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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살기연구소 Sep 14. 2023

현상적 구성요소와 실재적 구성요소

사회라는 용어를 통해 정의하고자 하는 대상

사회라고 일컬어지는 대상들에는 공통된 요소들이 나타난다. 이는 크게 현상적 구성요소와 실재적 구성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현실에서 지칭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물들로서 유/무형을 모두 말한다. 후자는 현상적 구성요소의 바탕에 깔려 있는,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는 없지만 근본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기제를 말한다.


1. 사회라는 용어를 통해 정의하고자 하는 대상


1-4. 현상적 구성요소와 실재적 구성요소


구체적 실체로서의 사회에서 추상적 실체로서의 사회로


“라투르가 지적하듯이 사회란 단순히 하나의 영역으로서의 실체(domain of reality)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인다고 할 때의 ‘사회적’인 의미, 즉 연결의 원리(principle of connections)와 관련된 개념이다. 따라서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관계 맺음의 원리 자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보자면 추상적인 ‘사회’ 개념이 등장하는 것은 근대적 nation이 상상된 이후에나 역으로 가능하게 되는, 즉 통계화할 수 있는 하나의 양적 집합으로서 과학의 대상으로서 사회가 파악된 이후에나 가능하게 된 것일지 모른다.”(6) 


구체적 실체: 오감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대상물. 현실에서 지칭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물들. 


사회의 경우, 근대에 와서 길드, 가족을 구성원으로 하는 회사, 종교단체, 친목단체, 노동조합, 개인과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중간조직들, 민족(nation) 등이 현실에 나타나고 이들이 주류가 되는 과정에서 이 구체적인 실체들을 지칭하기 위해 society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19세기의 민족(nation)이 전 유럽을 강타하면서 사회가 기존에 지칭하던 구체적 실체들은 핵심적 대상물이 되지 않고 지리적 관할권에 있어서 보다 큰 대상물을 지칭하게 되었다. 여기에 당시 산업화의 한 모습으로 분업화(노동과 직업) 현상을 더 고려해야 한다. 서로 일과 노동이 쪼개지면서도 하나의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세상이 돌아가기에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발생했다. 왜 과거와는 다르게 분업현상이 일어나는가? 왜 분업화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별일 없이 잘 돌아가는가? 이런 질문들이 결국은 뒤르케임의 분업론(division du travail)이 작성되었다. 분업이 진행되는 지리적 관할권 그리고 활동상의 관할권은 기존의 ‘연고가 없고 낯도 모르는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형성하는 결사체’라는 사회의 의미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그리고 논의는 더 나아가 society라는 용어가 지칭하던 대상물들에서 공통된 속성을 고민하면서 비로소 ‘추상적 의미를 담는 사회’의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런 추상화의 과정 속에서 ‘사회적인 것’이라는 대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즉, 다양한 구체적 실체들을 그것이게 하는 속성이나 질이 어떤 것인지 예를 들면, 상호적 관계, 상호작용,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개인, 상부상조 등을 추상화과정을 통해 도출해냈고 그리고 그것들이 보편성을 갖는 것인지 등을 고려하면서 ‘사회적인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Society(社)는 ‘상생양의 도’(相生養之)로 번역한다. 소사이어티라는 말은 보통 사(社)라는 글자로 번역하지만, 당(党)이라는 글자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무릇 사람이 사는 데 반드시 한 몸(一己)으로 생양(生養)할 수 없다. 금수들은 한 몸으로 생양한다고 해도 사람인 이상 그럴 수 없다. 반드시 인민이 서로 주고받지(相與) 않으면 생양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꺼이 서로 도와가며 생활하는 것을 상생양의 도라 부른다. 소사이어티, 즉, 당이란 인민이 아직 나라를 만들기 이전의상태로 향당(郷党)의 생(生)이라는 의미이다. 상생양의 도란 division of labour or profession 즉 노동을 나누고 직업을 나눈다는 뜻으로, 인민은 각자 고립해 생활할 수 없기에 어떤 이는 밭을 갈고, 어떤 이는 옷을 짜고, 어떤 이는 기물을 제작하는 등 반드시 직업을 나누고 노동을 나누어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 물건을 교환하여 사용해야 비로소 ‘생양의 도’가 성립한다. 또한 반드시 노동을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노동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이 노동한 결과물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는 천도(天道)의 적(賊)이 된다. 위로는 천자(天子)로부터 아래로는 만민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해도, 모두 노동을 나누어 살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로소 국가라는 것이 성립한다. 사농공상은 물론 모든 직업은 소사이어티 안에 있는데, 시계의 조립처럼 한 점의 티끌(塵)은 해가 없지만 톱니바퀴 하나라도 빠지면 쓸모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인민이 각자 그 직업과 노동을 나누어서 서로 주고받으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맹자가 말한 역공통사(易功通事)라는 것 또한 이 뜻이다.”(7)


