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만 흐르던 아빠의 폭력.
엄마가 살아내 준 힘겨운 삶 지탱.
힘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두 간직하여
추억을 포기한 두 살 많은 언니.
일찍부터 집을 떠나 독립한 오빠.
그 속에서
일찍 어른이 된 어린아이.
그 아이는 혼자 놀다 손바닥과 손가락 베어도 돌볼 어른이 없었다. 미술의 재능은 있지만 가난하여 꿈조차 꿔보지 못한 아이, 누가 봐도 어떤 시대에 두어도 그 아이는 불행했다.
그 아이의 시선은
불우했지만 불행만 바라보진 않았다.
폭력적이고 성실하지 못한 아버지는
중국요리, 한식요리 아버지가 해준 요리는 추억에 가득 남아 있다. 짜장면, 만두, 냉면, 돼지껍질무침.. 요리라는 걸 잘해 주셔서 아버지가 해 준 요리는 훌륭한 오마카세였다.
손바닥을 크게 베었는데도 도와주던 이름 모를 좋은 사람을 만났고, 아빠의 폭력 속에서 온몸으로 막아주던 두 살 많은 언니가 있었다.
아빠의 폭력에 일찍 출가한 오빠는 군대 제대하며
자신의 누릴 것을 포기하고 막내 동생에게 시계를 선물하는 다정한 오빠가 있었다.
미술을 하고 싶었던 손으로 이리저리 사용되어
주변인들에게 칭찬도 충분히 받으며 자랐다.
나는 불행했지만 내 마음은 불우하지 않았다.
나의 시선은 불행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불행하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건 아닐 거다.
그러나, 그 불행보다
따뜻한 언니와 엄마가 있었고,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았다.
그 모든 시간 속에서 행복함이 가득했다.
나의 배려와 사랑이
다른 이를 웃음 짓게 하는
그 장면 하나로
나의 불행의 열 장면이 사라졌다.
어린 나이에 만든 요리 같지 않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던 엄마와 언니, 가족이 있었고,
그것을 함께 먹던 행복이 있었다.
엄마 따라 잔치 집에 가선
어른들께 예쁘게 보여
집에 있는 언니, 오빠 거 까지 오지랖으로 챙겨 온 음식을
언니, 오빠는 행복한 미소를 가득담아 맛있게 먹던 얼굴이
또 다른 잔치집에서도 애교 넘치는 막내딸이 되어 착하다 예쁘다 칭찬을 받으며 음식을 싸와 행복을 나누던 나였다.
난 그렇게 다른 이의 웃음과 미소를 보며
내 불행의 장면을 사랑과 애정으로 가득 채웠다.
그렇게 불우했지만 불행하진 않았다.
많이 갖고 있는 지금이
불행한 느낌이 드는 건 상대적인 감정을 알아버리고,
지탱이라는 부담감의 무게를 알아버려서 인 것 같다.
행복과 불행의 한 끗 차이를 알아 버렸다.
나의 역기능적인 이 감정,
어려서 더 불행했는데...
왜 나는 지금 그때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오늘도 다시금
내 마음의 소소하지만 행복한 장면들로
불행을 막아 보려 한다.
ps. 오래동안 갖고 읽고 또 읽고... 퇴고 되지 못한 나의 글...
시간만 흐르고 바쁘다는 핑계로 팔로잉한 작가님들 글조차 다 읽지 못하니...나의 글도...묵은지(하하하)가 되려하네요.
"나를 잊지 말아요~"노래 가사와 함께 살짝 놓고 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