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작가가 되려면

글이 세상에 닿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by 지니의 쉼표

첫 글을 써서

바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작가를 준비하던 내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막상'탈락'이라는 말을 들으니

내 마음에 단단한 보호막이 쳐졌다.


"맞아 난 글 쓰는 것은 잼뱅이지, 내가 뭐라고 글을 써"

나는 그렇게 글쓰기를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나의 마음을 챙기기 위해.


난 긴 글을 쓸 자신이 없다.

내게 그런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짧은 글이 타인에게 어떠한 울림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걸맞은 옷은 아닐지 몰라도

요 며칠

글을 쓰면서

아주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조각조각 난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고

마음챙김을 하기 시작한 나를 발견했다.


나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계속 이 길을 가보고 싶다.

내 나이 오십삼 인 지금.


내 글이 채택되지 않으면 어떠랴.

세상에 공개되지 않으면 어떠랴.


"마음챙김 숙진"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이렇게 살아보려 한다.


나는 결혼해

아들 셋을 둔 엄마다.


연년생 아이를 키우며

남편은 바깥일, 아내는 집안일을 맡던

요즘 아이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세상일 테지만

나의 시대는 그 말이 남아 있던 과도기였던 시기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책임지며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찾았다.

그것이 초등학교에서 하는 일이었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을 보내고 출근하여 4시 30분에 퇴근하면

딱 좋은 시간에 아이들을 챙길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올라가면 내 아이가 있는 학교의 "방과후학교" 선생님을 하고,

학원을 다닐 쯤이면 내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원"의 선생님을 한다던지

내 아이들을 중심으로 누구를 돌보거나 가르치는 일을 해 왔다.


늦둥이 막내가 3살쯤 "초등돌봄전담사"로 일했고,

그러다가 문득 나의 어릴 적 꿈이 생각이 나서

'미술과 관련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떠올랐다.


반백이 넘은 나이에 도전한 미술치료,

지금은 그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아직은 "초등돌봄전담사"로 학생들과 지내겠지만

중간중간 치료사로 아픈 아이들을 만나

마음을 챙기지 못해 상처 가득한 아이들과 그 부모를 안아주는 일을 하고 싶다.


내가 기록하고, 메모하고, 토닥이며 힘든 누군가에 조용히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

그런 인생을 그리며

조각조각 난 마음을 챙기며,

'마음 챙김 숙진'이라는 필명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