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직접적인 경험에서의 당신은 누구입니까?
PACe 프롤로그
1. 시작 - 밀라노, 파리, 빚
밀라노에서 시작된 여정
밀라노에서 공부했고, 일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섬의 타임 브랜드 개발실에 몸담았다. 지금 현대 기업에 넘어가기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첫 브랜드를 시작했다.
파리로 갔다. 전시 컬렉션을 했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하지만 결과는 빚이었다.
첫 브랜드는 실패했고, 나는 빚을 갚기 위해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그곳이 WOOYOUNGMI였다.
2. 깨어남
”Observation is the first step of moveme “
WOOYOUNGMI에 들어갈 때, 내 생각은 명확했다.
"빚만 갚고 나가자."
하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다른 일상적인 질문들이 나를 찾아왔다.
지극히 평범했지만 그 질문은 날카로웠다.
어쩌면 나의 본질에 관한 첫 경험이자 여정의 시작인 작은 싸인인 듯하다.
음악을 들을 때, 내 감정이 거기에 움직이는 것을 보는 순간 질문이 시작되었다.
TV 앞에 앉아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를 보았다.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을 가진 내가, 멜로디와 가사에, 영상과 서사에 이끌려가고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순간의 반응인 감정과 상태의 배경인 기분이 나를 좌지우지함을 보면서,
이것을 알고 있는 주체가 나인데 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작동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끊었다. TV를 없앴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런 질문들은 무의미하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주체가 내 안의 신이라면,
신의 영역은 인간이 알 수 없다.
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I am", "Who am I" - 나는 더 이상 이런 질문들에 떠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What to look for.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너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3. 첫 번째 침묵 - 수도원 5년
첫 번째 멈춤: 팀장에서 수도원으로
빚을 갚았다.
하지만 삶의 회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더 깊어졌다.
브랜드를 했다. 파리에서 컬렉션을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빚을 갚기 위해 회사로 돌아왔다.
이것이 맞는가?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이것인가?
질문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WOOYOUNGMI에서 팀장이었다.
파리 컬렉션을 준비하고, 판매되는 디자인을 하고,
성과를 내고 있었다. 빚은 이미 갚았다.
이제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퇴사했다.
그리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5년 동안 수녀원의 지원 기와 청원 기를 가지며, 수녀원을 전전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나는 그곳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5년 후, 나는 엄마의 암 투병을 시작으로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WOOYOUNGMI는 나를 다시 불러주었다.
그것도 더 좋은 조건으로.
대표가 물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이 세계를 떠나 있었는데, 너의 디자인 감도는 괜찮니?"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디자인의 원천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인스피레이션을 어떻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성의 충만함을 5년 동안 충분히 받고 왔습니다."
말 그대로였다.
회사에서의 성과로 그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실장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정신세계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중립을 찾는 과정
나는 중립을 찾아가고 있었다.
무엇이 맞고 틀린지, 그 기준을 정할 수가 없었다.
가톨릭도, 불교도, 심지어 힌두교도
내게 답을 제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경험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은 누군가가 제시할 수 없다.
내가 직접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나의 길은 구도자의 길과 같다고.
나는 패션 Acc 스타일링 디자이너였고,
액세서리 총괄 디렉터를 맡고 있었지만,
본질은 구도적 기질에 가까웠다.
4. 두 번째 침묵 - 바다와 텐트
두 번째 멈춤: 실장에서 노숙 여행으로
몇 년 후, 나는 또다시 퇴사를 결정했다.
이번에는 실장이었다.
작은 오해가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이유였다.
"나는 잠시 쉬어야겠다."
사직서를 내고, 1년에 가까운 국내 여행을 시작했다. 노숙을 하기도 하고, 텐트를 치고 바닷가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나에 대한 탐구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1년의 방황 끝에, 나는 또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또다시 좋은 성과를 이루었고,
결국 이사 자리까지 올라갔다.
부서가 커지고 액세서리 총괄 디렉터가 되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렇게 회사를 중간중간 떠났다가 복귀할 때마다 성과가 올라가는 것을.
그것을 증명하는 나 자신을.
사람들은 나를 뭔가 스페셜한 사람이라고 봤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근본은 항상 본질을 추구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멈춤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다.
5. 세 번째 침묵 - 위빠사나
세 번째 멈춤: 브랜드이사에서 위빠사나로
작년, 아니 재작년이었다.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는데, 나는 마지막 퇴사를 결정했다.
50세라는 나이.
이사라는 직위.
액세서리 총괄 디렉터.
20년 전 빚을 갚기 위해 "빚만 갚고 나가자"며 들어왔던 이 회사에서,
나는 팀장이 되었고, 실장이 되었고, 이사가 되었다.
이사라는 직위, 보장받는 성과와 안정.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하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예전의 두 번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 경험들이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한번 "잠깐 멈춰야겠다"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번에는 달랐다.
어디를 간 것도 아니고, 여행을 한 것도 아니었다.
오롯이 나 자신만을 바라보는 시간.
