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나요? 저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와 개인적 견해가 듬뿍 들어가 있습니다.
겨울 하면 생각나는 영화엔 무엇이 있을까?
해리포터, 나 홀로 집에, 러브액츄얼리, 겨울왕국 등..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속속들이 기억이 날 것이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보지도 않은 <러브레터>를 겨울 영화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나의 겨울 영화를 이번 겨울이 되어서야 드디어 열어보게 된 것이다. 설원에서 외치는 '오갱끼데스까! 아타시와*갱끼데스..!'는 정말이지 영화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장면이 아니던가-!
하지만 명작이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와서 기대가 됐지만 사실 걱정도 됐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 아닌가. 더군다나 일본 영화 특유의 빠르고 헷갈리는 전개가(나에게만 그럴 수 있다) 도통 익숙해지질 않아서 그 부분 역시 걱정이 될 수밖에.
(생략하셔도 좋습니다!)
영화의 시작에 앞서 기일을 추모하는 추모식이 열린다. 추모식의 주인공은 와타나베 히로코의 약혼자인 후지이 이츠키(남). 이츠키(남)의 부모님과 친구, 가족들과 지인을 비추며 영화가 시작된다.
추모식 중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데려다 드린 뒤 우연히 집 안에 있던 후지이 이츠키의 졸업 앨범을 꺼내 보게 된다. 약혼자였던 후지이 이츠키(남)를 잊을 수 없던 와타타나베 히로코는 편지를 부치며 그리움을 달래고자 한다.
"오갱끼데스까? 아타시와 갱끼데스"
그의 예전 집 주소는 국도 위. 상식적인 방법으론 도착할 수 없는 편지에 답장이 돌아왔다.
- 조금 더 조사하고 나니 같은 학교 동급생 중 성과 이름의 한자까지 같은 이성 친구가 있었고 와타나베 히로코는 후지이 이츠키(여)의 주소를 후지이 이츠키(남)의 주소로 착각하고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펜팔 친구를 유지하기로 한 두 여성은 편지를 통해 후지이 이츠키(남)에 대한 학창 시절의 추억을 공유한다.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편지를 부친 와타나베 히로코가 과거의 그를 알고 싶어 했으므로..
그렇게 추억을 공유하며 와타나베 히로코는 약혼자인 후지이 이츠키(남)가 후지이 이츠키(여)에 대해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자신들의 사랑에 대한 절망감을 겪지만 그 이후의 편지들과 후지이 이츠키(남)의 마지막 순간, 설원 위에서의 외침을 통해 그 모든 감정들을 극복해 나아간다.
마지막이 되어서, 와타나베 히로코는 두 명의 후지이 이츠키들의 첫사랑을 그들의 것으로 돌려준다는 의미로 편지를 모두 돌려준다. 그에 의문을 품던 후지이 이츠키(여)는 후지이 이츠키(남)의 마지막 편지였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의 도서카드 뒷면을 바라보곤 첫사랑을 인정하며 눈물을 보이며 영화는 끝이 난다.
개인적 견해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석에는 정답은 없고 여러 갈래길이라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즐겨주세요.
러브레터 시청자의 입장에선 그러길 바라고 싶지만 현실적으론 그러지 않을 것 같다.
히로코가 이츠키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애초부터 후지이를 채우기 위한 여정이었다. 영화의 대사에서도 '후지이씨의 내가 모르는 과거를 알고 싶다'라고 언급이 된다. 나는 이 이유가 더 이상 함께 만들어갈 미래가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기 위해서, 또 놓아주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후지이의 가족, 후지이의 전학 시절 이후의 친구, 후지이의 연인 이상의 기억이. 멈춰버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므로.
그런데 영화의 결말부로 향하면서 히로코는 후지이의 죽음을 극복해 낸다.
정확히 말하자면, 후지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과거를 캐물어 자신의 후이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설산에서의 외침을 그를 위한 정리였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히로코에게 더 이상의 펜팔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츠키는 어떨까. 나는 이츠키도 후로코의 편지가 오기 전까지는 편지를 부칠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의 절정으로 치달을 때 이츠키는 후지이의 죽음을 알아차린다.
그렇다면 나에게 이 편지를 부쳐오는 사람의 정체를 알 수밖에 없지 않을까. 편지에서 명확히 밝힌 적은 없으나 결혼 전 마지막 연인, 혹은 약혼자, 혹은 배우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테다. 후지이의 이성 교제 상대를 묻는 편지에서부터 이미 정체를 들킬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그 상황에서 후지이의 첫사랑이 자신이라는 것을 도서카드 뒤에 그려진 자신의 그림으로 부정할 수도 없이 확신해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다시금 편지를 부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추억으로 남겨 서로의 사랑과, 펜팔의 상대를 예쁘고 또 찬란하게 기억하게 되겠지.
나는 이 물음이 러브레터를 관통하는 물음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갈리는 편인데 이유는 후지이가 부르는 마지막 노래-푸른 산호초 때문이다.
