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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A Sep 07. 2023

나의 다이나모스, 나의 도나를 위해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낼 것



  평생 뛰놀던 동네를 떠난 게 벌써 5년 전이다. 옛 동네에서 지하철로만 30분을 와야 하는 거리였다. 함께 울고 웃던 이들과, 추억이 깃든 장소를 데려갈 수 없어 고스란히 두고 왔다. 천지 분간 못 할 나이를 애매하게 빗겨 먹어서 대외적으로는 공고히 의연한 척 지냈다.


  그 무렵에는 직장도 없었다. 거실 바닥에 누워 쓸데없이 크기만 한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볕을 그대로 흡수하다가 잠이 오면 자고, 달아나면 깨어났다.

  날 밝을 땐 강아지와 실컷 놀다 책 한 권 쥐고서 카페에 갔고, 도로 어두워지면 들어와 강아지를 괴롭히거나 노트북을 켜서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옛 영화들을 봤다.


  외부 소음 없이 평온한 삶이었으나, 마른땅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낸 건 나의 속내였다. 달가울 리 없다. 누구라도 붙잡고 거멓게 그을린 면을 도려내 달라 사정하고 싶었지만, 무거운 몸과 마음만큼 입도 점차 무거워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가 편했다.



  이토록 폐쇄적인 환경에서 엄마는 나의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 주었다. 원체 정서적 거리가 가깝고 친밀했으나, 그 무렵에는 '둘도 없는 동네 친구' 자리까지 차지해 줬다.


  바라던 바처럼 약한 소릴 늘어놓을 수 없었지만, 다 큰 여자 둘은 그런대로 대화 코드가 꽤 잘 맞았다.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가면 집에 갈 생각을 않고, 시원한 음료 하나씩 사 들고 벤치에 앉아 '안에서 새는 바가지들'에 대한 이야기만 한 시간 가까이 떠들 정도였다. 깔깔 웃다가, 씩씩 화도 냈다가 여러 가지를 했다.



  엄마와 나는 아빠가 외출한 주말이나 더러 지방 출장 가셨을 때, 그렇게 텅 빈 집에 둘만 남겨져 있을 때면 더욱 단란해졌다. 깜찍한 파자마도, 예쁜 숫자 풍선도 없었지만 종종 파티였다. 우리는 대단하게 조촐한 술상을 내어가며 판을 즐겼다.






  그날은 영화가 보고 싶다고 했다. 절친이라도 자주 만나면 할 말이 고갈되기 마련인지라. 그저 전원만 켜고 끌 줄 아는 엄마가 인공지능 스피커에 입력하듯 '테레비로 영화 재미있는 거 틀어 줘' 했다.



  VOD는 OTT와 달리 퍼스널한 추천작이 없다. 뭘 어떻게 묶어 놓은 건지, 하나씩 확인하기도 벅찬 카테고리군이 하위로 무진장 펼쳐진다. 엄마, 이건 알아도 답답해서 못 쓰겠다. 그래도 잘 외워놔. 혼자 보고 싶은데 몰라서 못 보면 서럽잖아. 그럴 일이 없기는. 내가 여기 백날 천날 붙어있게?


  원래 어떤 명작이라도 포스터만 덩그러니 즐비해 있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법이다. 이리저리 페이지나 오갈 무렵 오래된 영화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당시는 마침 ‘맘마미아!2‘ 개봉을 앞둔 때였고, 으레 시리즈물이 개봉하면 전편을 함께 홍보하기에 떡하니 추천 당하고 있었다. 엄마는 말했다. 저거 그거지? 아바! 그러면서 곧장 댄싱 퀸을 흥얼거렸다.



  모녀는 틀에 찍어 누른 것마냥 '흥'이 빼다 박혀 있었다. 덕분에 뮤지컬 영화라면 돌진하고 보는 딸래미는 굿 초이스를 외쳤다.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스토리를 빠르게 복기했다. 자식 된 도리로, 무언가 부모와 함께 시청할 때에는 빛의 속도로 '부모와 시청하기 적합한가'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영화가 재생된 후 엄마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아바 노래 나오는 거 맞지?', '노래 언제 나오지?' 하고 물었다. 그 모습이 '이제 엘사가 레릿꼬 부르지?' 하고 묻는 어린애처럼 보였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여태 안 보셨을까? 나는 이미 몇 번을 봤는데.






  맘마미아!의 주인공은 메릴 스트립의 '도나 셰리던'이다. 도나는 그리스 지중해의 외딴섬에 정착하여 작은 호텔을 운영한다.

  애착을 가진 만큼 함께 늙어 버린 도나의 호텔은 이미 손만 대도 문짝이 나가떨어질 정도. 답답한 심정에 머니, 머니, 머니! 돈타령을 신나게도 한다.


  이후 몇 곡을 더 부르며 흥을 올리더니 마침내 '댄싱 퀸'이 등장했다. 엄마는 와아! 하며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마치 여인들의 행렬 끝자락에 합류한 듯 즐거워했다. 그렇게 여느 한국인처럼 팝 가사도 모르면서 용케 따라 불렀다.



 

  그 넘버와 씬은 작품의 상징과도 같기에 벅차오르는 것은 당연했으나, 나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어쩐지 내 옆에 도나가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바닷가는 아니었지만 엄마가 어디엔가 시원하게 퐁당 빠진 것 같았다.


  엄마는 저 억척과 같은 긍정으로 옛 추억의 기쁨을 누리는 도나가, 바람과 노래에 몸을 맡긴 도나가 부럽다고 했다.



 나는 그 의미가 무엇일지 꽤 오랫동안 생각하지 못한 채 ‘그러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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