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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살기연구소 Apr 21. 2023

연장근로 유연화(주69시간제)의 허상

현행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로도 필요한 기업에게는 충분하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의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120시간을 일한다는 것은 주말도 없고 5-6시간 자는 것 말고는 온전히 회사에서 일을 해야 달성 가능한 것으로, 가장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의 모습을 띄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IT 업계에서도 마감시간을 앞두고 단기간에 몰아서 하는 노동, 소위 크런치 모드(crunch mode)는 나쁜 관행으로 이미 규제의 대상이 되어 최근 몇 년 동안 축소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IT 업계의 예를 들면서 극단적 노동시간을 다시 끄집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난 지금, 윤석열 정부는 연장근로의 유연화 조치인 주69시간제로 다시금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금의 주69시간제를 접하면서, 운 좋게도 유럽에서 사회제도들을 직접 목도할 기회가 있던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반응은 ‘어 이상하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무단히 애써 왔고 실제로 줄이고 있는데, 왜 우리정부는 꺼꾸로 가려 하는 걸까?’였다. 2021년 기준으로 유럽의 선진국들은 연간 노동시간이 1,300 ~ 1,600시간인 반면, 우리나라는 1,915시간이다. 노동시간의 격차 또는 시간 주권의 격차가 벌어져도 한참 벌어져 있다. 이런 맥락에서 윤석열 후보의 발언과 지금의 주69시간제는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1953년 근로기준법에서 법정근로 주 48시간을 도입한 이래, 우리나라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지난한 싸움을 해왔다. 긴 암흑기를 거쳐 2003년에 와서야 법정근로시간이 주 40시간으로 줄었다. 하지만 동시에 추가근로(12시간)과 주말근무(하루 8시간)이 허용되어 실제로는 최대 주 68시간까지 일을 해야 했다. 우리나라의 과로사 산재 인정기준이 ‘발병 전 주당 평균 64시간 노동’인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 노동자들은 항상 과로사 산재의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던 셈이다. 그리고 국제노동기구(ILO) 등이 사용하는 장시간 노동의 국제기준인 주 48시간과 비교하면, 법적 구속 아래서 거의 1/3을 더 일하고 있던 것이다. 그나마 2018년 7월 주52시간 상한제(법정근로 40시간 + 연장근로 12시간)가 도입하면서 선진국의 노동시간 규제 수준과 비교해 그나마 말석의 위치라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한시적일 지라도 주69시간을 일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 국제적, 국내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현 정부는 누구를 위해 이런 무리한 시도를 하는 것일까? 누구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연장근로 유연화를 제기한 것일까? 그들은 우리나라의 경제생태계에서 정말로 큰 비중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대의를 위해서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정말로 우리나라 산업계는 이미 유럽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유연성을 갖는 근로시간 레짐을 더 유연화해야만 생존력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허약한 것일까? 여러 질문이 딸려 나온다.


사실, 그동안 경영계에 친화적인 전문가들은 업종별 특성, 특히 제조업의 직무나 업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주52시간 상한제를 도입했다며 지속적으로 근로시간의 유연화를 주장해왔다. 그리고 유연근무제를 확대해 연구개발(R&D), 벤처, 금융 관련 기업들에게 제도적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고도 말해왔다. 이러한 주장들은 대기업보다는 주로 중소기업들의 이해에 맞춘 것으로 인력난에 힘들어하는 그들에게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최근 붉어진 주69시간 논란에 대한 중소기업계의 대응이 이를 잘 보여준다. 2023년 3월 6일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자, 같은 날에 중소기업중앙회는 주69시간제에 대한 지지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납기 준수와 구인난 등의 경영 애로가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기에, 현행 주 단위만 허용되고 있는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월・분기・반기・연 단위까지 확대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비판들로 인해 개편안 추진에 제동이 걸리자, 중소기업 단체들은 개편안의 조속한 정착을 요구하면서 개편안 지지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 중소기업의 가장 큰 경쟁력은 납기 준수입니다. 그런데 주52시간제 시행 이후 중소기업은 불규칙하고 급박한 주문에 납기를 맞추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심지어 일감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바라는 건 일시적인 업무량 증가에 형사처벌의 걱정없이 합법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정부의 개편안에 완전히 만족할 수는 없지만,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는 반드시 유지되길 희망합니다.”


정말 그들의 주장처럼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연장근로의 확대를 필요로 하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시간 규제는 충분히 유연하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상한제를 매주 온전히 적용한다면, 즉 현재 주 52시간 상한제를 지키면서 동시에 주말 휴일, 15일의 공휴일, 그리고 25일의 법정유급휴가를 가장 철저하게 사용했을 때, 노동자는 최소 2,300시간 정도를 일하게 된다. OECD 평균인 1,716시간과 비교한다면 엄청난 크기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이 1,916시간이란 말은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법이 허락하는 주52시간 상한 보다는 훨씬 적은 노동시간을 선택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장시간 근로를 위해 연장근로를 유연화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대체 어떤 기업들이 이를 원하는 것일까? 