위 인용문이 작성된 시기는 1870년이다. 뒤르케임의 분업론이 출판되기 22년 전이다. 그리고 위 인용문의 저자인 니시는 네덜란드에 유학하면서 경제학자였던 피셰링 교수 밑에서 수학하였는데, 이미 네덜란드에서는 분업화에 부속되는 문제의식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르케임 이전에 이미 분업론이 제기하던 문제들의 상당 부분을 유럽사회는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상적 구성요소


현상적 구성요소는 만약 해당 구성요소가 있다면 사회이고 없다면 사회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반면 사회들 사이에 구분하기 위한 기준들은 구성요소로 보기 어렵다. 이는 결국 사회의 개념나무를 구성하는 것과 연관된다. 유무에 따라 사회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요소는 가장 최상의 일반화 기준이 될 수 있다. 반면 분류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앞서 말한 일반화의 기준이 복수의 하위범주들로 구분이 될 때 나타난다.

 

1. 인적 구성원: 모임체는 해당 모임체에 소속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2. 목적: 모임체는 공동의 목적이 상정되어야 한다 경제적 이익, 관심사, 활동 자체 등이 목적이 될 수 있다.

- 오늘 태어난 인간은 이미 사회에 속한 존재로 태어난다. 이 갓난 인간은 기존의 사회의 목적에 대해 동의한 적이 없다. 그 목적을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함께 달성하겠다고 합의한 적도 없다. 그런데, 해당 목적은 지속적으로 이 갓난 아이에게 목적으로 부과될 것이다. 그리고 이 갓난 아이는 자라면서 그 목적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 목적이 타당하지 않다고 하면 목적을 바꾸자고 말할 것이며 그것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할 것이다. 그러한 활동이 보다 많은 구성원에게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목적을 전환하는 운동에 동참하게 되면 그 사회가 노정한 목적은 바뀔 것이다.

3. 공유되는 것: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목적, 제도, 관행, 인식판단틀, 언어, 문화, 역사 등이 공유되어야 한다. 인간모임체의 공동의 목적이나 공유하는 대상이 바로 인적 구성원들을 모이게 할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4. 운영 제도: 구성원들 사이에서 결정해야 하는 사안들을 다루거나 인간모임체를 운영하는 조직이나 운영방식 그리고 관련 제도들이 구비되어야 한다. 법체계, 가치체계, 관용된 관행, 인식판단틀, 언어(공용어), 문화와 풍습 등이 이러한 제도에 속한다.

5. 소속감, 연대의식: 구성원들 사이에 연대감이 있어야 하고 모임체에 대한 소속감이 있어야 한다. 즉 인적 구성원들 간에 의식과 감정 상에 연결이 있어야 한다. 다만, 연고가 같고 이미 낯이 익은 사이라는 점이 인간모임체를 만들기에 보다 용이할 수는 있다. 사전에 이미 알고 있거나 자연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형성되는 모임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족공동체, 마을공동체, 촌락공동체 등은 필연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맺어지는 관계에 의거해 형성된다. 동창회의 경우에는 동일한 학교나 동일한 시기에 함께 학교생활을 함으로 인해 발생한 연고에 기반한다. 반면, 회사, 노조 등과 같은 모임체는 사전에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라기 보다는 공동의 관심사나 이해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모임체이다. 모임체가 형성된 다음에 구성원들 사이에 의식과 감정 상의 유대관계가 형성된다.

6. 활동 및 연관을 규율 하는 제도: 인적 구성원들 사이의 연관이나 상호활동 등을 규정하는 제도나 규칙이 있어야 한다.

7. 관할권: 관할권(영향력 작동의 경계, 상호적 관계망의 경계, 상호작용망의 경계)이 존재하는가는 인간모임체들 사이의 구분을 위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관할권은 내적으로는 권력이 작동하는 경계이지만 외적으로는 자율성이 작동하는 경계가 된다. 