불교에서 위빠사나를 하듯이,
자신만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6. 발견 - 존엄이란
존엄의 발견
그렇게 나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나는 나의 존엄과 가치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나를 관찰하는 것 이상이었다.
한 단계 위가 아니라, 수십 단계 위에 있는 영역이었다.
존엄의 가치는 이런 것이었다.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
내가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럼에도 나는 여태껏 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깨달았다.
결국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할 때
비로소 성립되는 것임을.
내가 나임을 알아갈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임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은, 사실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대리로 선택한 것이었다.
필요불가결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질문이 남는다.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할 때, 그 기준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했다.
기준은 없다.
그냥 내가 나임을 아는 것이다.
사람마다 고유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기준이라는 것은 성립될 수가 없다.
신은 그 고유의 영역을 무한하게 창조하셨고,
그 무한한 영역을 우리 모두는 갖고 있다.
문제는 그 무한한 영역을 살면서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것이었다.
7. 화살을 돌리다
질문의 전환
예전의 나는 이것을 굉장히 어렵게 생각했다.
굉장히 심오하게 다루면서,
정말 구도자적인 부분만 포커스를 맞췄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내가 어떻게 표현하는 삶을 사느냐.
그것이 나의 존엄을 나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이 나임을 아는 방법이다.
시선의 화살
나는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한 여러 번의 실행을 거듭했다.
내가 보는 것들, 내가 가리키는 것들, 내가 향하고자 하는 것들은 분명히 보인다.
눈을 통해서, 사고를 통해서, 현장이나 주변 환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시야의 방향을 바라보던 것의 화살을 나에게 돌리면 무엇이 보이는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내가 손가락을 보고 있다면, 그 보는 시선을
나에게 돌렸을 때 무엇이 보이는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규명할 수 없는 무언가이며,
존재이며, 본질이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없음 안에는,
나 자신의 가장 핵심에 자리 잡게 된
있는 그대로의 받아들임의 무한한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세상을 나타내는 다양한 모든 것의
경계 없음을 하나로 묶는 붉은 실과도 같았다.
이 붉은 실은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이전에 내가 알던 축복과는 다른 무언가였으며,
이전에 내가 알던 평화와 평온과는 다른,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바로 그것이었으며,
그 중심은 곧 존엄함이다.
이 존엄은 어떠한 부와 명예와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부여된 가치인 것이다.
사실 이 "없음"이란 단어는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이 불안을 극복하고 싶었고,
나 자신의 존엄에 대하여
진정한 본질에 다가서고 싶었다.
그 본질의 없음은 불안이 아닌 자유이며,
예전에 내가 알던 구속함이 없는
1차원적 자유와는 다른 평온이었다.
이 평온은 힐링과 릴랙스가 아니며,
요가나 명상의 행위로 얻어지는
어떠한 상태의 기분이 아니다.
기분은 감정을 기반으로 하여 잠시만 지속될 뿐.
이 평온은 잠시가 아닌,
흔들림 안의 중심에서 오는 지속성이며,
인내이며,
강인 함이며,
마치 사막에 이슬을 머금고 피는 선인장꽃과도 같다.
이 평온이 삶에 스며들면,
관계의 형상 안에도 자연스레 스며들며,
그것은 내가 삶에 녹아드는 것과도 같다.
이것을 알고자 했고,
나누고 싶었으며,
그것이 곧 브랜드의 계기가 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정말 쉽게.
도구의 재발견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음악을 듣는다.
AI 시대에 맞게 내가 직접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임을 받아들인 것이다.
깨달았다.
음악도, 미디어도, 그것을 만들어낸 이의
표현의 도구였다는 것을.
무엇이 옳고 아니고 의 차원이 아님을
다만,
내가 그것을 경계하거나 심취했을 때,
도구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내 주체를 건드리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그것들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문제는 그것들이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주체를 잃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이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나의 가치관을 알리는 도구로 어떻게 사용하느냐?
이것을 고민했고, 사용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한 것이 지금 AI 시대의 구조임을 알게 되었다.
단,
주체는 항상 나여야 한다.
8. 귀환 - 20년의 의미
귀환: 20년의 직업이 우연이 아닌 이유
나는 그 표현의 첫 수단을 먼 데서 찾지 않았다.
내가 20년이 넘게 몸담아온 나의 직업, 나의 일.
이것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고 믿는다. 일어나는 일들에는 반드시 어떠한 이유가 있다.
20년이 넘게 이 직업을 했다는 것은,
신이 나에게 준 가장 쉬운 방법,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예전에는 괴리가 있었다.
나의 직업과 나의 사고적인
가치관 사이에.
소비를 자극시키는 패션 관련 일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질문.
하지만 지금은 그 괴리가 사라졌다.
이제는 내가 오롯이 나임을.
내가 이것에 대한 존엄을 가질 수 있음을.
그리고 나 자신이 나임을 인정할 때
비교 대상이 필요 없다는 것을.
그러한 가치와 존엄을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조금씩 알려나가고 싶었다.
아주 쉽게
9. 사브라엘에서 PACe로
두 번째 시도: 사브라엘에서 PACe로
20년 전, 나는 파리에서 전시 컬렉션을 했다.
