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60)

* 적과의 동침 *



어제 아침 마을 산책길에 뱀을 만났다. 올 들어 처음이다. 만약 아내가 이 글 읽는다면 '어이구' 하며 부르르 뜰 것 같다.


사는 그곳이 오염되었나 되지 않았나를 판가름할 때 거기 사는 동물을 살펴보면 된다. 다 알다시피 개울에 ‘가재’가 노니거나, 근처에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면 두 말할 필요 없이 청정지역이다.

허나 채소를 심을 땅이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를 알려면 ‘뱀’, ‘지네’, ‘두더지’가 그 땅에 돌아다니는지를 보면 된다. 뱀이나 지네는 무시무시한 독을 지녀 더없이 강할 것 같지만 약에는 아주 약하다. 에프킬라처럼 작은 벌레 잡는 약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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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가 보이면 에프킬라 슬쩍 뿌리면 몇 번 버둥대다가 끝이다. 혹 창고에 뱀이 들어갔는데 눈에 띄지 않으면 역시 에프킬라 뿌리면 금방 뛰쳐나온다. 또 뱀은 가는 대나무로라도 한 대 맞으면 반쯤 맛이 가고, 제초제 친 밭 위로는 절대로 기어 다니지 않는다.

두더지도 마찬가지다. 농약 친 밭에는 얼씬도 안 할뿐더러 땅 속에 있을 때도 약 치면 땅 위에 올라와 뻗어 있다.


아내가 뱀과 지네를 보고 비명을 질러댈 때마다 내가, "뱀과 지네가 돌아다니니 살아있는 땅이잖아." 하면, "죽은 땅이라 해도 뱀, 지네 안 봤으면 좋겠네요." 한다.

나도 뱀이나 지네, 두더지를 안 봤으면 좋겠다. 지렁이도 땅에 도움 된다지만 징그럽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집 바로 위 샘 주변에 가재가 몇 마리 살고, 여름이면 반딧불이가 방문하지만, 해마다 한두 번 거실에 의기양양하게(?) 기어 다니는 지네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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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드물지만 꿀벌이나 말벌(쏘이면 즉시 응급실로)에게 쏘이기도 하고, 거금을 주고 산 과실수 아래 두더지가 터널을 만들어 고사시키기도 한다. 뿐이랴, 모기와 날파리는 얼마나 많은지. 아마 한여름에도 냉기가 흐르는 깊은 산속 아니면 비슷한 사정일 게다.

그럼 해결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제초제 같은 센 농약을 자주 치면 된다. 그럼 뱀도 지네도 두더지도 사라진다. 결국 "징그러운 동물 퇴치하려면 다른 하나를 잃어야 한다." 이 평범한 진리가 경치 아름답다고, 물 맑다고, 공기 깨끗하다고 피해가진 않는다.


혹 내 글이나 다른 이의 글 또는 여러 매체를 통해 아무 탈 없이 사는 듯한 이들의 행복한 모습, 특히 요즘 연예인들의 멋진 전원주택 소개하는 영상에 부러움을 가진 분들에게는, 끔찍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시골에선 종종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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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전원주택을 빛나게 해주는 부속물로 연못이 있다. 연꽃이 피고, 개구리가 노닐고, 잠자리가 부레옥잠에 앉은 모습에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그러나 그곳은 뱀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물이 있고, 먹이인 개구리가 있고, 허물 벗을 때 요긴한 돌이 있으니 말이다.

처음 이사 오자마자 가장 먼저 만든 연못에 어느 날 뱀이 유유히(?) 헤엄치는 걸 보고 아내가 기절초풍하는 바람에 없애야 했다. 지금은 아주 작은 연못 아닌 연못을 만들었다. 조그만 들통 세 개에다 수련과 부레옥잠을 키운다. 그래선지 연못 근처에서 뱀을 본 적 없다.



황토집이 최고라는 말을 다들 들어서 알리라. 장점이 참 많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원적외선이 많이 나와 건강에 좋고, 습기를 흡수해 건조한 상태를 유지해 주어 늘 뽀송뽀송하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그러나 다른 형태의 집보다 벌레가 많이 끓는다. 돈벌레, 쉰발이, 콩벌레, 그리고 지네. 당연하지 않은가, 그 벌레들이 좋아하는 흙벽인데. 황토벽돌로 지은 집은 좀 적다고 한다. 허나 벽돌은 압축한 게 아닌가. 그럼 천연 황토집에서 얻는 장점이 감퇴할 수밖에 없다.


1.png (전원주택 연못 - 구글 이미지에서)



이들을 물리칠 가장 쉬운 방법은 약이다. 그러면 뱀에게 놀랄 일도, 지네에게 물릴 일도, 두더지가 과실수를 죽이는 일도 거의 없다. 한 번 뿌리면 놀라울(?) 정도로 효과가 크다. 모기가 많아도 약을 치면 된다. 다만 그 약이 과실수에 날아가거나 밭에 뿌려짐을 감수해야 하지만.



이번엔 잡초를 보자. 가장 좋은 방법은 뿌리까지 뽑아주는 일. 다들 이른 봄에는 호미 들고 쪼그리고 텃밭에 앉아 그렇게 한다. 헌데 4월이 넘어가면서 풀 자라는 속도가 빨라지면 포기하게 된다. 어릴 때 잘 뽑히던 풀이 좀 자라면 뽑기 어려운 데다 워낙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농촌에서 예초기 소리가 온종일 들려온다. 같은 날 모두 함께 예초기를 돌리면 좋은데 다 맞춰 할 수 없으니 그 소음을 거의 날마다 들어야 한다. 물론 제초제를 쓰면 여름에 두 번이면 끝난다. 그러면 땡볕에 예초기를 돌리지 않아도 되고 풀도 보지 않아 좋다.


60-4.jpg (채소가 아니라 저게 다 풀이라면)



그러나 지금은 시골에서도 제초제를 가능한 쓰지 않는다. 그 농약이 내가 먹는 벼에 바로 들어가니 말이다. 빠르면 열흘에 한 번, 늦어도 보름에 한 번 예초기를 돌릴 수밖에 없다. 어깨에 무거운 도구를 메고 팥죽땀을 흘리면서.

그러니 덜 오염된 상태로 살려면 잡초와 함께, 뱀과 함께, 지네와 함께. 두더지와 함께 살아야 한다. 싫든 좋든 간에 말 그대로 "적과 동침해야 한다." 바야흐로 적과의 동침 시대에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 오늘 글은 2022년 여름 어느 날 올렸는데, 내용을 보강하여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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