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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란 Jul 09. 2021

<바그다드 카페> : 시작되고 돌아오는 환대와 사랑

시작되어야만 돌아오는, 시작된다면 반드시 돌아오는 마술과도 같은 것들

우리는 낯선 이들에게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 지난 수 세기 동안 이방인을 마주한 두려움의 탈을 쓴 공격성으로, 차별받고 억압당한 존재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두 번의 세계 대전과 제국주의의 흐름을 넘어선 현대의 민주주의 공동체에서도 여전히 '다름'을 근거로 한 차별과 배척은 만연하다. 다름은 두려움을 낳아 배제와 차별의 논리에 대한 탁월한 근거로 작용한다. 나와는 달라 낯설기만 한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은 '알 수 없음'에서 비롯한다. 낯선 상대는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예측할 수 없고, 나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그 본능적인 두려움에서 거부감이 비롯된다. 


하지만 문제는 곧 내가 드러낸 거부감이 상대방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서로를 향한 공격적 시선의 굴레는 끊길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알 수 없었'던 상대방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존재, 알고 싶지도 않은 존재로 남게 된다. 나와 상대방 중 그 누구도 서로를 알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우리의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삶의 양식이다. 이에 대해 영화 <바그다드 카페>(1987)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 야스민의 '먼저 환대와 사랑을 건넬 수 있는 용기'다. 감독이 제시하는 환대는, 타자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를 이해하고 나누려 하는 것이다. 굳이 차이를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 저들도 나와 비슷한 존재임을 먼저 전제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게 된다. 이것이 환대와 사랑의 출발점이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놓인 주유소 그리고 카페, 그리고 그곳의 주인 브렌다가 무능하고 답답한 남편을 쫓아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장 난 커피머신처럼 결핍이 존재했던 그곳에, 커피머신 대신 노오란 보온병이 굴러들어 오듯 독일인 야스민이 찾아온다.


보온병을 보자마자 버리라고 소리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브렌다는 새로운 것들이 낯설고 두렵고 싫다. 야스민을 마주할 때에도 그랬다. 야스민이 이 험한 곳에 차도 없이 옷도 몇 점 없이 오래 머무는 게 의심스러웠고, 야스민이 가져온 신기한 물건들도 수상했다. 자신의 영역인 가족들과 업무에 야스민이 자꾸 침범할수록 브렌다의 거부감은 커졌고 결국 폭발하여 야스민에게 폭언을 하기도 한다. 폭언을 마구 퍼붓던 와중 야스민이 '나는 아이가 없어요'라고 말하자 브렌다의 눈빛은 변하고, 경계심은 옅어진다. 사적인 것을 나누자 더 이상 야스민이 낯설거나 의심스럽거나 두렵지 않게 된 것이다.


바그다드 카페의 다른 가족들도 처음에는 야스민을 낯설어하지만, 사적인 것들을 나누며 친밀해진다. 퉁명스럽게 메롱을 하던 필리스도, 야스민의 옷을 구경하고 같이 입어보며 마음을 연다. 야스민이 옆에 앉아 살라모의 피아노 연주를 귀 기울여 들어주자, 살라모도 마음을 열고 연주는 더욱 훌륭해진다. 방 안의 그림이 처음부터 맘에 들었던 야스민은, 그 그림이 콕스의 그림임을 알고 콕스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해진다. 사적인 것을 나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서로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차이를 함께 공유하고 나누는 과정이다. 사적인 것들을 나누며 바그다드의 주민들과 야스민은 그렇게 서로 가족이 된다.


항상 야스민은 용기 있게 먼저 다가간다. 그 다가감은 때론 거부당하기도, 상처받기도 하지만 야스민은 결코 단념하지 않는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은 낯설고 의심스럽지만 따듯하다. 누군가와의 만남 또한 그러하다. 낯설고 의심스럽고 두렵지만, 그가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 따듯하다.


에릭이 사막의 하늘로 매번 던져 돌아오는 부메랑처럼, 콕스의 그림 속 반사되는 태양의 빛처럼, 야스민의 선행과 환대는 반사되고 돌아온다. 하지만 태양이 있어야 빛이 반사되듯, 부메랑을 던져야만 돌아오듯, 언제나 환대와 사랑에는 '먼저'가 필요하다. 아무도 용기 내어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웃도, 가족도, 친구도, 연인에게도, 용기 있는 '먼저'가 필요한 것이다.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먼저가 된 야스민은 그리하여 위대하다. 야스민의 용기로부터 사실 모든 마술은 시작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야스민에게 마음을 열자, 야스민은 여행 가방에서 꺼낸 작은 마술 세트로 마술을 선보이곤 한다. 카페에서 야스민의 마술은 인기를 끌고 카페는 더 많은 이웃들의 사랑으로 화목해진다. 영화 후반부, 야스민을 중심으로 이웃들이 점점 화목해지는 모습과 야스민의 마술이 심화되는 장면들이 교차 편집된다. 이는 그들이 나누는 사랑, 우정, 행복이, 마술보다 훨씬 더 마법 같음을 보여준다.


영화 마지막에서 이웃 간의 사랑은 정점에 다다르고, 야스민의 마술쇼 또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화려한 마술쇼에서 브렌다와 야스민이 함께 부르는 노래의 구절이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 여유롭게 머물고 싶어요. 모든 게 마술 같아 슬플 것 하나 없어요. 시작해 봐요, 사랑으로 하루를 가득 채워봐요." 사랑의 시작과 마술은 환상적인 따듯함으로 그려진다. 


80년대 영화임에도 이방인을 독일계 백인으로, 토착인을 인디언과 흑인으로 설정했다는 점, 그리고 탁월한 영상미와 음향은 이야기의 따듯함을 증폭시키곤 한다.     


환대의 시작은 나와 타인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는 용기,

그럼에도 타인 고유의 특성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려 하는 용기로부터 비롯된다. 

환대는 분명 시작된다면, 돌아올 것이다. 시작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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