푸른 산호초에서 나오는 '아아 나의 사랑은 남풍을 타고 달려 나가요~'의 부분이 남쪽으로 이사 간 후지이가 북쪽에 사는 이츠키를 향해 바치는 마지막 고백이었다는 설과 끔찍하게 싫어했던 그 가수의 노래를 부르고 좋아하는 여자애에겐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던 후지이의 성품을 단 번에 보여주는 장치로 청혼의 말을 건네지 못하는 후지이의 숙맥다움을 보여줬기에 마지막 사랑은 히로코라는 설이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후자에 가깝지만 마지막 가는 순간에는 히로코와 이츠키를 동시에 떠올렸다고 생각한다.
누가 먼저 생각났을지는 모르겠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놓이고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고, 선택에 감사하기도 하며 사는 게 인생이 아니겠는가? 마지막 순간, 친구들조차 나를 보지 못할 정도의 높이에서 부르짖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다고 한다면 후환을 떠올릴 것인가 사랑을 떠올릴 것인가? 그 답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게 오답일 수도 없을 테고..
하지만 후지이가 누구를 먼저 떠올렸든 간에 그 노래를 부르며 솔직하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지 못한 모든 순간을 떠올렸으리란 건 확실하다. 먼저 프러포즈 반지를 사랑할 만큼 사랑했지만 청혼은 하지 못한 끝사랑의 히로코와 고백하지도 못하고 꾹꾹 삼키기만 해야 했던 어설픈 첫사랑의 이츠코.
청소년기에 보았다면 첫사랑은 그 무엇도 이길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면서 평생을 불안해하면서 살았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루어지지 못한 후회가 당장의 내 사람을 뛰어넘을 만큼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것을 히로코가 느꼈기 때문에 우리들의 명장면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가 푸른 산호초였다는 장면 바로 뒤에 나오는 히로코의 파노라마는 설원 위의 외침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물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본어에서 보통 여성형 1인칭 지칭어는 와타시이다. 아타시는 좀 더 공적인 자리에서 쓰이는 말인데 약혼자의 안부를 묻는데에서 사용하다니, 어색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히로코가 설원에서의 이 외침을 기점으로 후지이를 더 이상 나의 연인으로서가 아닌, 전 약혼자로서 대우하고 앞으로 나아갈 거란 성장의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건 정말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러브레터를 보면서 가장 불편한 점 중 하나였다. 남자 주인공 격으로 나오는 두 사람이(후지이와 유리공방 선생) 내 기준으로 별로인 사내들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후지이로 들어가 보자면 결국 사랑한 사람은 히로코다(개인적인 견해지만). 그렇다면 그 사랑을 그 사람이 떠난 이후에도 불안하게 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내내 늘 진심이었어야 한다고, 불편한 마음이 들어도 그건 홀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후지이는 '그가 첫사랑을 닮아서 날 사랑한 거라면 용서할 수 없어!'라는 마음이 들게 만든다. 사실 후이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그 사실 자체는 그럴 수도 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외적 취향이라는 게 있지 않는가.
그런데 약혼까지 할 정도라면 자신의 어느 점을 사랑하고, 최악의 모습에 대한 확신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못한 사랑이라니. 그리고 그걸 평생 물음 질문으로 가져가게 하는 남자라니. 히로코의 예전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예전의 히코로씨가 불안정한 사람이었더라도 약혼자에 대한 사랑을 의심할 정도로 표현을 안 했다면...
덕분에 영화는 흥미진진했지만 배우자로서는 꽝이라고 생각한다.
아키바 시게루 역시 그렇다.
히로코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는 진실하다. 2년 동안 후지이를 그리워하고 힘들어하는 히로코를 걱정하며 꺼내주려고 한다. 설원에서의 표정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주 깨끗하고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무래도 나처럼 상처를 딛고 한 발짝 나아가는 히로코가 사랑스러워 그지없었겠지.
그런데 그 정도로 사랑했다면 히로코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히로코는 단순히 이별을 한 여성이 아니다. 단순한 애인 정도도 아니었다. 약혼자로 결혼을 앞둔 남자와 사별을 한 여성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2년은 그 상처를 극복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냥 이별을 겪은 사람도 정말로 사랑했다면 2년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도 숱하다. 그런데 사별이라니. 그를 향한 마음도, 앞으로의 행보도 전혀 갈무리하지 못한 사별을 너무나도 가볍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래서 그가 급작스레 입을 맞추고 잊기로 하지 않았느냐며 목소리를 높일 때 폭력적이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사랑은 진실됐을지 몰라도 그런 식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니.. 사별을 겪은 히로코에게 좋은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나는 영화 <러브레터>가 보내고자 하는 메세지가 모든 시작에 보내는 찬사라고 생각한다.
약혼자의 죽음과 그 과거에 묶여 질투하던 모든 시간들을 벗어나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히로코,
첫사랑의 죽음과 병원(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해내고 첫사랑을 마주하며 새 삶을 시작한 이츠키.
대체로 영화는 새로운 전개의 시작으로 전개되지만 <러브레터>는 약혼자의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후즈이의 죽음이라는 이별을 매개로 하여 시작된 두 여성의 삶이 찬란하지 않은가?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두 여주인공들의 시작과 출발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럴 수 있다는 매세지를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