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1편 : 이건청 시인의 '쇠똥구리의 생각'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이건청 시인 편 ♡
- 쇠똥구리의 생각 -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고 가다가 잠시 멈춘다. 지금 내가 거꾸로 서서 뒷발로 굴리고 가는 저것은 풀밭이다. 이슬에 젖은 새벽 풀밭 위로 흐린 새 몇 마리 떠갔던가, 그 풀밭 지나 종일을 가면 저물녘 노을에 물든 *이포나루에 닿을까. 거기 묶인 배 풀어 타고 밤새도록 흐르면 이 짐 벗은 채, 해 뜨는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2007년)
*. 이포나루 : 경기도 여주에 있는 나루터
<함께 나누기>
'똥' 이야기를 아침부터 풀어놓기엔 좀 뭣 하지만, 인간은 뱃속에 똥을 담고 똥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풀어봅니다. 그래선지 동물과 식물 이름에 '똥' 자가 꽤나 들어갑니다. 우선 식물로 '애기똥풀꽃', '쥐똥나무', '개똥쑥'이 있습니다.
동물 가운데서도 '개똥지빠귀'와 '말똥가리'란 새가 있고, 곤충으로 쇠똥구리(말똥구리)ㆍ개똥벌레가 유명합니다. 똥이 식물 이름에 붙었든 동물 이름에 붙었든 이러니 문인들의 글감으로 많이 쓰일 수밖에요. 그 가운데서 쇠똥구리는 생태보호종이 돼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오늘 시는 화자가 쇠똥구리로 빙의한 뒤 쇠똥구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 모습입니다.
"지금 내가 거꾸로 서서 뒷발로 굴리고 가는 저것은 풀밭이다"
아시다시피 쇠똥구리는 물구나무 선 채 쇠똥을 굴리며 갑니다. 그러니까 쇠똥구리가 보는 세상은 거꾸로 된 모습입니다. 쇠똥구리가 실제 뒷발로 굴리고 가는 것은 쇠똥이건만 풀밭 전부인 듯이 느껴집니다. 그러면 얼마나 힘들까요.
"이슬에 젖은 새벽 풀밭 위로 흐린 새 몇 마리 떠갔던가, 그 풀밭 지나 종일을 가면 저물녘 노을에 물든 이포나루에 닿을까."
거꾸로 가야 하는 쇠똥구리에게 새 몇 마리가 날아갔는지는 알 수 없거니와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이포나루만큼 남아 있으니까요. 사람이야 차를 몰고 가면 가까울지 몰라도 쇠똥구리에겐 도무지 닿을 수 없는 거리입니다.
"거기 묶인 배 풀어 타고 밤새도록 흐르면 이 짐 벗은 채, 해 뜨는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쩌릿쩌릿합니다. 쇠똥구리가 쇠똥 굴리는 대신 배 타고 가면 이포나루에 닿을 수 있을까요? 답은 '아닙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갑니다. 쇠똥구리는 다른 존재가 아니라 화자입니다. 즉 평범한 우리입니다.
쇠똥구리 같이 보잘것없는 존재의 삶을 향한 치열한 발버둥, 그런 존재가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에 비장함마저 치밀어 오릅니다. 결국 제목 '쇠똥구리의 생각은?'에 대한 답은 '어떻게 이 무거운 삶을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쇠똥구리의 고단한 일상에 가여운 마음이 다들 일 겁니다. 왜냐면 바로 우리네 일상이 겹쳐지기 때문일 테지요. 쇠똥구리가 쇠똥 굴리는 노동은 지극히 낮고 천해 보이지만, 비천한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숭고한 생존 투쟁입니다.
오늘 시를 통해 시인은 우리에게 "당신은 어떤 자세로 똥경단을 굴리며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 모든 쇠똥구리들이여! 그대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덜 외롭습니다. 그대들의 앞날에 푸른 풀밭만 나타나기를 응원합니다.
<뱀의 발(蛇足)>
말똥이나 소똥을 집으로 짓기도 하고, 먹이로 먹기도 하는(애벌레의 경우) 쇠똥구리. 국어학에선 '소똥구리' '쇠똥구리' 이 둘이 복수표준어이고 말똥구리는 같은 뜻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 곤충은 농약과 소가 먹는 인공 사료 등으로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러 생태 보호종으로 지정되었답니다.
쇠똥구리를 글감으로 한 시인의 "쇠똥구리 시인"이라는 시가 한 편 더 있습니다. 혹 궁금하신 분은 인터넷 찾아보시길.
#. 이건청 시인(1942년생) :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김소월’, ‘정지용’, ‘박목월’로 이어지는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시인으로 평가받았으며,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계시다가 퇴직.
1980년대 한국 생태환경시 운동에 참여하여 그런 류의 시를 많이 썼는데 인도 보팔시의 시안가스 누출 참사를 다룬 장시 [눈먼 자를 위하여], 탄광 환경 문제를 다룬 시집 [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과, 울산 울주군 대곡천 일원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암각화를 형상화한 시집 [반구대암각화 앞에서]를 펴냄.
(시인 정보는 인터넷에서 얻은지라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