세 번이나.
그때 브랜드의 이름은 사브라엘(Sabrael)이었다.
"너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피는 사막의 선인장꽃
사브라엘이다."
유대인 격언을 응용한 이름이었다.
모티브는 선인장과 이슬을 머금은 빛나는 보석의
Objet shoes &bag였다.
사막에서, 최소한의 자원으로, 피어나는 꽃.
그것을 제품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결과는 빚이었다.
20년 후, 나는 다시 브랜드를 시작한다.
이번 브랜드의 이름은 PACe이다.
PACe.
이탈리아어로 평화(Pace).
영어로 속도(Pace).
이중성을 가진 이 단어를
브랜드 이름으로 선택한 이유는,
기존에 내가 알았던 평화와 평온,
자유에 대한 것을
새로이 바라보게 됨을 이 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티브는 국화와 장수풍뎅이이다.
국화 - 강인함과 유연함.
장수풍뎅이 - 존엄과 구조적 완결성.
동양 정신을 담은,
조용하지만 굳건하고 흔들림 없는.
하지만 본질은 같다.
사브라엘의 선인장꽃.
PACe의 국화.
사막에 이슬을 머금고 피는 선인장꽃.
중심 없이 흔들림에서 오는 평온.
20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20년 구도의 완전한 기록인 것이다.
사브라엘 PACe
선인장꽃 국화
유대 동양
보석 링
빚 존엄
전시 트리거
다만 이번에는, 파리가 아니라 여기서.
유대인 격언이 아니라 동양 정신으로.
보석 오브제가 아니라 링 하나로.
빚이 아니라 존엄으로.
전시가 아니라 트리거로.
20년 전에는 몰랐던 것을 이제 안다.
브랜드는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나누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세계관은 20년 전에도,
20년 후에도, 평온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 평온의 의미가 달라졌다.
정적인 평화가 아니라,
움직임 속의 평온.
멈춤이 아니라,
속도 속의 중심.
PACe = Pace + Pace
평화 + 속도
= 새로운 평온
중요한 건,
빨리 가는 것이 아닌,
가고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크기에 중점을 둔 확대가 아닌,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확장은
질적 발전과 성숙을 동반한 변화를 부르며
성장하게 한다.
10. 링, 트리거가 되다
PACe: 고유의 존엄함을 전하는 오브제
브랜드를 만들 때, 나는 이 경계 없는 하나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고유의 존엄함을 전해줄 수 있는 오브제.
그것은 주얼리였다.
주얼리 중에서도 링이라는 아이템을 선택했다.
손은 행동이다. 말은 진정성이 없는 영역이지만, 손은 행동으로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링.
행동력의 표현, 진정성의 구현.
그리고 무엇보다, 트리거.
사실 링은 전통적으로
언약과 구속과 다짐의 징표로 쓰이는 도구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링은
나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트리거의 형상이다.
사람은 망각하기에, 트리거는 매우 유용하다.
내가 링을 디자인하면서 바랐던 것은 이것이다.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링을 볼 때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깨닫게 하는 것.
시선의 화살을 밖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화살을 나에게 돌리게 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아무것도 없음을,
그 안에 자리 잡은 경계 없는 하나를,
세상이 나타나고 있는 하나를 발견하게 하는 것.
링은 그 트리거 역할을 한다.
일상에서 차 한 잔을 마실 때,
내 손에 끼워진 트리거를 볼 때,
그날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게끔.
핸드폰을 만지는 내 손의 트리거를 볼 때,
집착하지 않게끔.
누군가와의 대화 안에 무의식적으로 내 손을 만질 때,
그 링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트리거 역할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나누고자 하였다.
그것이 이 브랜드의 본질이다.
20년 스킬의 증명
그 링을 디자인할 때,
나는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출발했다.
나의 링은 기본 링이지만, 볼륨과 착용감, 구조에 나의 기존 20년 스킬을 녹여냈다.
이것은 경험을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스킬이다.
단순히 흉내 내는 것과는 다르다 여긴다.
20년 동안 나의 일을 하면서 내 안에 축적되어 온
이 스킬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경험이다.
어떻게 무언가를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고, 그것을 물질로서 표현하는 방법이다.
나는 이 가치와 나의 세계관을 함께 나누고 싶다.
이 브랜드와 나의 관계에 대하여
이 책은 그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이 글은
PACe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기록이며,
한 인간이 주체를 회수해 온 여정이다.
Book 1부터 Book 5까지,
이 판단의 구조를 기록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20년 구도의 필연적 귀결이다.
그리고 Book 5가 끝나면,
비로소 진짜를 말하는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 구조에 관하여 다룰 것이다.
어두우면 별이 보인다.
— 페르시안 속담
나는 이 속담을 참 좋아한다.
When a man is awakened he melts
and perishes.
사람이 깨어나면 그는 녹아 없어집니다.
— Rumi
내가 좋아하는 고대영성가이며 시인이다.
(내 고양이 이름은 루미다.)
PACe: 존엄을 만드는 판단의 기록
Kim, Founder & Creative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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