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95)
옛날 전해오는 얘기 하나 꺼냅니다.
경상도 한 마을에 오직 과거 급제를 목표로 글공부에만 몰두하는 선비와 뒷바라지하는 아내가 살았습니다. 비록 살림은 넉넉하지 못했지만 부부 사이엔 사랑이 넘쳤고, 아내는 바느질품을 팔아가며 남편 공부에 부족함이 없도록 애썼습니다.
허나 어느 해 가뭄이 들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아내의 일감마저 다 떨어져 보리밥으로 간신히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밥상에 쌀이 제법 섞인 데다 생선 한 모타리도 올라 선비가 웬일인가 하여 아내를 보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고...
푹 숙인 아내의 머리를 보는 순간 선비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의 머리카락이 쑥 빠져 없어졌기에. 다그쳐 묻자 아내는 망설이더니 머리카락을 잘라 판 돈으로 쌀 조금 생선 조금 샀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 선비는 아내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공부하느라 아내가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 잘 알기에. 그에 보답함은 과거 급제뿐이라 여겨 더욱 매달렸는데, 날이 갈수록 밥 대신 죽이, 죽에도 밥알보다 풀이 더 많아졌습니다.
평소 선비는 방에서 아내는 부엌에서 식사했는데, 하루는 저녁 먹고 난 뒤 부엌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기에 슬쩍 훔쳐보았더니 아내가 뜻밖에 고기를 뜯고 있었습니다. 속으로 괘씸했습니다. 자기에겐 풀죽 주고 혼자 고기 구워 먹는다고. 그러다가 곁에 놓인 고기 껍데기를 보고 놀랐습니다. 다름 아닌 쥐여서.
선비는 그날 밤 잠 한숨 자지 않고 갈등했습니다. 자기 위해 희생하는 아내 생각에. 그리고 무서웠습니다. 어디 손 벌릴 데 없으니 이제 남은 건 굶는 일뿐. 이러다가 남의 집 담을 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다음 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부잣집을 찾아가 농사짓게 땅 좀 빌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선비가 농사짓는다? 주변의 시선이 어떻다는 건 다 아니까 두려웠습니다. 허나 두려움보다 앞선 건 배고픔. 그것이 용기를 내게 한 원동력이었고.
선비의 처지를 알고 있던 그 부자는 차마 직접 농사짓게 하는 대신 소작인들을 관리하는 마름 일을 맡겼습니다. 그날 오후 선비가 쌀 한 가마니를 지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하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보따리를 꾸리더니 친정으로 떠났습니다.
난방비 아끼려 한겨울엔 주로 도시 아파트에 살지만 그래도 달내마을에 적어도 사흘에 한 번씩은 들르는데 가면 마중 나오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바로 길고양이들. 이미 앞선 글에서 댓 차례 언급했을 겁니다만 녀석들은 내가 가면 주변을 맴돕니다. 그러면 알아서 사료를 갖다 주고.
그래도 사이 가까워졌다고는 하나 아직 1m까지만 접근할 뿐 멀찍이 지켜보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편했습니다. 지난주 영하 10° 즈음의 날이 며칠 계속되던 날, 혹 수도관이 터졌을까 봐 들렀는데 아무 이상 없어 잠시 머물다가 나왔습니다.
차를 몰고 돌아오다가 순간 ‘아차!’ 했습니다. 사료 챙겨주지 않았기에. 추우면 더욱 먹이 구하기 어려울 텐데. 그러다 이상함도 느꼈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밖에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조금 떨어져 따라다니던 고양이가 이번엔 아예 보이지 않아서. 보이지 않았으니 사료 챙겨주는 걸 잊었고.
그다음 갈 때는 뭘 가지러 갔다 빨리 돌아올 일 있어 서둘러 오는 바람에 또 깜빡했습니다. 그러니 사료 놓고 오는 일을 잊었지요. 역시 집에 왔건만 주변에 보이지 않아 잊었던 겁니다. 미안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 괘씸(?)하더군요. 그런 식으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다니.
그저께 들렀을 때는 녀석들이 보이든 안 보이든 꼭 챙겨줘야지 했는데 그런 걱정할 필요 없이 한 녀석이 들어서자마자 다가왔습니다. 다른 일보다 우선 먹이를 챙겨 꺼내 사료통(비 맞을까 봐 데크 아래 둠) 으로 옮기는 바가지에 퍼담으려는데 바로 곁에 와 있지 않겠습니까.
최소 1m를 유지하던 녀석이 단 10cm도 안 되게. 혹시 하는 생각에 손바닥에 조금 올려놓으니 번개같이 먹어치웠습니다. 세상에! 그동안 저만치 떨어져 쌩까더니. 몇 번씩 주다가 어쩌나 보려고 손으로 쓰다듬어주려 하자 그것은 아직 시기상조인지 거부했습니다.
우리 집에 나타나는 길고양이는 세 종류입니다. 호랑이 무늬, 완전 하얀 고양이, 무늬 없는 누런 고양이. 사실 이번에 나타난 길고양이는 자주 보던 고양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아직 제게 경계심을 품고 있는 녀석이란 말이지요.
아무리 배고파도 손바닥에 올려놓은 사료를 먹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함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 까닭은? 날은 춥고, 먹이는 구할 데 없고, 들르던 주인 놈(?)은 제 볼일만 보고 휑하고 가버리니 자기 딴엔 어쩔 수 없었는 듯.
배고픔이 두려움을 잊게 만들었나 봅니다. 아무리 사람이 두려워도 배고프니 이것저것 따질 도리 없이 다가들었겠지요. 녀석의 몫으로 한쪽에 따로 사료를 놓아두고 사료통에도 담아뒀습니다. 저러면 혼자 다 먹지 않고 다른 동료 불러 알아서 나눠 먹더군요.
저는 사실 길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뿐 아니라 마을에선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됩니다. 길고양이에게 한두 번 피해 입어서겠지요. 우리 마을에 제 글 받아보시는 분이 몇 분 계시는데, 오늘 글은 다른 글로 대체해 보낼 겁니다. 저 때문에 길고양이 늘어난다고 여기실까 봐.
지지난 주에는 '개구리 죽음'을, 지난주에는 '지렁이 죽음'을, 오늘은 '길고양이 배고픔'을 글로 적으니 제가 동물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인 양 잘못 아실까 봐 미리 밝힙니다. 평소엔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공사 중인 삽차(포클레인)에 퍼 올려져 얼어 죽든, 한여름 지렁이가 길 가다 땡볕에 말라죽든 그냥 지나칩니다.
하필 그날은 지나가던 그 순간 제 눈에 띄었기에 글로 표현했을 뿐. 그러니 동물 애호와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니 오해 마시길. 평소엔 까치가 차체 위에 똥 누면 욕을 퍼붓고, 차 모는데 고라니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쌍욕을 하고, 들쥐나 두더지가 고구마 감자 파 먹으면 울화가 치밀어 또 욕합니다.
아직 길고양이를 더 가까이하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지금보다 가까워져 제 주인인 양 찾아오면 한두 마리라면 괜찮겠지만 수십 마리는 감당할 자신 없으니까요. 혹 달내마을 길고양이 단톡방에 “마을 맨꼭대기 정선생 댁에 가면 사료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라는 공지가 뜨면 어쩔까 겁내는 중입니다.
이 글 읽고 저더러 마음이 따뜻하니 하는 댓글이 나올까 봐 선수 칩니다. 저는 착한 사람 아닙니다. ‘아주 나쁜 남자’입니다. 그게 제 참모습입니다. ㅎㅎ.
*. 특별한 언급 없는 고양이 사진은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pixabay’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