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리면 자살해 버리는 간호사도 있대"
간호 학생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진짜인지 알 수는 없다. 이야길 해준 사람도 누군가를 통해 들었을 테니까 사실 확인이 불가하다.
다만 이 정도는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야기 속 간호사는 치매에 걸린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상상해 보았고, 그런 자신이 싫었을 것이다. 아는 게 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을 불러온 것이다.
치매의 정도가 심하면 기억력 감퇴뿐 아니라 성격의 변화도 나타나고, 일상생활 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쉽게 말하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오늘이 무슨 날인지, 뭘 하는지도 모르게 된다.
완전한 치료는 아니더라도 진행을 늦추는 방식의 치료와 재활은 가능할 텐데 자살이라는 결론이 극단적으로 느껴졌다. 단순 치매가 원인이라기보다 그에 따른 우울이 그런 선택을 만든 게 아닐까.
정신건강의학과. 예전 용어로 신경정신과 Neuropsychiatry라고 불렸고 NP과라고 줄여서 부른다.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acting out상태의 NP환자를 만났었다. acting out은 자해 및 타해의 위험성이 있는 공격성을 보이는 상태를 말하는데 acting out을 보이는 환자가 오면 환자와 처치하는 의료진이 손상이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안정제를 투여하면 진정이 되지만,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는 건 아니라서 위험성이 높은 경우 의사의 처방 하 억제대를 사용하기도 했다. 간호사 3~4명이 붙어서 각자 환자의 팔과 다리를 다치지 않게 잡고서 억제대를 적용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를 온 힘을 다해 격렬한 거부를 표시하는데 의료진을 주먹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거나, 손톱에 긁히거나 꼬집기도 하기 때문에 서로 다치지 않으려면 환자의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내 경험에 따라 말하자면 해당과 의사가 오는 순간 환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물론 이전부터 본원 외래진료를 보던 친숙한 의사였다. 의사는 무엇이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지 물었다. 의사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안정제의 효과 일 수 도 있지만,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의사에게 마음이 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위대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간호를 공부하면서 우울증은 감기와 같은 거라고 배웠다. 병동에 근무하면서는 우울증을 진단받아 약을 복용하는 분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누구나 올 수 있는 질병이구나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내가 경험하기 전까지만 말이다.
호호 할머니께서 본다면 '네가 무슨!'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힘들게 살아왔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7살 때 헤어졌다. 불행하게도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힘든 순간에 흘리던 엄마의 눈물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엄마는 떠나버렸고, 그곳에 남아있기 힘들었던 아빠는 무작정 나와 오빠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엔 집도 없이 지냈다. 그러다 집이 생겼지만 금방 다시 없어졌고, 생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아등바등 대학교까지 졸업했다.
그 사이 수많은 고난이 있었다. 하지만 웃으며 지냈다.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른 게 아니라 힘들어할 여유도 없어 미뤄왔다. 그러다 보니 이제야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해진 느낌이다.
힘겨운 삶에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적당한 역경에는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고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 내가 무너지는 일이 있었다.
건강상의 문제도, 가족의 어려움도 아니었다. 어느 하루 갑자기 힘들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그 생각은 곧 나를 삼켜버리려 했다. 감정 조절이 스스로 되지 않았다. 눈물은 계속 흐르는데 멈추는 방법을 원래 몰랐던 사람이 되어버렸다. 밤에는 홀로 눈물에 젖은 배게를 만들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힘들다는 생각 밖에 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간호사 특징 우울증이구나 혼자 진단을 내리며 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다행인 건지 남편과 한참을 이야기하며,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요즘도 잠잠해진 마음이 언제 요동칠까 무서울 때가 있다. 그래서 스스로 나의 상태가 어떤지 파악하려 애를 쓴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얼마나 피곤한지, 혹은 스트레스받았는지를 인지하는 것이다.
최근 설날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슬픔이 정리되지 않았는데, 새로 입사한 선생님을 트레이닝시키다가 과하게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더 이상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든 상태였는데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시 모든 게 싫어졌고, 당장이라도 병원을 그만두고 싶었다. 눈물을 삼키며 나에게 닥친 일들과 마음 상태를 생각했다. 마음의 휴식이 필요했다. 당장 애도의 슬픔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 판단했다. 누구에겐 옳은 선택이 아닐 수 있지만, 나는 나를 위해 장례식장에서 슬픈 상황을 피해 다녔다. 그때 정리하지 못한 마음은 지금에서야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그런 면에서 액팅아웃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일 뿐이다. 다만 성숙된 방법이 아닐 뿐 나를 지키려 하는 노력은 같다.
진짜 환자라면 나에게 마음의 감기가 찾아왔을 때 "나는 감기에 걸렸어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주일이면 지나갈 감기가 독감이 되어 한 달 내내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요즘 유명인들의 극단적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한때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고, 빛이 나는 사람인데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 아이를 키워보니 확실히 깨닫는 건 기억하지 못할 뿐 누구나 태어나서부터 사랑받아온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받아 온 존재임을 마음속 깊이 새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