사회는 “특정한 경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망이며, 이 경계의 내부와 외부환경 사이에는 일정 정도의 상호작용상의 단절이 존재한다”. 사회는 “경계를 갖는 하나의 단위이다. 사회내의 상호작용은 비교적 긴밀하고 안정적이다. 다시 말해, 사회 내의 상호작용은 사회의 경계를 넘어 발생하는 상호작용에 비해, 내적으로 유형화된(internally patterned)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8) 


자급자족의 지리적 관할권(내적으로는 권력이 작동하는 경계이지만 외적으로는 자율성이 작동하는 경계이다), 문화적 관할권, 경제적 관할권, 통치적 관할권 등 외부의 구조가 작동하는 지리적 관할영역이 있다. 특히 근원적 구조가 아니라 제도적 구조가 작동하는 물리적-지리적 영역이 있다. 이는 사회의 물리적-지리적 토대가 된다. 물론 사회의 제도적 구조를 내면화한 사람들은 이 물리적-지리적 영역을 벗어나더라도 해당 제도적 구조의 영향을 받으면서 판단하고 행위 한다. 한국사람들이 미국에 가서도 한국에서 내면화한 제도적 구조에 의거해 판단하고 행위 한다. 이 구조의 지리적 관할영역은 자급자족의 관할권과 일치한다. 과거 마을공동체에서 오늘날에는 민족(nation)에 이르기까지 각각은 사회구성원들이 해당 지리적 관할권 내에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했다. 여기서 자급자족이란 사회구성원 각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분업은 사회구성원들이 일을 나누어 하고 각각의 일들이 자급자족을 위한 토대가 된다.


8. 사회권력 :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들을 하도록 강제하는 권력이 있어야 한다. 사회라는 인간모임체가 적절하게 운영되고 유지되기 위해서 다양한 자원과 활동이 필요한데, 이를 사회구성원에게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이 있어야 한다. 권력은 물리력에 근거할 수도 있고 전통에 근거할 수도 있으며 과거에 있었던 합리적 경험들에 의거할 수도 있다. 사회구성원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운영과 관련되어 자신을 포함해 다른 구성원에게도 무엇인가를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이 있어야 한다.


«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관과 신념에 따른 실천에 의해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사람들은 은밀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사회가 개인에게 내면화시킨 가치관과 신념을 별 의심 없이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산다. 다행히 인간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팔다리를 매고 있는 줄을 쳐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힘들여 고개를 들 생각조차 않는 사람은 진짜 꼭두각시 인형과 바를 바가 없다. »


규율권력은 사회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내용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부정적인 내용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위 8가지의 구성요소가 있어야 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 만약 하나라도 없다면, 그 인간모임체는 온전한 사회라고 부르기 어렵다.


연고 및 구성원간 사전 인지 여부: 인간모임체를 구성함에 있어서,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를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동일한 연고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기준은 사회의 하위 인간모임체, 즉 회사, 조합, 단체 등의 결사체로서의 사회를 특징 지우는 기준이다. 달리 말하면, 사회의 유형을 분류하는 기준은 될 수 있지만 모든 유형의 사회를 포괄하는 나타나는 특징을 규정하는 기준은 아니다.


해당 사회에 가입하고 탈퇴하는 것이 자유로운가, 강제되는가의 여부도 중요하다. 인간모임체는 자발적으로 모이고 자발적으로 탈퇴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자연적으로 가입이 부과되고 탈퇴가 어려운 것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발성과 강제성이 사회라는 범주에 속할 수 있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위 2가지 기준은 사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 이 기준들은 근대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을 말해주는 기준으로, 당시 새롭게 등장하고 향후 주류적 인간모임체의 특성을 보여주는 기준이다. 즉 16-9세기에 ‘사회’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당시에만 독특하게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는 사회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오늘날 사회는 연고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사전에 서로를 알고 있었는지에 상관없이 모두 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 가입의 자발성 여부도 사회라는 개념의 기준이 아니다. 자발적이어도 비자발적이어도 모두 사회라 부를 수 있다.


실재적 구성요소: 인간은 결핍의 존재이다. 상호적 관계


오늘날,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살아가는 게 아니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야채, 빵, 치즈, 쌀 등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급한다. 소위 익명의 사람들,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9)에서 살아간다. 이렇게 확대된 인간관계는 사회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인간의 상호적 관계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

-뒤르케임의 분업론과 연대론

-스펜서는 그저 ‘더불어 사는 것이 떨어져 사는 것보다 개인에게 이롭기 때문’에 사회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엘리야스는 사회를 축구 경기에 비유한다.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은 어느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일정한 틀 속에서 움직이지만, 경기의 모든 내용이 미리 짜여 있지는 않으며 결과 또한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선수들의 역량과 팀워크 그리고 선수들의 기본적인 행위를 규정하는 포메이션과 사전에 미리 정해진 약속들 등에 따라 경기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사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축구경기의 규칙과 같이 개인이 건드릴 수 없는 구조와 포메이션이나 작전상 세부 규칙 등의 구조가 존재하긴 하지만, 개인들의 의지나 역량 그리고 실제의 행위에 따라 경기의 내용과 결과가 달라진다.


실재적 구성요소 중에 구성원들이 개별화되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사회라는 개념은 전체의 일부이기 이전에 이미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인간이다.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하여 전체로 나간다는 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바로 이점이 기존의 communitas나 universitas, civitas 등 인간이 모여서 전체를 이룬 대상물을 지칭하는 용어들이 아닌 society가 선택된 이유이다. 


