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6편 : 이면우 시인의 '오늘, 쉰이 되었다'
* 목우씨의 詩詩한 소통(2026) *
♡ 이면우 시인 편 ♡
- 오늘, 쉰이 되었다 -
서른 전, 꼭 되짚어 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핥고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로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 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 그릇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2001년)
<함께 나누기>
공자의 셈법에 따르면 마흔을 불혹(不惑 : 외부의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 예순을 이순(耳順 : 귀가 순해져 이해심이 넓어지는 나이)이라 하고, 쉰을 지천명(知天命 : 하늘이 내리는 뜻을 잘 아는 나이)이라 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서른 전, 꼭 되짚어 보겠다고 ~~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책 읽다가 밑줄 그어놓은 적 꽤 됩니다. 밑줄 그었음은 중요하기에 나중에 다시 한번 더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건만 그러지 못했고. 또 서른 이전엔 남의 글을 읽고 혀를 낼름낼름 했지요. '이 정도 글 누가 못 써' '아니 이걸 글이라 쓴 거야, 말이야 방귀야' 하면서 말이지요.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그랬지요, 마흔 이전에는 내 잘못이 분명함에도 자존심 때문에 사과하기 싫어 바락바락 우겨댔고. 지금 생각해 보면 서 푼어치도 안 되는 그놈의 자존심이 사람과 사람 관계를 얼마나 어그려뜨렸는지...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쉰 전에는 자식을 내가 가르치며 키운다고 여겼지요. 아이들은 부모가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허나 정반대였습니다. 넘어지려는 아이를 내가 부축한 줄 알았건만 사실은 무너지려는 나를 일으켜 세운 버팀목은 바로 자식임을.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오늘 아침 쉰이 되자 문득 찾아온 깨달음. 서른 이전에, 마흔 이전에, 쉰 이전에 얻지 못한 깨달음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옵니다. 시인은 쉰이 되어 '知天命'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는데 저 같은 속물은 일흔이 지났건만 아직 얻지 못한 경지입니다.
"이제부턴 사람을 ~~~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나보다 어렵게 사는 이를 만나면 따끈한 국밥 한 그릇 대접하겠다는 이 깨달음. 참 소소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당장 내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쉰 아닌 서른 즈음에도 충분히 할 수 일이었던 것 같은데 왜 나는 그러지 못했을까요.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이 많지만, 늦은 때라는 것이 없듯 늦은 나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쉰이 아니라 일흔 밑자락 깔아놓은 나이이지만 잠깐 쉬며 나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렵니다.
인디언은 한참을 달리다가 잠시 멈춰 선다고 합니다.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나요. 영혼이 쉴 짬조차 주지 않고 달리기만 했으니, 쯧쯧...
#. 이면우 시인(1951년생) : 대전 출신으로 중학 졸업이 최종 학력이며, 직업은 보일러공. 정상적인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집이 먼저 나오면서 시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아빠의 직업을 조사해 오라고 한 설문지에, 시인의 아내가 무심코 실제 '보일러공' 대신 시인이라고 적었다. 아들은 학교에 가 ‘아빠 자랑 시간’에 "우리 아빠는 시인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을 귀에 담은 담임교사가 가정방문하여 원고를 읽었다. 그리고 담임의 아는 이가 근무하는 [창작과비평사]에 의뢰한 결과, 시집이 세상에 나오면서 시인이 되었다.
(시인 정보는 인터넷에서 얻은지라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으며, 올해 쉰이 된 남자 연예인을 찾으니 원빈(만49세)이 뜨더군요. 저도 한때 '정빈'이었는데, 이제 '골빈'이 되어서. ㅠㅠ