봤고, 지금도 보고 있는 인생 선배지만 여전히 시험은 어렵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시험이 끝나면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 풀어야 한다. 의식처럼 엄마는 좋아하는 산책을 나가고 집에서 영화를 봤다. 아들은 넓은 상영관에 앉아 영화를 봤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