「2021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월별 초과근로시간(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넘어선 근로시간)의 경우 광업이 가장 긴 20.2시간, 그 다음이 제조업으로 15.7시간, 수도·하수·폐기물은 12.7시간, 전기·가스·증기 분야는 10.3시간 순이었다. 다른 산업분야들은 모두 10시간이 되지 않았고 주로 5시간 이하였다. 이 수치들만 본다면, 연장근로시간은 모든 분야에 있어서 법정 상한인 48시간(1주 12시간 X 4주)을 넘지 않는다. 물론 위 수치들은 모두가 평균값이어서, 조금 더 구체적인 수치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구체적 수치는 고용노동부가 매달 제공하는 「사업체노동력조사」의 자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그때 그때 수행하는 설문조사의 자료를 활용해 볼 수 있다.


2022년 12월, 중소기업중앙회는 추가연장근로제를 사용 중인 중소기업의 비율을 조사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조사대상 400개 업체 중 71개가 추가연장근로제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즉 17.8%가 주52시간 상한제를 넘어서는 노동시간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반면,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자료인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30인 미만 사업장 6,117 곳 중 73개가 추가연장근로제를 사용하였다. 즉 관련 전체 사업장 중 1.2%만이 주52시간 상한제를 넘어서는 노동시간을 필요로 했다.


두 개의 자료가 서로 다른 수치를 보이므로 어느 하나가 옳다고 전적으로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는 노동시간을 늘리기 위한 맥락에서 조사되었기 때문에 긍정적 대답들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올 수 있다. 반면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는 정부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업체들은 실제 근로시간과는 다른, 특히 축소된 수치를 제출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들 중 일부만이 주52시간을 넘어서는 노동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자료에 따르더라도 중소기업의 17.8%만이 이러한 필요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많은 업체들 중에 일부만이 현재의 노동시간 규제를 넘어서는 노동시간의 확대 내지는 일정 기간 내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연장근로 시간의 확대(달리 말하면 연장근로의 유연화)는 모든 기업의 요구가 아니라 일부가 제기하는 요구라는 점은 대안을 마련함에 있어서 매우 큰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연장근로시간의 조정은 모든 산업분야나 모든 업종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의 분야나 특정의 업종 또는 특정의 업체에 한정해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산업생태계에서 한시적으로 노동시간을 몰아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에 한정해서 연장근로를 확대하면 되는 것이다. 연장근로의 유연화를 모든 산업분야나 모든 업체에 적용되는 것으로 디자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현 정부가 주69시간을 모든 영역에서 일반적인 규제로 적용하려는 의도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말해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특화의 방법은 현행 노동시간 규제 내에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통해서도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별연장근로제도는 5가지의 상황, 1/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 2/ 생명 보호 및 안전의 확보, 3/ 기계고장 등 돌발상황, 4/ 업무의 대폭적인 증가, 5/ 연구개발 등의 특별한 상황에 한정해 연장근로시간을 주12시간에 더해 추가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특히 제조업분야 중소기업들이 강조하는 갑작스런 계약이나 납기 단축에 따른 업무의 대폭적인 증가가 포함되어 있어, 대부분의 문제를 이 제도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다.


특별연장근로제도는 연구개발을 제외한 나머지 4개의 상황에는 4주 이내로 근로시간이 주 평균 64시간(법정소정근로 40시간 + 연장근로 12시간 + 추가적 연장근로 12시간 미만)를 초과하지 않는 수준에서 추가연장근로가 가능하다. 즉 주 평균 12시간를 초과하지 않는 수준으로 추가적인 연장근로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돌발적 상황이나 업무량 급증의 경우에는 1년 동안 최대 90일을 사용할 수 있다. 연구개발의 경우에는 3개월 이내로 특별연장근로를 인가 받을 수 있으며 3개월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심사를 통해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용노동부,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업무처리 지침」, 2022).


추가적인 연장근로 시간에 대한 조사연구도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로도 충분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최근 총 539개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연장근로가 주 12시간 이상으로 필요했던 기업들에게 실제로 ‘필요했던 기간이 얼마였는지’를 질문했다. 이에 대한 답변은 1주 미만이 37.5%, 1주 이상 2주 미만이 22.0%, 2주 이상 1개월 미만이 9.5%,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 16.1%, 3개월 이상 14.9% 등으로 나왔다(중소기업중앙회, 「근로시간제도 개편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조사」, 2023). 3개월 이상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14.9%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1년에 9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제도로 대부분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 


연장근로의 관리단위를 확대하는 것은 1년 내내 발생하는 업무량 급증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업무량 급증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개편안도 이러 맥락에서 연장근로의 유연화가 정당하다고 설파하고 있다. 1년에 90일이면 급작스런 납기를 맞추는데 충분한 기간이라 여겨진다. 1년 중 3개월 이상 또는 만성적으로 업무량 급증에 시달리면서 납기에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은 과감하게 인력을 충원하든지 아니면 계약을 애초에 하지 않는 보다 근본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결코 기존의 피고용인들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러한 근본적인 대응이 불가능하거나 그럴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면, 해당 업체는 중소기업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문을 닫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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