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가 되어

오늘은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by 산수골지윤핼미

나무늘보가 되어 여행을 갈무리하다 밀려오는 전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문자 확인을 잊고 노는 데 열중한 결과다.

연말연시 효과도 클터.

모든 일이 한꺼번에 밀어닥다.
나의 삶이 느린 탓도 있겠다.

아직 삶이 이것저것 챙길 일이 많기도 하다.

순간 깜짝 놀라 머리가 하얘져 당황했지만,

중간 결과 체크 상황이라 한숨을 돌리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애를 태우며 몰두했던 일들이 매듭이 풀리기 시작하며 순풍에 돛 단 듯 진행된다.

감사한 일이다.


미리 매듭을 지어 놓고 기다리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자신을 칭찬한다.


15일엔 병원에 가야 하니 날들은 스킵스킵하며 내달린다.

벌써 나의 일정은 1월 중순을 훌쩍 넘어 2월로 향한다


2월 캘린더를 보니

5일부터 마의 뼈 스캔과 CT, 12일은 정기 진료가 있다.

그러다 보면 훅! 3월이다.


앗. 봄이닷!

내 삶이 느린 것 생각지 않고,

세월의 빠름을 탓한다.



수녀님의 포춘 조개 뽑기가 준 맞춤 명언.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그래,
모든 것을 내가 끌어안고 앞서 싸우려 하지 않아도 된다.
주님께서 대신해 주실 것이니


나는 잠자코 순풍에 몸을 싣기로 한다.


급한 성격을 누르고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그 말씀이

성질 급한 나에게는 참 어려운 수행이다.


우선

2박 3일 찐한 여행을 다녀왔으니
쉼은 4박 5일쯤으로...


오늘도
나무늘보가 되는 것을 기꺼이 허락한다.


느리게 숨 쉬고
느리게 움직이며
아무것도 성취하지 않는 시간.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말해 준다.


너는
살기 위해 모든 것에서 내려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라.





오늘은, 잠자코 있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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