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파고를 잊고
핸드폰에 저장된 옛날 사진을 넘겨보다, 지난 일들이 마치 나만이 아는 암호처럼 덜컥 열릴 때가 있다.
별빛이 내린 것 같은 예쁜 카페. 사진 속의 날짜는 2019년 11월의 첫 주였다. 도심의 업무지역에 위치한 카페였기에, 오전 10시경 손님이라고는 나밖엔 아무도 없었다. 손님이 없는 스타벅스 카페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다른 손님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예쁜 카페 내부를 마음껏 사진으로 담아보는 것도 낯선 경험이었다. 그 무렵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점심을 먹고 바로 하원을 했었다. 오전에 세 시간 정도 주어지는 빠듯한 시간을 이용해 이곳에 온 이유. 아이가 지원할 사립초 통학로를 미리 걸어보고, 아이가 혼자(혹은 도우미 이모님과 함께) 걸어가게 될 하굣길을 지나 인근 주택가를 돌아보고, 아이 학교에서 내 직장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는 것까지. 멀지 않은 곳에 옛 직장이 있었던 지역이라 아주 모르던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골목골목 걸어본 적도 없었던 동네였다.
답사를 모두 마치고 카페에 잠시 들어와 앉았다. 부동산 앱을 열어 방금 보고 온 주택가의 집들을 검색도 해보고. 고민과 상상이 뒤섞인 ‘불멍’을 커피와 함께 낭비하는 여유도 부려 보았다. 달력 한두 장을 남겨놓게 되는 계절이면, 어딘가 들뜬 마음과 서성이는 마음이 감기 기운처럼 남아 있곤 했다. 복직을 하고픈 조급한 마음에 뒤늦게 사립초를 알아보았고,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 학교설명회가 있었다는 것과 이미 다 끝난 뒤라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나마 입학 원서 접수 기간이 지나지 않았음에 감사해야 했다. 사립초는 등교시간이 빨라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키고 내 출근 시간을 맞출 수 있었고, 그 이유 하나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도 아깝지 않을 절실한 조건이었다. 내 월급에서 사립초 등록금과 도우미 이모님 급여와 아이 학교 바로 앞으로 이사하게 될 집값을 모두 감당할 수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땐 절실하게 고민했었다. 고민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립초 원서는 딱 한 곳만 낼 수 있었고, 추첨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라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복직이든 이사든 어떤 것도 미리 결정할 수 없었다.
그 후로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결정이 잘한 것이었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도 알 수 없다. 결과만 서술한다면, 나는 6개월 휴직을 택하기 위해 사립초를 포기했다. 그땐 아이 입학을 도와주고 가을에 복직한다는 계획에 그렇게 했던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조금 다른 이유로 가을 복직을 하게 되었다. 그 해 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고, 새로운 직장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포일러를 미리 쓰는 이유는, 그 길고 긴 일 년 간의 이야기를 회고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것처럼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미리 엔딩을 다 알아버린 무미한 상태였으면 좋겠다, 건조하게 마음의 파고를 잊고 그 시간을 돌아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