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쉬는데 방해했네.”
누가 누구 언니인지 가볍게 듣고 넘길 수 있는 말인데 다시 거슬리기 시작했다. 지금 기분이 안 좋아서 혹은 힘들어서 그러려니 하고 흘려버리는 게 안 되는 것일까? 또다시 나에게로 문제를 돌려보기도 했다. 신규 간호사로 일할 땐 뭐라고 날 불러도 내 할 일이 바빠 별 생각도 안 들었다. 연차가 쌓이며 머리도 커졌다고, 그저 호칭뿐인데 이렇게 듣기 싫을 수가 있나 싶다. 언니는 그나마 상하관계가 있다는 전제하 나를 윗사람으로 칭해주는 것이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아가씨’는 못 참지. 여기가 술집도 아닌데 나보고 ‘아가씨’라고 부르면 나는 친절하게 ‘네~’하고 대답한다. 여자분이 그러면 그나마 덜 기분 나쁜데 중년의 아저씨께서 그러시면 머리에 가시가 돋치는 기분이다. 전에 결국 한마디 한 적도 있다. “저는 아가씨 아니고 간호사입니다. 간호사라고 불러주세요.”, “언니 아니고 간호사요.” 이렇게 정정을 해드리면 멋쩍게 웃어넘기시며 뭐라고 부를지 몰라서 그랬다 말은 하지만 다시 입에 익은 호칭으로 부르신다.
어쩌면 아가씨라고 부를 수 있지 열을 내고 그러냐, 피해의식 있냐 생각할 만도 하다. 깊이 생각해 보면 피해를 보고 있다. 나는 자격증이 아닌 면허증을 가지고 있으며, 의료법 상 의료인 인 간호사다.(그 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가 있다.) 병원에서 일한다고 모두가 의료인은 아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간호사가 되었다. 간호사로 일을 하며 무너져가는 체력과 별개로 간호라는 일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내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대학교에선 ‘의사와 간호사는 평등한 관계다’라고 배웠다. 그러나 임상에서 겪어본 관계는 참담하다. 그나마 대학병원은 덜하지만, 대병 아래 종합병원, 종병 아래 병원 급에서 일해 보니 거의 의사가 꼭대기에 있었다. 그도 그럴게 의사 한 명이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일일이 지시할 수 없으니 대략적인 처방을 주고 다른 일을 하고 있고, 간호에 의사의 처방과 확인을 받아야 시행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매번 그리고 자주 의사에게 물어야 했다. 의사의 기분과 태도에 따라 같은 일을 해도 한소리 듣는 건 간호사다. 이게 상하관계지 어디가 평등한 건가 싶다. 어쨌든 의사에겐 선생님, 원장님, 교수님 하며 불리지만 간호사에겐 저기요, 간호사, 언니, 아가씨며 가끔 선생님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일의 가치와 소중함, 자부심이 있는데 현실은 의사와의 관계에서 밀리다 보니 밥도 못 먹고 일만 하면서 보람이 없는 날이 많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가 의사 앞에서는 잘 나오고, 방금 전까지는 간호사한테 “너, 너” 하며 화냈으면서 의사의 말 한마디에 “네, 네”로 변하기도 한다. 맞는 말을 해도 맞는 일을 해도 그런 태세 변화를 직접 보고 있으면 서럽다. 그래도 또 환자 앞에 서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그게 간호사이다. 이제는 바꿔보려 노력한들 바뀌지 않을 거란걸 이제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정말 의미두지 않고 그저 부르는 용도로 그 단어를 선택했다는 것도 안다. 친구에게 빌려 ‘말그릇’ 책을 본 적이 있다. 한 인간의 말의 양식은 그 사람의 삶이라고 했다. 여태 살아온 결과인데 나 하나가 기분 나쁘다 한들 바꿔질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환자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환자를 그리고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 아무리 애쓴다고 내 생각을 바꾼다고 그렇게 될 수 없으니 다들 도와줬으면 좋겠다. 선생님이라는 존중어, 감사하다는 인사면 충분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