인간들이 모임체를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즉 사람들이 혼자서 자신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자연적으로 타인들과 모임체를 형성해 살아가는 존재인 것은 아닐까? 요컨대, 인간은 본성으로서 인간모임체를 형성하는 것은 인간본성의 하나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 본성을 좀 더 분석해 보면 보다 손에 잡히는 요소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최소한 2가지가 있다고 여겨진다. 하나는 인간은 애초에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인간은 온전히 자기충족적인 존재가 아니다. 일단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야 하고 에너지원을 흡수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자기완결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자원을 흡수하는 존재이다. 이는 그 자체가 불완전성을 의미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다양한 욕구들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를 충족시켜야만 하는 필요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욕구들은 사람이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외부로부터 자원이 들어와야만 충족된다. 즉 외부에 의존적인 존재이다. 애초에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두 번째 요소는 불완전성에서 유래하는 상호적 관계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타인에 의존적이다. 태어나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부터가 부모라는 타인에 의존한다. 욕구와 필요의 충족도 타인에 의존한다. 이러한 의존성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애초에 상호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로 태어난다. 

사실, 관계는 인간에게만 부과되는 원리가 아니다. 이는 모든 생명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이다. 하물며 생명체가 아니라 무생물에게도 적용된다. 원소들은 서로의 연결되는 배열구조에 따라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달리한다. 즉, 우리가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물체들은 바로 원소들의 배열이 어떻게 되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외형을 갖는 것이다. 수소와 산소는 각각 그것 자체로 존재한다. 그런대 수소 2개와 산소 1개가 만나면 물이 된다. 즉,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외형적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다.


Society의 번역과정에서 나타난 실재적 구성요소에 대한 문제의식


서구의 society를 동양에서 가장 먼저 번역한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의 1770년-1870년 사이의 번역사전들 중에 society에 대응해 사용된 번역어들은 전체적으로 추상도가 낮고 구체적이면서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상기시키는 말들이었다. 이는 당시 유럽에서의 society의 사용법에 기인한다. 즉, 당시 유럽에서도 society라는 용어의 개념이 새롭게 구축되는 시기였고 이 과정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가리켰다. 예를 들어, 사교, 친교, 친우, 집회, 조합 등이 그러했다. 이러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인간관계에서 보다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의미들, 즉 구체적인 대상들의 밑에서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것’들을 지칭하는 것은 유럽에서도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였다.(10) 


-개별화된 인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들 사이에 결사체가 만들어진다

-당시 일본인들이 society를 번역할 때 society 개념의 밑바탕에 흐르는 것으로 위 2가지 사항을 파악했다. 이러한 맥락은 동양에서 기존의 공동체적 관계와 다른 것으로, 욕구와 필요를 가진 개인을 단위로 하여 모임체가 만들어지고 그 모임체의 목적도 구성원 각각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임체가 여기저기서 활동을 한다. 특히 국가와 함께 관의 영역에서 활동을 한다. 

-바로 이 점이 당시 동양에는 근본적으로 부재하는 것으로 society라는 서양의 독특한 관계성을 보여 주는 개념이라 인식한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동양에서는 society가 지칭하는 개념과 그것을 현실에서 표현하는 실천 모두가 없었다. 

하지만 이때의 society는 ‘연고도 없고 낯도 모르는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형성한 결사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society가 담고 있는 모든 개념을 다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주지해야 한다. 특히 society가 19세기를 거치면서 그리고 nation이 형성되면서 보다 추상적이고 일반화된 의미를 지칭하게 되었는데, 이 의미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6) 김태진, “근대 일본과 중국의 ‘society’ 번역: 전통적 개념 속에서의 ‘사회적인 것’의 상상”, 『개념과 소통』, 제19호, 2017, 212쪽.


(7) 西周, 1981[1870], 「百学連環」, 大久保利謙 編, �西周全集 第4卷�, 東京:宗高書房, 239 ∼240쪽. 김태진, “근대 일본과 중국의 ‘society’ 번역: 전통적 개념 속에서의 ‘사회적인 것’의 상상”, 『개념과 소통』, 제19호, 2017, 191쪽 재인용.


(8) Michael Mann, The Sources of Social Power: Volume I: A History of Power From the Beginning to AD 1760,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6, p.13.


(9) 민경국, “’사회적’이란 용어의 문제점’, ‘사회’란 무엇인가. ‘사회적’이란 용어의 허와 실 세미나, 2013.


(10) 김태진, “근대 일본과 중국의 ‘society’ 번역: 전통적 개념 속에서의 ‘사회적인 것’의 상상”, 『개념과 소통』, 제19호, 2017, 183-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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