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꼼꼼하게 일하는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대충 일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마도 자기 확신이 강해서 재차 확인하지 않는 거 같다. 그리고 가끔 실수가 생기면 반복하지 않으려 기억한다. 나는 그렇게 일한다. 예전에 책에서 본 글이 있는데 칭찬은 모두가 듣도록 하고, 혼은 아무도 모르게 내라고 그랬다. 그 글이 아직도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 덕에 관계중심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이미 벌어진 다른 사람의 실수를 지적하기보다는 수습방향을 생각하고, 그 후엔 다음엔 이렇게 하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넷플릭스 드라마인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면 이런 대사들이 나온다. “사람이 어떻게 실수를 안 하니? 앞으로는 했던 실수만 또 하지 마.”,“괜히 듀티가 나눠져 있겠어요? 완벽히 못 한 일이 있어도 괜찮다. 다음 듀티가 채워 줄 테니까.”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다. 전 듀티의 실수를 다음 듀티가 커버를 해줘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드라마처럼 곱게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반대의 상황이 되어서 절절매고 있을 때 다음 듀티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너무 고마울 거 같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며 내가 그런 사람이 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 누군가는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실수는 하지 않으면 좋다. 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 실수를 통해 잘못됨을 배운다면 오류를 줄여나가는 밑거름으로 삼으면 된다.
이런 나에게 숨 막히는 상황은 일 중심의 상사와 일할 때다. 일 중심적인 상사는 작은 실수에도 모두가 들으라고 크게 혼잣말로 흉을 본다. 예를 들면 클릭 한 번으로 수정되는, 환자에게 위해가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처음엔 그냥 듣고 말지만, 상사의 그 행동은 점점 그 아래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래에서도 따라 한다. 누구든 언제나 실수할 수 있는 것을 서로 감시하고 실수 찾기, 드러내기를 한다. 타인의 실수를 찾아낸 것이 마치 자기의 능력인 것처럼 과시하고 의기양양해진다. 곧 본인이 겪을 일이라는 생각도 못한 채 그러는 걸 보고 있으면 걱정스럽다. 각 부서의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곧 그 부서는 이렇다더라, 그 병원은 이렇다더라로 입소문이 돌고 돈다.
부서의 분위기는 윗사람이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와 맞지 않는 상사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와 같아지지 않으려 항상 경계한다. 나쁜 본보기를 잘 봐온 덕분에 저렇게는 하지 말자는 나의 행동 기준도 생기는 것이다. 경험하고 싶지도 않고 스트레스만 오는 인간관계나 상황도 결국 나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좋은 영향으로 만들지, 나쁜 영향으로 만들지는 나한테 달린 문제이다.
내가 굳이 나서서 저건 아니지 않나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고, 타 부서도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나의 한마디로 바뀔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서이다. 사람이 바뀌려면 자기가 깨달아야지 남이 백번 천 번 이야기해도 못 들을 사람은 못 듣는다. 나는 나를 위해 그런 사람을 무식하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무시하기를 택했다. 그러니 현명한 우리는 의미 없는 일에 의미를 찾으며 스트레스받지 말고, 당장 날 위로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멋진 하늘을 구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